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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강소기업이 강한 까닭

중앙선데이 2017.10.08 01:00 552호 30면 지면보기
일상 프리즘
집 근처 우면산에 다녀왔다. 청량하게 울리는 풀벌레 소리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다. 어디선가 본 글 중에서 가을엔 기온이 떨어지면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지표면 위로 흘러 다녀 더욱 또렷이 들린다고 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높고 푸르다. 선조들 얘기처럼 가을은 책을 가까이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산을 오르다 어릴 때 즐겨 읽었던 동화가 생각났다. 한국 고전도 많이 읽었지만 금발에 파란 눈의 공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백마 탄 왕자가 멋있게 구해 주는 이야기도 좋아했다. 조금 철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그 많은 왕자와 공주는 어디서 나왔느냐’였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호기심도 사라졌다.
 
한참 지나 독일 기업과 인연을 맺고 유럽으로 출장을 다니다 무릎을 탁 쳤다. 어린 시절 궁금증이 한순간에 풀렸다. 유럽 곳곳엔 작고 아담한 성들이 많다. 바로 그 성들이 과거 서양 동화에 등장했던 왕국이었던 것이다. 독일만 해도 중세엔 300여 개 연방 국가였다. 왕국의 자손 중 한 명이 왕위를 물려받으면 나머지 형제는 시종을 거느리거나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러 나섰다. 그러다 우연히 공주를 구하거나 전쟁터에서 승리하면 영웅이 돼 민담처럼 전해졌다. 유럽 중세시대 기사 문학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기도 하다.
 
필자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여러 차례 읽었다. 특히 첫 권 서문의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문구를 좋아한다. 이번엔 처음 이 문구를 접한 순간처럼 깊은 울림을 받았다. 독일에 대해 품고 있던 궁금증들도 풀렸다. 그동안 독일 사람들의 열렬한 축구 사랑이 의아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매년 꼴찌를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한다. 독일인들에게 응원하는 팀은 단순히 연고지를 떠나 그들의 고향이었고 그들의 고국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은 옛날에도 타지로 옮기더라도 결국 같은 나라였지만 독일에선 이민이었다. 그러니 미우나 고우나 내 고향의 팀을 아끼고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가 세계적인 독일형 강소기업이 나온 토대라고 생각한다. 과거 창업가들에게 회사나 공장을 고향에 세우지 않고 타지, 다른 나라에 세우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세운 기업은 그 나라에서 유일한 회사나 공장일 가능성이 크니 오랫동안 뿌리내렸다. 또한 성내에 있는 고객이 전부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봉사했을 것이다. 옛날에 독일 회사들이 반경 100㎞를 넘어가면 물건을 팔지 않았던 이유도 이해가 됐다. 한국에선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다. 그만큼 중앙집중이 되다 보니 모든 것이 수도에서 결정되고 기회도 많다는 의미다. 반면 서양 속담에선 사람을 수도로 보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환경이 다르니까 다른 모습의 문화가 생기고 이어져 가는 것이다.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는 것을 따지기보다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이 가을, 마음이 풍요롭게 편안해지리라.
 
 
안규문
전 밀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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