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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스타일 신경 쓰는 멋쟁이, 3주에 한 번은 ‘벌초’를

중앙선데이 2017.10.08 01:07 552호 23면 지면보기
[두 남자의 스타일 토크] 남성의 자기 관리, 그루밍
바버숍은 이발소처럼 머리를 자르고 면도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남자를 위한 문화 공간이다. [사진 황종현]

바버숍은 이발소처럼 머리를 자르고 면도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남자를 위한 문화 공간이다. [사진 황종현]

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장 트렌디한 남성 문화라면 바로 바버숍일 것이다. 멋쟁이 남성들이 모이는 바버숍은 얼핏 보면 까페나 바 같기도 하고, 당구장이나 모터사이클 숍 같기도 하다. 오롯이 남자들의 문화를 위한 공간이지만, 쾌락과 유흥이 아니라 자기 관리와 청결을 위한 곳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가 업무 효율이나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남성도 이제 자기 만족을 위해 스스로를 가꾸는 시대다. 스스로를 가꾸는 데 관심이 많은 두 명의 아저씨가 요즘의 그루밍 트렌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남성만의 공간 바버숍 증가 추세
유흥 아닌 자기 관리·청결 위한 곳

50대 이상 중년 남성도 방문 늘어
선진국일수록 옷보다 헤어에 신경

피부과 찾는 평범한 남자들 늘고
내 피부에 맞는 화장품 골라 써

관리받고 마음의 휴식도
그루밍 장려하는 문화 만들어야

 
신동헌(이하 신)=2주 전 이탈리아로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일본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너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얘? 태닝 좀 해야겠다”라고 하더라. 그런데 이탈리아 친구들도 똑같은 말을 하는 거다. 한국에서는 도통 들을 수 없는 말이라 그런지 기분이 이상했다.
 
남훈(이하 남)=이탈리아 사람들은 예전부터 피부가 흰 사람을 가난하다고 여긴다. 게다가 9월에 피부가 하얀 건 정말 이상한 거다. 왜냐면 8월이면 한 달 내내 휴가를 즐기는 나라이다 보니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피부를 이상하게 여기는 거다. ‘아 이 사람은 돈이 없어서 휴가를 못 즐겼구나’라고 생각한다.  
 
신=우리나라 사람들은 얼굴이 조금만 그을려도 농사짓다 왔냐는 농담(?)을 하는데. 까맣게 탄 피부가 노동자나 운동선수의 상징이 아니라, 자신의 여가생활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으로 보는 개념이 좀 낯설었다.
 
남=중요한 건 ‘탔다’가 아니라 ‘태웠다’라는 부분이다. 서양 사람들은 하얀 피부를 단순히 까맣게 바꾸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골고루 피부의 톤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태닝을 주기적으로 한다. 서양 사람들은 마냥 피부가 하얗고 머리카락은 갈색이거나 금발이거나 한 게 아니다. 피부나 머리카락이나 엄청난 공을 들여 색을 맞추고 가꾼다.  
 
세계 최고 멋쟁이이자 스타일 아이콘으로 불리는 피아트 창업주 외손자 라포 엘칸. [중앙포토]

세계 최고 멋쟁이이자 스타일 아이콘으로 불리는 피아트 창업주 외손자 라포 엘칸. [중앙포토]

신=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오래 생활한 이탈리아 슈즈 브랜드 토즈의 주세페 사장도 피부 톤 이야기를 했었다. “네 옷이랑 신발이 피부 톤이랑 잘 맞네”라고 하더라. 맞추려고 한 게 아니어서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머리 컬러까지 피부 톤에 맞춘다고 하기에 조금 놀랐다. 은발을 유지하는 데 적잖은 돈을 쓴다고 하더라. 우리나라 같았으면 흰머리를 없애려고 검게 염색할 텐데. 그런데 남자의 적당한 헤어숍 방문 주기는 얼마라고 생각하나.
 
남=3주? 자기관리에 관심이 있고 어느 정도 머리 스타일에 신경을 쓴다면 3주에 한 번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이면 잔머리가 너무 자라서 단정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  
 
신=내가 다니는 헤어숍에 물어봤더니 멋쟁이들은 3주, 보통 남자들은 두 달이라고 하더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직모이다 보니 잔머리 정리가 안 된다 생각하면 기간이 얼마가 됐든 숍에 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남=선진국으로 갈수록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더 많이 쓴다. 옷이나 시계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는 민감하면서 헤어스타일에는 무딘 사람들이 있다. 나는 옷보다 헤어스타일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인상을 결정짓는 요소이기도 하고.
 
신=우리나라 남자들이 머리에 신경 쓴다 하면 대부분 탈모와 관련이 있다. 탈모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 또는 막기 위해서. 멋을 부리기보다는 예방과 치료의 목적이 더 컸었는데, 요즘은 바버숍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어디서 시작된 걸까.
 
남=남자들의 취향이 생기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멋을 부리지 않는 사람은 이발소에 가고, 멋을 부리는 사람은 미용실에 가서 여자 원장에게 손질을 받았다. 즉 여자들이 보기에 예쁜 남자 헤어스타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남자를 위한, 남자들만의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게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거지.  
 
신=아주머니들의 수다가 넘치는 미용실에 앉아 있으면 은근히 남성성을 잃어 가는 느낌이 든다. 괜히 수동적이게 되고…. 반면에 바버숍은 클래식한 인테리어부터 스텝들의 확실한 패션 스타일도 마음에 든다. 단순히 머리만 하는 곳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공간처럼 여겨진다. 바버숍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는 문화인데,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트렌드에 꽤 빠르게 발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남=모든 문화는 소수가 먼저 경험하고 그 뒤로 대중화가 진행된다. 바버숍도 마찬가지다. 처음 한국에 자리 잡기 시작할 때는 가격도 비싸고 분위기에 압도되어 문턱을 넘기 힘들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20~30대는 물론이고 50대 이상의 중년 남성들도 많이 방문하는 추세다.
 
신=그루밍하면 화장품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요즘은 화장품 회사에서 군인용 위장크림도 만들더라. 보급품으로 사용하면 피부 상한다고. 우리 시절에는 보급품도 귀해서 신문지를 태워서 바르곤 했었는데. 어디에나 세대 차이가 존재하지만, 화장품에 대해서는 유독 심한 것 같다.
 
남= 반가운 이야기인데? 남자의 그루밍도 그만큼 발전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요즘은 올리브영처럼 화장품을 파는 드럭 스토어가 동네마다 있는데 굳이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 가지 않더라도 내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신=그럼 화장품에서 좀 더 나아가서 피부과에 가는 남자들은 어떤가. 나도 얼마전부터 잡티를 없애기 위해 피부과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남자 손님이 많아 놀랜다. 그것도 멋을 부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남자들이 많다.  
 
남=주변만 둘러봐도 피부과가 굉장히 많다. 그만큼 가격경쟁도 심해 조금만 발품을 팔면 보다 저렴한 가격에 관리를 받을 수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는데, 예전에는 힘들게 번 돈을 당구장이나 술집에 썼다면, 지금은 자기관리에 쓰는 시대가 된 것 같다.(웃음)
 
신=시술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나는 찬성하는 쪽이다. 리프팅이나 보톡스 같은 건 수술 없이 눈에 띄는 효과를 보이더라.  
 
남=요즘은 성형에 대한 관점도 많이 개선됐다고 생각한다. 100명의 남자 중 4명이 시술을 받아 본 경험이 있다는 기사를 봤다.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자신의 콤플렉스를 적은 비용과 시간 투자로 보완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좋은 거 같다.  
 
신=휴 그랜트 주연의 2002년 영화 ‘어바웃 어 보이’를 보면, 아버지가 작곡한 캐럴의 저작권으로 생활하는 한량이 나온다. 직업 없이 매년 12월에 목돈이 들어오면, 그걸로 1년을 사는 팔자 좋은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이 소일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재미있게도 머리를 손질받고 피부 관리를 받는 그루밍이었다. 남자가 술 먹고 노는 것 대신 피부 관리를 받는다는 설정이 꽤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현실이 된 것 같다.  
 
남=트렌드가 ‘소유’에서 ‘경험’으로 진화하고 있다. 비싼 물건을 사는 것보다 여행이나 좋은 음식, 좋은 공간을 경험해 보는 걸 더 이득으로 여기는 시대지. 경험은 남에게 보여 주기보다 자기만족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다. 피부관리도 헤어스타일도 결국 자기만족이니까. 예전에는 아저씨의 주소비 품목이 술이었다면 이제 피부와 헤어 등 자기관리로 바뀌고 있는 거다.  
 
신=나는 그루밍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마스크 팩. 마스크 팩의 권장시간은 15분이다. 팩을 붙이고 누워 있는 그 15분 동안 부부가 됐건, 부모 자식 간이 됐건 자연스레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거지. “오늘 어땠어?”라는 간지러운 질문도 얼굴을 가린 채로 하면 덜 부끄럽다(웃음). 자기관리를 뜻하는 그루밍(Grooming)이라는 말은 마부(Groom)가 말의 갈기를 빗어 주는 데서 유래한 것인데, 말을 청결하게 하고자는 목적도 있지만 말과 주인의 교감을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의 그루밍도 충분히 교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나는 여성의 역할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내 남자가 새로운 무언가에 관심을 가질 때 과민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패션이나 피부, 헤어스타일 등에 관심을 가지는 걸 건전한 취미활동 정도로 봐주길 바란다.
 
신=패션에 관심이 전혀 없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놀랍게도 네일숍에 다니더라. 남자가 그런 델 다니냐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손을 맡기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거다. 이거야말로 그루밍의 순기능이 아닐까. 관리와 동시에 마음의 휴식처 역할까지 한다니.
 
남=남자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점점 건전해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거다. 그루밍을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슈케어샵이나 시가 바 같은 공간도, 건전한(?) 수컷들을 위한 공간이니 우리나라에도 좀 많아졌으면 좋겠다.
 
 
신동헌 스포츠투데이·에스콰이어 기자를 거쳐 남성패션지 레옹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온갖 놀거리를 섭렵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패션뿐 아니라 카메라·오디오·전자기타·자동차·모터사이클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취미를 자랑하는 순혈 마초다.
 
남훈 남자의 복장과 패션에 대한 연구를 삶의 목표로 삼은 클래식 슈트 매니어. 패션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업과 협업해서 브랜드와 편집숍을 함께 만들었다. 자신만의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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