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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가 줄어드는 시대, 시장 발작 없이 시작됐다

중앙선데이 2017.10.08 01:09 552호 18면 지면보기
자산매각 나선 미 연준
재닛 옐런 연준 의장 [AP=연합뉴스]

재닛 옐런 연준 의장 [AP=연합뉴스]

달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번달에 유가증권 100억 달러(약 11조4000억원)어치를 내다판다. 그만큼 달러를 거둬들인다. 지난달 예고된 일이다. 이른바 ‘양적 긴축(QT, Quantitative Tightening)’의 시작이다. 양적 완화(QE)를 낯설게 여기던 이들이 기대했던 ‘통화정책 정상화(Back to normal)’이기도 하다.

이달 100억 달러 회수 시작으로
석 달마다 늘려 월 500억 달러까지

주요 국가는 여전히 완화 정책
당장 글로벌 위기 가능성 작아
자본 통제 등 대책 필요 주장도

 
얼추 8년 만의 달러 회수다. 양적 완화는 2008년 11월 시작됐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1년 10개월 만에 직접 달러 회수에 나선 셈이다. 애초 양적 긴축은 2015년 정도에 시작될 것으로 예측됐다. 2년 가까이 지연된 셈이다. 시장은 상당히 조용하다. 2013년 양적 완화 축소의 충격(Taper Tantrum, 축소 발작)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연준이 자산매입 규모를 줄여 나가겠다는 뜻을 드러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 등의 통화 가치가 급락했다. 이번 연준의 자산 매각 규모가 크지 않아서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연준이 양적 완화 기간에 사들인 자산은 3조5000억 달러(3990조원) 어치 정도다. 이 가운데 자산매각 첫 달인 이달엔 0.28% 정도를 줄인다.
 
하지만 마냥 이 정도씩 줄여 나가는 것은 아니다. 석 달마다 자산 처분 규모를 늘린다. 매달 파는 규모가 500억 달러에 이를 때까지다. 톰슨로이터는 “연준의 매각 규모가 500억 달러에 이르면 양적 완화 기간 동안 매입 규모와 엇비슷해진다”고 전했다. 월 평균 양적 완화 규모는 450억 달러 정도였다. 예정대로라면 조만간 연준은 돈을 찍어 내던 속도 이상으로 빨아들이게 된다. 게다가 올 연말 안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 이상 올릴 전망이다. 글로벌 유동성의 변곡점이다.
 
유럽·일본·중국 중앙은행 탈동조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AP=연합뉴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AP=연합뉴스]

1990년대 이후 미 연준이 움직이면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들이 뒤따랐다. 메이저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수렴 또는 동조화(Convergence)다. 하지만 늘 그렇지는 않았다. 1994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이 긴축할 때 독일 분데스방크는 돈을 풀었다. 분데스방크는 연준보다 2~3년 앞서 긴축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행(BOJ)도 1994년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부양에 나섰다. 1980년대 후반 가미카제 거품이 파열하면서 시작된 침체가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려는 찰나여서였다. 다만 영국 영란은행(BOE)은 이때에도 연준과 발을 맞췄다. 런던의 특수성 탓이었다. 런던은 금융회사들이 서로 돈을 팔고 사는 도매금융 시장이다. 금융 헤게모니를 쥔 미국과 발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 [AP=연합뉴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 [AP=연합뉴스]

 
그런데 요즘 연준과는 달리 유럽중앙은행(ECB), 중국 인민은행(PBOC) 등은 긴축에 나서지 않고 있다. 다만, BOE는 운을 띄웠다. 지난달 28일 마크 카니 총재는 “실물 경제 상황이 기준금리 인상이 가능한 단계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BOE는 연준처럼 기준금리 인하뿐 아니라 양적 완화를 실시했다. 요즘 영국 물가상승률은 2.9% 수준이다.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 단계지만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발목을 잡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와 구로다 하루히코(田東彦) BOJ 총재는 여전히 경기부양 쪽에 기울어져 있다. ECB는 최근 눈에 띄게 값이 오르는 유로화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유로화 값 상승은 유로존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수입 물가를 떨어뜨려 물가 상승률 2% 달성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이 모두 ECB가 긴축으로 전환하는 기간을 길게 하는 요인들이다. BOJ는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가 조기 총선에서 총리직을 유지하는 한 긴축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PBOC 현 행장인 저우샤오촨(周小川)은 조만간 은퇴할 예정이다. 2002년 이후 15년간 이어진 그의 체제가 곧 끝난다는 얘기다. 아직 일정과 후임이 확정되지 않았다. 후임자가 뽑힌 뒤에야 통화정책 방향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크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메이저 중앙은행가들을 이끌고 한 방향으로 가는 모습은 당분간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행장. [사진 미 재무부 플리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행장. [사진 미 재무부 플리커]

탈동조화는 1990년대 금융위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나쁘지 않은 소식일 수 있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타오둥(陶冬)은 “연준이 긴축한다고 금융위기 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라 일본유럽영국중국 중앙은행이 긴축을 시작해야 위기 상황이 무르익는다”고 말했다. 실제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는 연준이 긴축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난 뒤에야 일어났다. 직전인 96년 BOJ 긴축이 연준의 돈줄 죄기 효과를 더욱 증폭시켰다.
 
터키·베네수엘라·홍콩 등 위기 가능성
당분간 탈동조화가 이어질 전망이다. 영국 금융그룹 스탠더드차터드 등은 최소한 올해 말까지는 탈동조화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더욱이 주요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에 이어 양적 축소에 나서는 시기는 내년 하반기 이후라는 게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전망이다. 디커플링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탈동조화라고 해서 글로벌 유동성이 줄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9월 내놓은 보고서 ‘미국 통화정책 정상화와 글로벌 금리’에 따르면 ECB 등의 유동성 벌충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준의 양적 축소 때문에 취약한 나라들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2013년 양적 완화 축소 시사만으로 ‘취약한(fragile) 다섯 나라’의 통화가치가 추락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인도·인도네시아·브라질 등이었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다섯 나라 사정이 개혁 등으로 많이 좋아졌다”며 “이들 나라 가운데 상당수가 그때처럼 충격에 시달리지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전했다. 다만, 터키와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등은 미국의 긴축에 흔들릴 수 있다. 또 만모한 싱 전 인도중앙은행 총재 등이 올 7월 내놓은 IMF 보고서에 따르면 페그제(고정환율)를 채택한 나라가 미국의 긴축에 취약할 수 있다. 캄보디아와 라이베리아 등이다. 실물 경제 체급에 맞지 않게 통화 가치를 높이 유지한 경우도 유동성 축소에 취약했다. 90년대 초반 영국과 같은 경우다.
 
일본 노무라홀딩스는 자체 개발한 위기경고 시스템을 바탕으로 위기 가능성이 있는 곳을 올 9월 발표했다. 홍콩이 위기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중국과 태국·브라질·콜롬비아·필리핀·칠레·싱가포르·말레이시아·터키 순이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시스템 개발자의 말을 빌려 “여러 가지 위기 증상을 종합해 순위를 매긴 것일 뿐 ‘반드시 위기를 겪는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전했다.
 
노무라의 시스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과 가계 부채 비율, 실질 실효 환율, 부동산 실질 가격, 실질 주가 등의 수십 가지 지표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홍콩은 52가지 지표가 위기 증상을 보였다. 2위인 중국은 40가지 지표가 빨간불이었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위기 증상은 2013년 급증했다가 최근 들어 완화되고 있는 흐름”이라고 전했다. 실제 지난해 4분기 중국의 위기 시그널은 41가지였다.
 
싱은 “기준금리 조절만을 통화정책 수단으로 쓰는 나라가 충격을 방어하는 데 취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긴축으로 빠져나가는 돈을 기준금리 인상만으로 붙잡아 두거나 위기 가능성을 낮출 수 없다는 것이다. 싱은 “여차하면 자본흐름을 통제하거나 거시건전성 정책 등으로 막는 게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개인의 소득을 기준으로 대출을 제한하거나, 기업과 금융회사의 단기 채무 급증을 막는 조치를 취하는 등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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