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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CEO 플래너리, 주가 28배 뛴 웰치의 영광 재현할까

중앙선데이 2017.10.08 01:12 552호 15면 지면보기
기로에 선 GE
GE의 새 최고경영자 존 플래너리.

GE의 새 최고경영자 존 플래너리.

오스트리아 출신 사회주의 이론가인 루돌프 힐퍼딩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을 두고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토머스 에디슨이 1892년 세운 제조업 벤처로 시작한 GE가 재편·성장하는 동안 월스트리트의 철학을 체현했기 때문이다. 실제 GE는 1980년대 이후 금융업에 집중하며 본업인 제조업을 부업으로 만들어버렸다.

IT 기업으로 변신 시도한 이멀트
주가 하락으로 20년 만에 물러나

인수합병 전문가로 큰 플래너리
웰치식 구조조정 강행할 수 있어
일부선 ‘비 부르는 주술사’ 기대도

 
이런 GE가 또 다른 변곡점 위에 섰다. 2001년 이후 16년간 이어진 제프리 이멀트 체제를 끝냈다. 새 최고경영자(CEO) 존 플래너리(55) 시대가 올 8월 시작됐다. 한 달여 만인 지난달 GE가 26억 달러를 받고 산업용 스위치보드 등을 생산하는 부문을 팔았다. 글로벌 시장이 예의 주시했다. 플래너리의 변신이 시작되는 것일까. 미 경제전문 매체인 CNBC는 “이번 매각은 전임자인 이멀트가 추진했던 일”이라고 전했다. 플래너리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게 아니란 얘기다. 실제 그는 취임하면서 “11월 말까지 GE 사업부문을 어떻게 바꿀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주가 하락은 GE 주주들에겐 특히 민감한 일이다. GE 초기 설립자금을 댔던 투자은행 JP모건 파트너들은 수익이 줄자, 발명왕 에디슨을 뒷방으로 밀어냈다. 이후 사업부문을 전구 생산에서 기관차, 항공기 엔진, 의료장비, 발전설비 등으로 무한 확장했다. 승승장구하던 GE는 70년대 석유파동으로 첫 위기를 맞았다. 81년 구원투수로 등장한 잭 웰치는 제조업에서 금융으로 회사의 중심을 옮겼다. 무자비한 해고로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이라는 새로운 경영 트렌드를 선보였다. GE 금융부문은 한창때 전체 순이익의 절반 이상을 창출했다. 미 경제전문 월간지 포춘은 “기계나 가전제품 등 제조업 순이익 증가율이 하향 평준화한 시기에 웰치는 규제 완화 바람을 탄 금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웰치 시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가 7배로 오르는 동안 GE 주가는 28배 뛰었다. 시가총액은 3870억 달러나 불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GE가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이 아니라 ‘은행’이 돼버렸다”고 꼬집었다.
 
지난 20년간 시가총액 1500억 달러 감소
금융 전성기는 엔론 사태를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엔론은 에너지기업이었지만 GE를 본떠 다양한 금융 비즈니스를 벌이다 파산했다. GE 주요 주주들이 전통 가치인 제조업을 주목하며 2000년 이멀트를 웰치의 후임으로 선택했다. 이멀트는 제조업에 무게중심을 두며 산업용 정보기술(IT) 쪽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이멀트는 2005년 보험부문을 68억 달러에 팔았다. 100년 전통의 가전사업부는 중국 하이얼에 매각했다. GE캐피털은 웰스파고 은행에 넘겼다. 이멀트 시절 처분한 자산은 2600억 달러(약 300조원)에 달한다.
 
대신 정보기술·신재생에너지·생명과학에 투자했다. 이멀트는 “GE의 경쟁자는 지멘스가 아니라 MS·IBM”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GE 매출의 90% 이상이 항공 엔진·에너지·헬스케어·발전·재생에너지 등 신사업에서 나왔다. 굴뚝 기업의 대명사에서 하이테크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미끄러지는 주가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2001년 취임 당시 40.98달러였던 주가가 2016년 6월 28달러대로 떨어지면서 시가총액이 1500억 달러 정도 줄었다. 이멀트의 지지부진한 성과는 GE 역사에서 2차 위기다.
 
GE 주요 주주들은 전통적 가치를 중시한 이멀트 대신 딜 메이커인 플래너리를 CEO로 선택했다. 그는 30여 년 동안 GE에서 일하며 M&A 여러 건을 성사시켰다. 순이익을 내지 못한 사업부문을 재편해 탈바꿈시키기도 했다. 주가 하락에 마음이 상한 주주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들이다. 블룸버그통신은 “플래너리가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철저히 살펴 성장 가능성이 작은 부문은 과감하게 정리할 태세”라며 “GE 역사에서 한 세대 만에 정리해고 바람이 불 듯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플래너리가 잡다한 GE 비즈니스 가운데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는 분명하지 않다.
 
2019년까지 연 20억 달러 비용 축소 나서
새 CEO 플래너리의 어깨엔 2차 위기에 신음하는 GE가 올려져 있다. 웰치만큼 운이 좋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웰치가 CEO였던 80년대엔 금융업이란 뚜렷한 지향점이 보였다. 이멀트도 기술개발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이 핵심 분야였다. 반면 요즘 플래너리의 눈앞엔 그런 타깃이 없다. 플래너리는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어떤 한계도 없이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재평가하겠다”고 말했다. 전구사업마저 정리할 태세다. 전구부문은 에디슨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다. 또 신재생 에너지(파워 컨버전)와 열차 기관차 제작부문도 처분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수익력 앞엔 전통이나 역사 같은 추상적인 가치는 의미 없다는 식이다. 동시에 비용 감축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먼저 이멀트 사람들을 제거했다. 플래너리는 에너지와 운송부문을 총괄한 존 라이스 등 부회장급 3명을 올 연말 안으로 내보내겠다고 6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세 사람은 “모두 전임인 이멀트 심복으로 꼽힌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플래너리는 이렇게 사업 부문을 팔고 사람을 내보내는 방식으로 2019년까지 연간 비용 20억 달러를 줄이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모습만 놓고 보면 플래너리는 비용 절감을 통해 단기 순이익을 올려 고액 연봉을 챙긴 80년대 ‘전기톱 경영자’와 비슷하다. 전기톱은 나무 자르듯 직원을 자른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나 톰슨로이터는 “플래너리가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을 경험해본 경영자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라고 전했다. 87년 웰치의 핵심 부문인 GE캐피털에 입사한 그는 M&A 전문가로 성장했다. 2013년 GE 역사상 최대 규모인 170억 달러짜리 프랑스 알스톰 전력사업 인수가 그의 작품이다. 플래너리의 경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웰치의 향기가 난다. 하지만 무작정 사람을 자르고 비용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 역시 잘 안다. 사내에서 ‘레인메이커(가뭄 때 비를 부르는 인디언 주술사)’라는 별명을 얻은 플래너리가 어떤 장기 전략을 내놓을지 주목하는 이유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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