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儲君<저군>

중앙선데이 2017.10.08 01:24 552호 29면 지면보기
漢字, 세상을 말하다
한 걸음 떨어진 거리를 일보지요(一步之遥)라고 한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지척이다. 황태자(皇太子)는 황제(皇帝)의 법정 후계자다. 미래의 절대 권력자다. ‘일보지요’라 부름직했다.
 
황태자를 저군(儲君)으로 불렀다. 태자의 거처는 황궁 동쪽에 자리했다. 『남제서(南齊書)』는 요절한 문혜태자(文惠太子) 소장무(蕭長懋, 458~493)에 대해 “태자를 동저라 불렀다(太子曰東儲)”고 기록했다.
 
한자 저(儲)는 ‘쌓는다’는 뜻이다. 군주의 룰러십(rulership)을 다룬 『회남자(淮南子)』 주술(主術)편에 “당장의 끼니는 때울 수 있으나 내일 먹을 양식은 없다(有今無儲)”는 용례가 나온다. 이어 “27년 농사를 지으면 9년치의 여유가 있게 된다(二十七年而有九年之儲)”라고 했다. 이렇듯 ‘저’는 저장한 양식이나 물자, 즉 여분을 의미했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군(君)은 존귀함(尊也)”이라고 했다. 저군은 곧 준비된 존엄을 말했다.
 
저군제도는 중국 한족(漢族)의 권력 계승 시스템이다. 중국 역사에서 첫 황태자는 진시황(秦始皇)의 아들 부소(扶蘇)였다. 총명한 황태자였지만 환관 조고(趙高)와 승상 이사(李斯)의 거짓 성지(聖旨)에 속아 자살했다. 어리석은 호해(胡亥)는 제국을 무너뜨렸다. 첫 저군의 비극이다. 마지막 황태자 역시 비극으로 끝났다. 청(淸) 강희(康熙)제의 차남 윤잉(胤礽)은 황태자에 두 번 책봉됐다. 그러나 권좌에 오르지 못했다. 냉궁에 격리돼 숨졌다.
 
황태자는 제국 흥망의 열쇠다. 유가(儒家)는 적장자(嫡長子) 룰을 세웠다. 망국의 지름길인 황위 쟁탈전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송(宋) 황제 18명 중 적장자는 3명, 명(明) 황제 16명 중 5명만 적자였다. 황제는 황태자 책봉이 끝나도 끊임없이 고찰(考察)했다. 책봉을 절대 서두르지도 않았다. “창은 머리를 내미는 새를 후려친다(槍打出頭鳥·창타출두조)”는 말은 유효했다.
 
곧 중국 19차 당 대회가 시작한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6세대 저군의 등장 여부다. 그는 ‘부황(父皇)’과 정적(政敵) 사이에서 고독한 전투를 펼칠 터다. 선전을 기원한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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