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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기획] 거리엔 한글 간판, 청사엔 한자 간판 내건 종로구

중앙일보 2017.10.08 16:04
서울 종로구청은 한글 간판 조성 사업을 벌여 북촌에 있는 점포 30여 곳의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바꾸도록 했다. [사진 종로구청]

서울 종로구청은 한글 간판 조성 사업을 벌여 북촌에 있는 점포 30여 곳의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바꾸도록 했다. [사진 종로구청]

 
‘한글 간판 명소’, 종로구의 구청에 걸린 한자 간판 
  

관내 점포 560여 곳 한글 간판으로 바꿔
종로구청사엔 40년 넘게 한자 간판 걸어
한글단체,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지적
서울시는 공공시설에 외국어 이름 붙여
“공공언어, 쉬운 우리말로 쓰고 말해야”

서울 종로구는 ‘한글 간판 명소’로 주목 받고 있다. 2010년부터 구청이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사업을 펼치며관내 점포 560여 곳이 외국어나 한자로 된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하도록 비용을 댔다. 
 
세종대왕의 탄생지(종로구 통인동)란 명성에 걸맞게 한글을 보존·계승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종로구청사에는 40년 넘게 ‘한자 간판’이 걸려 있다. 도로변에 위치해 눈에 잘 띄는 청사 본관 출입구와 제1별관 외벽에 걸린 간판 5개 중 3개가 한자로 돼 있다.  
 
서울 종로구청사 본관 출입구 기와지붕에는 [鍾路區廳]라고 적힌 간판이 1970년대부터 걸려있다. 강정현 기자

서울 종로구청사 본관 출입구 기와지붕에는 [鍾路區廳]라고 적힌 간판이 1970년대부터 걸려있다. 강정현 기자

 
본관 출입구 기와지붕엔 ‘鍾路區廳’(종로구청)이라고 적힌 나무 간판이 있다. 제1별관 정문 옆 벽면엔 ‘鍾路區廳’(종로구청), ‘鍾路區議會’(종로구의회)라고 쓰인 세로형 간판이 있다. 이들 간판에는 한글이 함께 쓰여 있지 않다.  
 
민원실이 있어 시민들이 자주 찾는 제1별관 외벽에도 [鍾路區廳](종로구청)과 [鍾路區議會](종로구의회)라고 쓰인 한자 간판이 걸려있다. 강정현 기자

민원실이 있어 시민들이 자주 찾는 제1별관 외벽에도 [鍾路區廳](종로구청)과 [鍾路區議會](종로구의회)라고 쓰인 한자 간판이 걸려있다. 강정현 기자

 
‘鍾路區廳’ 간판은 청사가 생긴 1970년대에, ‘鍾路區議會’ 간판은 지방의회가 출범한 91년에 걸린 이후 다른 간판으로 바뀐 적이 없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한자 간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미처 (한글 간판으로의 교체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2010년 ‘한글 사랑 조례’를 만들었다. 이 조례에 따르면 본청·의회에서 작성한 공문·시설명칭·표지판 등 일체는 한글로 써야한다.  
 
한글단체 “종로구청의 한자 간판은 앞뒤가 안맞는 일”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구청들은 한글 간판을 내걸고 있다. 영등포구청·중구청·성북구청·도봉구청 등은 한자 간판을 사용하다가 2000년대 들어 한글 간판으로 교체했다.  
 
서울 영등포구청은 2005년에 한자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했다.[사진 영등포구청]

서울 영등포구청은 2005년에 한자 간판을 한글 간판으로 교체했다.[사진 영등포구청]

양천구청은 91년 청사 신축 때 한글 간판을 붙였다.[사진 양천구청]

양천구청은 91년 청사 신축 때 한글 간판을 붙였다.[사진 양천구청]

  

성동구청은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쓴 간판을 사용하고 있다.[사진 성동구청]

성동구청은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쓴 간판을 사용하고 있다.[사진 성동구청]

 
강동구청은 청사가 지어진 79년부터 한글 간판 만 사용하고 있다.[사진 강동구청]

강동구청은 청사가 지어진 79년부터 한글 간판 만 사용하고 있다.[사진 강동구청]

 
한글문화연대 우리말가꿈이는 최근 종로구청 홈페이지에 ‘종로구청의 간판도 한글로 바꿔달라’는 민원 글을 올렸다. 우리말가꿈이의 장동완(남서울대 2학년)씨는 “한글 중심지를 자처하는 종로구청의 한자 간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권재일 한글학회장(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은 “불특정 다수가 찾는 구청은 누구나 읽기 쉬운 한글 간판을 걸고 있어야 시민이 기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스플렉스, 비전트레이닝 … 공공시설에 외국어 이름 붙이는 서울시 
 
서울시는 산하 공공시설에 외국어 이름을 붙여 시설 이용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을 받는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서울시의 에스플렉스센터(SPLEX Center)는 지어진지 1년이 넘었지만, 어려운 외국어 이름 탓에 인근 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사진 서울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서울시의 에스플렉스센터(SPLEX Center)는 지어진지 1년이 넘었지만, 어려운 외국어 이름 탓에 인근 주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사진 서울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는 ‘에스플렉스센터’가 있다. 정식 명칭은 ‘서울아이티컴플렉스센터’다. 서울시가 지난해 7월 1990억원을 들여 세운 이 시설 안에는 e스포츠 경기장, 독립게임 개발공간 등이 있다. “에스플렉스센터의 용도를 아느냐”는 질문에 인근 주민 송수정(42)씨는 “이름만 봐선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했다.
 
거리 노숙인의 재활을 돕는 시설인 비전트레이닝센터(서울 성동구)·브릿지센터(서울 서대문구)도 비슷한 지적을 받는다. 
 
서울시가 2014년 제정한 ‘서울시 국어사용 조례’에는 ‘공공기관에서 제작한 명칭·표시판·서류 등은 무분별한 외국어를 피하고, 국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뒤늦게 이름 바꾸면 예산 낭비도 문제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들 세 시설의 이름을 한국어로 바꾸는 일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창업가 지원 시설의 이름을 ‘아스피린센터’에서 ‘서울창업디딤터’로 변경했다. 
 
하지만 이미 사용되고 있는 시설명을 바꾸면 홍보책자 교체 등의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예산·인력이 필요한 일다. 남영신 서울시 국어바르게쓰기 위원장은 “공공언어는 가급적 국민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쓰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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