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이나랩 리포트]셜록홈즈가 중국에 왔다?

중앙일보 2017.10.08 09:00
                                                                                                   
셜록 홈스는 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됐다. [출처: BBC]

셜록 홈스는 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됐다. [출처: BBC]

                                                           [그림 1] 1893년 10월 영국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The Strand Magazine) 34호에 실린 「해군 조약문」(The Adventure of the Naval Treaty)의 첫 페이지. 3년 뒤 셜록 홈스 시리즈 가운데 가장 먼저 중국에서 번역되게 된다. [출처: 미국 프린스턴 대학 소장 이미지 자료] [그림 2] 「해군 조약문」에 실린 삽화 가운데 하나. 셜록 홈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화학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추리소설이 과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장면이다.

[그림 1] 1893년 10월 영국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The Strand Magazine) 34호에 실린 「해군 조약문」(The Adventure of the Naval Treaty)의 첫 페이지. 3년 뒤 셜록 홈스 시리즈 가운데 가장 먼저 중국에서 번역되게 된다. [출처: 미국 프린스턴 대학 소장 이미지 자료] [그림 2] 「해군 조약문」에 실린 삽화 가운데 하나. 셜록 홈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화학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추리소설이 과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장면이다.

 

추리소설의 동서교류사
중국에도 루팡처럼 루핑이란 탐정 만들어내
서양이 중국의 추리소설 수입하기도

추리소설의 동서교류史

 
최근 중국에서 과학소설과 함께 눈여겨봐야 할 문학의 흐름은 추리소설이라 할만하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칭 장르물이라 불리며 진지한 창작물은 아니라 하여 사실주의와 모더니즘 등과 같은 본격 문학 작품에 비하면 학계와 문단에서 그리 주목을 많이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세기 초에 루쉰이 과학소설에 주목하여 중국을 계몽하고 근대화의 길을 여는 통로로 삼았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추리소설이 독자들의 상상력을 계발하고 논리적인 추론 과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과학소설과 유사한 측면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은 기타 과학소설과 마찬가지로 번역을 통해 중국에 소개되었다. 이로부터 중국 고유의 공안소설(公案小說) 장르와 미묘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재밌는 사실은 추리소설의 수입이 단순히 서양에서 중국으로 일방향성을 띠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중국의 고전적 양식이 서양으로도 수출되었다는 점이다.
  

셜록 홈스가 중국에 등장하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추리소설 작가는 단연 영국의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이다. 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해군 조약문」(The Adventure of the Naval Treaty, 1893)이 최초로 번역, 소개되었다[그림 1, 2]. 
 
[출처: 미국 프린스턴 대학 소장 이미지 자료]유신당(維新黨)의 인사들이 발행하던 잡지 『시무보』(時務報)에 1896년 9월과 10월에 걸쳐 제6기부터 제9기까지 총 4회로 나뉘어 연재되었다[그림 3].   [그림 3] 『시무보』(時務報) 광서 22년(1896) 10월판 커버 페이지, [그림 4] 청샤오칭(程小靑)의 『훠쌍 탐정 사건 모음집』(霍桑探案彙刊)의 둘째 권 커버 페이지. [그림 5] 쑨랴오훙(孫了紅)의 『협도 루핑의 기이한 사건』(俠盜魯平奇案)의 커버 페이지. [출처: 『중국근대기간휘간』(中國近代期刊彙刊) 자료]

[출처: 미국 프린스턴 대학 소장 이미지 자료]유신당(維新黨)의 인사들이 발행하던 잡지 『시무보』(時務報)에 1896년 9월과 10월에 걸쳐 제6기부터 제9기까지 총 4회로 나뉘어 연재되었다[그림 3]. [그림 3] 『시무보』(時務報) 광서 22년(1896) 10월판 커버 페이지, [그림 4] 청샤오칭(程小靑)의 『훠쌍 탐정 사건 모음집』(霍桑探案彙刊)의 둘째 권 커버 페이지. [그림 5] 쑨랴오훙(孫了紅)의 『협도 루핑의 기이한 사건』(俠盜魯平奇案)의 커버 페이지. [출처: 『중국근대기간휘간』(中國近代期刊彙刊) 자료]

그 후 단편은 물론 단행본과 전집도 출판되었다. 1903년부터 1948년까지 20세기 상반기에 번역 출판된 영국의 저작물 가운데 코난 도일의 작품이 60종 이상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그다음 순위이다. 번역의 수량을 가지고 작품의 가치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추리소설이 대중적인 인기몰이에는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셜록 홈스 이야기는 중국 추리소설 작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청샤오칭(程小靑, 1893-1976)은 셜록 홈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을 번역함과 동시에 “동방의 코난 도일”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추리소설 집필에 전념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셜록 홈스 대신 '훠쌍'(霍桑)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상하이를 무대로 여러 범죄 사건을 해결한다. 청샤오칭의 창작은 한갓 코난 도일의 모방에 불과한 것일까? 1931년 2월 28일 『신문보』(新聞報)에 실린 『훠쌍 탐정사건 모음집』(霍桑探案彙刊)의 광고는 중국 작가의 추리소설이 독보적임을 강조한다[그림 4]. 중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서양의 작품을 베끼지 않았으며 과학 상식을 배양하기 위한 중국 민중의 필독서라는 것이다.
 
쑨랴오훙(孫了紅, ?-1958)은 추리소설의 중국적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일명 반탐정소설(反偵探小說)이라는 서사 모식을 채택하여 셜록 홈스 혹은 훠쌍과 같은 탐정 대신 '루핑'(魯平)이라 불리는 협도(俠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그림 5]. 주인공은 범인을 잡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 아니라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로 한정한다. 루핑이라는 캐릭터는 물론 '괴도 루팡'(Arsène Lupin)의 중국 판본이다. 그래도 이와 같은 글쓰기가 중국적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는 바로 『수호전』(水滸傳)과 같은 고전 작품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른바 '의적'(義賊) 개념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책임으로 사회가 무도(無道)하게 되었기 때문에 법률에 의거해 범죄를 심판하는 것이 반드시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보지 않았던 것이다.
 

서양이 중국 스타일의 추리소설을 수입하다

 
중국에서 추리소설 장르가 자리 잡은 것은 셜록 홈스 이야기 덕분으로 보인다. 근대화 이전의 중국에는 이와 유사한 장르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관원이 주동이 되어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공안소설 장르는 추리소설과 퍽이나 유사해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근대 이후 중국 독자들에게 외면받았던 공안소설은 서구인에 의해 재발견되고 소개되었다.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재위 690-705) 시대의 유명한 판관인 적인걸(狄仁傑, 630-700)을 주인공으로 한 청대에 창작된 공안소설이 그 원전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 공판 기록에도 관심을 가져 1956년에는 13세기 출간된 『당음비사』(棠陰比事)를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로베르트 반 훌릭(Robert van Gulik, 1910-1967)은 네덜란드 태생으로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장제스의 충칭 정부에서 고문 역할을 맡았다[그림 6]. 공안소설에 매료된 반 훌릭은 그 뒤 『판관 적인걸의 유명한 판결』(Celebrated Cases of Judge Dee)을 번역하여 1949년 도쿄에서 출판했다[그림 7].

로베르트 반 훌릭(Robert van Gulik, 1910-1967)은 네덜란드 태생으로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장제스의 충칭 정부에서 고문 역할을 맡았다[그림 6]. 공안소설에 매료된 반 훌릭은 그 뒤 『판관 적인걸의 유명한 판결』(Celebrated Cases of Judge Dee)을 번역하여 1949년 도쿄에서 출판했다[그림 7].

[그림 6] 로베르트 반 훌릭(Robert van Gulik)의 사진 [출처: Judge Dee website 소장 자료] [그림 7] 『판관 적인걸의 유명한 판결』(Celebrated Cases of Judge Dee)의 1949년 초판본 커버 페이지반 훌릭은 공안소설을 작품 창작의 모델로 삼았다. 판관 적인걸은 그의 추리소설에서 계속해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서양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중국 공안소설 목판본에 실려있는 삽화에도 흥미를 가져 목판화의 스타일을 살린 그림을 자신이 직접 그려 넣기도 했다. 그가 그린 삽화에는 에로틱한 장면들도 종종 등장하여 독자들의 눈길을 끌었다[그림 8, 9]. 반 훌릭의 공안소설은 상당히 많은 서구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로써 볼 때, 다음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중국의 공안소설이 중국 현대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 정도로 그렇게 형편없는 수준이 아니었지만 현대화의 물결에 휘말려 서구에서 유입된 장르가 중국 고유의 장르를 대체했다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반 훌릭의 공안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동양에 대해 느끼는 서구 독자들의 신비감과 호기심 때문으로, 말하자면 오리엔탈리즘을 소비하는 한 가지 형태였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공안소설이 유통되었던 까닭은 과연 예술적 가치 때문이었을까? 혹은 문화적 정치성 때문이었을까?

 
 [그림 8] 『쇠종 살인자』(The Chinese Bell Murders, 1958)의 삽화 가운데 하나. 이 삽화도 역시 반 훌릭이 그린 것이다. [그림 9] 『광둥의 살인사건』(Murder in Canton, 1966)의 삽화 가운데 하나. “작가가 직접 그린 12폭의 중국풍 삽화 포함”(With twelve illustrations drawn by the author in Chinese style)이라고 타이틀 페이지에 적혀있다.

[그림 8] 『쇠종 살인자』(The Chinese Bell Murders, 1958)의 삽화 가운데 하나. 이 삽화도 역시 반 훌릭이 그린 것이다. [그림 9] 『광둥의 살인사건』(Murder in Canton, 1966)의 삽화 가운데 하나. “작가가 직접 그린 12폭의 중국풍 삽화 포함”(With twelve illustrations drawn by the author in Chinese style)이라고 타이틀 페이지에 적혀있다.

인공지능이 추리소설의 주인공이 된다면?

 
추리소설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방법으로 범죄 사건들을 미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여러 가지 서사적 장치를 마련하고 독자들은 왕왕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말하자면 결론에 이르기도 전에 누가 범인인지 드러나고 사건의 실마리가 풀린다면 결코 훌륭한 추리소설이 될 수 없다. 무심코 흘려버리며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사소한 부분들이 결론에 이르러 중요한 실마리임이 밝혀지고 사건은 일거에 해결된다. 이와 같은 추리소설의 서사 전략은 과학소설에서도 애용되는 바이다.  
 
왼쪽부터 『13.67』, 『기억나지 않음, 형사』, 『스텝』(S.T.E.P.) 커버 페이지 [출처: 한스미디어]

왼쪽부터 『13.67』, 『기억나지 않음, 형사』, 『스텝』(S.T.E.P.) 커버 페이지 [출처: 한스미디어]

 
홍콩 출신 찬호께이(陳浩基)는 근래 중화권에서 부상하고 있는 추리소설 작가이다. 그의 『13.67』과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소재라 할 수 있는 형사 사건을 다룬다. 그의 또 다른 작품으로 최근 한국에 번역된 『스텝』(S.T.E.P.)은 추리소설과 과학소설을 결합한 소설이다. 인류의 미래에 “사보타주”라는 범죄예측시스템이 사용될 경우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그리고 있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셜록 홈스, 훠쌍, 루핑을 대체하여 추리소설이자 과학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과연 어떠한 서사전략을 보여줄 것인가?
 
글=연세대 중국연구원 전문연구원 서유진
정리=차이나랩 임서영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