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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한테 그때 왜 그랬어요

중앙선데이 2017.10.08 01:00 552호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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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추석 연휴 덕에 보고픈 이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려 본다. 그 와중에 아파서, 창피해서 침묵했던 기억을 끌어낸 ‘아이 캔 스피크’(2017, 김현석)를 보았다.
 

휴지 필요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위안부 옥분 할매 침묵깨기 과정
눈물과 감동의 연대로 풀어내
큰 울림으로 사과 문제에 접근

“팝콘보다는 휴지를 사야 한다!” 이 조언은 위안부 할머니 세 분을 그려 낸 캐나다 다큐  ‘어폴로지’(2016, 티파니 슝)가 지난 3월 개봉했을 때 곁들여진 말이었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도 휴지가 필요한 영화의 매력을 보여 주고 있다. 영어를 한글로 쓴 제목 자체가 이 드라마의 관건이다. 모국어로도 못했던 하고픈 말을 영어로 말해야 하는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 드라마의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유사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로 ‘홀로코스트 테마장르’가 이루어진 것처럼, 한국영화가 ‘위안부 테마장르’의 종주국이 된 것은 역사적 소명처럼 보인다. 1990년대 초,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과 더불어 한국 여성단체들이 연대해서 정대협을 창설한 이후, 위안부를 기리는수요집회와 평화의 소녀상이 세계사적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의 파고를 타고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웃음과 눈물을 유포하며 세계시민적 울림으로 가해자의 사과 문제에 접근한다. 복지부동형 공무원에게 일 주는 게 주업무로 보이는 할매 옥분(나문희)과 원칙주의자 공무원 민재(이제훈)의 밀당관계는 역동적 유머를 산포한다. 재래시장을 휘저으며 8000여 건에 달하는 민원을 접수한 옥분은 ‘도깨비 할매’로 불리우는 구청의 골칫거리이다. 특히 재개발 돈독이 오른 건설업자와 시장 상인들의 싸움이 옥분과 민재의 캐릭터 대립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그런 대립은 따뜻한 된장찌개가 곁들여진 밥상을 통해 대안가족관계로 변모한다. 이렇게 진화된 유대관계는 민재가 옥분이 졸랐던 영어선생을 하면서 그간 숨겨 온 비밀과 진실이 점차 드러난다. 옥분 할매의 아픔을 먼저 직감한 민재의 동생 영재(성유빈)는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가 왜 시장에서 오지랖 떠는 줄 알아? 외로워서 그래”라고.
 
전쟁통에 끌려가 성노예 피해자가 되어도, 버린 몸이라며 아픈 기억을 숨겨야만 하는 여성들. 더 오래 전에도 청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다 귀향한 여성들을 ‘환향녀’라고 혐오한 과거사도 있다. 피해를 당한 여성에게 정조관념을 적용해 침묵시켰던 우리의 전통적 덕목은 악습이다. 그런 악습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존재하는 것일까? ‘위안부 테마영화’에는 침묵을 깨고 공적인 영역에서 진실을 말하는 용기가 기폭제로 작동한다. 침묵깨기에서 세 할머니들 저마다 다른 방식을 보여 주는 ‘어폴로지’도 피해자에서 인권활동가로 변모한 길원옥 할머니에 초점을 맞춘다.
 
코믹하게 시작한 이 작품에서도 옥분 할매의 침묵깨기 과정이 힘겨운 눈물과 감동의 연대로 풀려 나간다. 피해자에서 인권활동가로 변신한 친구 정심(손숙)과의 우정과 유언적 당부, 민재와의 연대는 옥분 할매의 결단에 기폭제로 작동한다. 비밀로 간직했던 아픈 기억을 증언하기로 한 옥분 할매는 어머니 산소에 찾아가 전복적 결단을 토로하며 오열하는 명장면을 보여 준다. “엄마! 나한테 그때 왜 그랬어유! 왜? 엄마! 나한테 ‘욕봤다’ 한마디만 해줬으면 됐는데…” 바로 그거다. ‘가화만사성’을 외치며, 가족이 가장 가까운 공동체라지만, 비밀과 침묵을 강요하는 위선은 대안가족을 구상하게 만든다. 대안가족 관계에 들어선 민재가 옥분 할매가 영어로 누구에게 할 말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사내는 우는 게 아니다”라는 속설도 구태다. 남자 관객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극장 안에서도 느껴질 정도니 세상은 변했다. 하고픈 말을 참는 것처럼 눈물 참기도 ‘화병(Hwa-Byung)’을 일으킨다. 화병을 한국형 문화고유장애로 미국정신의학협회가 규정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막판에 절정을 이루는 풍경은 미국 하원의회 청문회 장면이다. 옥분 할머니는 이제 하고픈 말을 영어와 한국어로 표현하는 감동적 진화를 보여 준다. 그 실화적 근거인 2007년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통과로 청문회가 이뤄졌다. 그런데도 2015년 12월 28일 체결된 한·일위안부협의는 역사적 기억과 증명을 무시한다. 바로 그런 부조리한 세상에서, ‘위안부 테마장르’는 가해자 일본의 사죄를 요청하는 현실에 접속한다. 그런 접속이 한국영화 존재의 힘이란 점을  ‘아이 캔 스피크’가 말해 주고 있다.
 
 
유지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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