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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본성 따라 비폭력적 … 촛불집회는 벨벳혁명과 유사”

중앙선데이 2017.10.08 01:11 552호 14면 지면보기
체코 독재 종식 주역이 말하는 촛불
지난해 외신들은 한국의 촛불집회에 대해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 줬다”며 호평했다. 시민들이 헌법상 보장된 권리와 절차에 따라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다. 체코의 미카엘 잔토프스키(68) 바츨라프 하벨 도서관장은 “평화적으로 변화를 이뤄 냈다는 점에서 촛불집회는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독재체제를 종식시킨 벨벳혁명과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벨벳혁명을 계기로 체코는 민주공화국으로 전환했다. 이택광(49) 경희대 교수는 “혁명 이후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난달 22일 중앙SUNDAY에서 촛불집회의 의미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과제 등을 놓고 특별 대담했다.

잔토프스키 하벨도서관장
1989년 우리가 중시한 가치는 인권
진정한 혁명은 가슴에서 일어나야

이택광 경희대 교수
중간계급의 가장 큰 이념은 정의
민주주의 제도적 외연 확장해야

 
미카엘 잔토프스키 하벨도서관장은 1989년 바츨라프 하벨과 함께 체코 혁명을 주도했다. 김경빈 기자

미카엘 잔토프스키 하벨도서관장은 1989년 바츨라프 하벨과 함께 체코 혁명을 주도했다. 김경빈 기자

 
잔토프스키 도서관장=“지난해 한국 촛불집회를 보며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꼈다. 시민들의 선한 본성에 따라 비폭력적으로 축제와 같이 진행됐다는 점에서 89년 우리가 했던 것(벨벳혁명)과 다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해 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촛불집회는 한국 민주주의의 높은 수준의 가능성을 보여 줬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이택광 교수=“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체코의 벨벳혁명과 견주자면 엄밀히 촛불집회는 체제를 뒤바꾼 사건은 아니다. 벨벳혁명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정치적인 옳고 그름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촛불집회와 유사하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힘, 국민의 힘으로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기성 정치구조에 균열을 일으켰기 때문에 혁명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벨벳과 촛불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잔토프스키=“나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태어났다. 18세이던 68년 이른바 ‘프라하의 봄’이라는 짧은 민주화 시기를 겪었다. 당시 소련군이 개입하면서 8개월 만에 혁명이 좌절됐다. 개인적으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나와 바츨라프 하벨(체코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비롯한 내 친구들은 공산주의 체제는 개혁될 수 없고 폐기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후 하벨과 나는 ‘시민포럼’(지식인이 중심이 된 시민조직)을 조직해 20년간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고 결국 혁명을 이뤄 냈다. 우리가 중시한 가치는 인권이었다. 인권이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 민주주의 체제였다. 생명권,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사유재산의 자유, 공정한 재판과 수사를 받을 권리 등 기본적인 권리들이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나 서구 유럽의 산물이지만 둘 다 인간을 소외시킨다. 하벨도 말했지만 진정한 혁명은 인간의 마음, 가슴에서 일어나야 한다.”
 
=“혁명이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표현이 굉장히 시적이다.”
 
잔토프스키=“맞다. 내가 알기로 9세기의 이슬람 철학자, 고대 중국에선 시인과 철학자, 과학자 등 모든 지식인이 한 그룹이었다. 최근에는 기술자와 인간 삶의 시적인 요소들이 동떨어져 있다. 현대사회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
 
=“혁명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지만 체코는 혼란에 빠지지 않고 신속하게 민주정부를 세웠다. 역사적으로 체코·오스트리아·헝가리 등 현대 유럽 사상의 중심지인 중유럽의 사상적 뿌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 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언어학·철학·정신분석학 등 대륙 철학과 지식이 중유럽에 집중됐다. 유럽 현대사상의 터닝 포인트가 된 시기로 이를 토대로 시민에 대한 의식,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가능했다.”
 
잔토프스키=“중유럽도 유럽의 일부이기 때문에 실존주의 사상가 쇠렌 키르케고르나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 실존주의·현상학의 영향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중유럽은 20세기를 통틀어 나치즘과 공산주의라는 두 전체주의 체제를 경험했다. 견제되고 통제되지 않은 권력이 인간을 얼마나 억압할 수 있는지 20세기 반세기 동안 중유럽의 3000만~4000만 명이 몸으로 겪었다. 이런 공통의 역사가 사람들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보통 사람들에 의한 변화
지난해 한국의 촛불집회(왼쪽)는 평화 시위로 부패한 정권을 몰아냈다는 점에서 1989년 체코의 벨벳혁명과 공통점이 있다. [중앙포토, 위키피디아]

지난해 한국의 촛불집회(왼쪽)는 평화 시위로 부패한 정권을 몰아냈다는 점에서 1989년 체코의 벨벳혁명과 공통점이 있다. [중앙포토, 위키피디아]

=“촛불집회와 벨벳혁명은 모두 보통 사람들의 힘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잔토프스키=“혁명 초기에는 큰 위험을 안고 공개적으로 개혁이나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헌장77(Charter 77·하벨을 포함한 자유파 지식인들이 1970~80년대 주도한 반체제 인권선언운동)이 그 시작이었다. 처음엔 240여 명이 서명했지만 89년에는 1만~2만 명이 공개적으로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반대를 표명했다. 결정적으로 그해 한 학생의 시위가 경찰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되면서 이를 계기로 수십만 명의 사람이 광장으로 모이게 됐다. 한국의 경험과 비슷하다.”
 
=“벨벳혁명은 지식인그룹이 주도하고 대중이 동참하는 전통적인 민주화운동이었다. 촛불집회는 양상이 조금 다른데 시민들이 광장에 나오기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포럼이 이미 열려 있었다. 2013년 ‘아랍의 봄’ 때도 SNS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아랍의 경우 민주주의 경험이 일천했고 시민사회라고 불릴만한 전통이 없어 혁명 이후 주도권 싸움이 벌어졌다. 아직까지 혼란이 수습되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과거 80년대부터 이어지는 민주화 세력, 이른바 386운동권 세력이 촛불집회의 흐름에 들어오게 됐다. 논란은 있지만 촛불이 만든 공간에서 정국을 안착시킬 수 있는 수권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정권이 이양됐던 거다.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내부로부터의 혁명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 내부의 시민적 움직임을 고양시키자는 취지로 햇볕정책을 시도했지만 최근 북핵 사태를 보면 이 시도는 사실상 실패했다.”
 
잔토프스키=“북한 문제는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벨벳혁명이나 촛불집회 같은 사건이 일어날 땐 일정한 등식이 있다. 한쪽에는 좌절하고 항거할 의지가 있는 시민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공권력을 쥔 정부가 있다. 벨벳혁명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에 군부와 경찰이 있었지만 이미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프라하 외곽에 탱크가 배치됐지만 실제 사용되지 않았다. 정부는 물리력을 썼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국민뿐 아니라 국제사회까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고 있었고 폭력은 장기적으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반면 북한 체제는 시민들을 죽이고 처형하거나 감옥에 가두는 등 모든 폭력을 동원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북한은 나라라기보다 강제수용소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빠르게 사라져
=“혁명은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 이후를 유지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잔토프스키=“현실 정치의 문제다. 혁명은 굉장히 빠르게 일어났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러시아 볼셰비키는 소위 ‘영구혁명’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재앙뿐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매일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가족과 생계를 걱정한다. 만약 거리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면 사람들은 지칠 것이다. 성취된 혁명은 제도화되고 민주주의 제도의 일부가 돼야 한다. 만약 시민들이 부패 때문에 정부를 전복했다면 새로운 국회를 선출한 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새로운 규제를 채택할 것이다. 혁명은 법 체계에 의해 영속화될 것이고 당신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 보통 사람들이 나서는 건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만이어야 한다. 시스템이 부패했을 때, 민의와 동떨어졌을 때 헌법적 권리에 따라 거리로 나와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체제에 변화를 가하는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의 일부다.”
 
=“촛불집회는 자식을 교육시켜 대학에 보내고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게 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이 사회 중간계급의 정치였다. ‘세상을 바꾸자’라기보다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자’는 취지였다. 중간계급의 가장 큰 정치적 이념은 정의다. 공정성이 깨지면 자신들의 삶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광화문으로 나갔던 것이다. 보수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세상의 질서를 복원하는 힘이 됐다. 그들이 주도한 정치적 공간에서 다른 계급도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소수자 등 중간계급의 요구에서 벗어난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우리 민주주의의 제도적 외연을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정리=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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