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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보다 8배 높게 날리고, 가장 멋있을 때 떠나다

중앙선데이 2017.10.08 00:54 552호 25면 지면보기
국민타자 이승엽, 전설 속으로
이승엽이 3일 열린 은퇴식에서 관중석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이승엽이 3일 열린 은퇴식에서 관중석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린 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경기가 끝난 뒤 관중들은 한 명도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라운드에 홀로 선 등번호 36번의 삼성 선수에게 찬사를 보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를 바꾼 ‘국민타자’ 이승엽(41·삼성)을 향한 것이었다. 이날 경기는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승엽의 고별 무대였다. 이승엽은 팬들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보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95년 삼성투수 입단 후 타자로 전향
日 왕정치의 외다리 타법 장착
2003년 아시아 최다 홈런 기록
WBC 등 국가대표로 맹활약 펼쳐
후배 군 면제 ‘합법적 병역 브로커’
프로야구 첫 ‘은퇴 투어’ 주인공

 
이승엽은 1995년 삼성 입단 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 3년 만에 홈런왕과 MVP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2003년엔 오 사다하루(55홈런)를 뛰어넘어 단일 시즌 아시아 홈런 기록을 세웠다. 태극마크를 달고도 고비 때마다 한 방을 터트린 그에게 ‘국민타자’란 칭호는 안성맞춤이었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지 9년 만에 돌아온 그는 소속팀 삼성에 세 차례 더 우승컵을 안겼다. 프로야구 판을 바꾸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선수, 그게 이승엽이었다.
 
변신, 변신, 또 변신 … 노력한 천재 이승엽
이승엽이 1회말 타석에 들어서자 환호하는 관중들. [연합뉴스]

이승엽이 1회말 타석에 들어서자 환호하는 관중들. [연합뉴스]

“왼팔로 (1994년) 우승팀 LG를 꺾겠습니다.”
 
1994년 12월, 삼성 입단을 확정지은 경북고 ‘좌완투수’ 이승엽은 당돌했다. 그리고 1995년 1월 1일, 이승엽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고교 시절 입은 왼쪽 팔꿈치 부상 때문이었다.  미국 베로비치 전지훈련에 합류한 이승엽은 훈련 시작 일주일 만에 방망이를 들었다. 우용득 당시 감독과 박승호 타격코치는 1994년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홈런왕에 오른 이승엽의 타격 재능을 살리고 싶어 했다.
 
“싫습니다.” 이승엽은 대뜸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팔꿈치가 아파 투수 훈련을 할 수 없으니 나중에 다시 투수를 해도 좋다”는 설득에 넘어갔다. 후반기부터는 다시 투구 훈련을 한다는 약속도 받아 냈다. 이승엽의 타격 솜씨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대타로 데뷔전을 치른 이승엽은 LG 간판 김용수를 상대로 중전 안타를 때렸다. 이승엽은 타율 0.285, 13홈런, 73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투수로 돌아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은퇴식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는 이승엽. [뉴스1]

은퇴식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는 이승엽. [뉴스1]

“너 똑딱이타자 할래? 홈런타자 할래?” 이듬해 삼성 지휘봉을 잡은 백인천 감독은 이승엽의 야구 인생을 또 한 번 바꿔 놓았다. 중거리타자였던 이승엽에게 홈런타자가 되라는 조언을 한 것이다. 이승엽은 백 감독의 충고를 받아 일본프로야구 최다 홈런 기록(868개)을 세운 오 사다하루(王貞治)가 사용했던 ‘외다리 타법’을 장착했다. 내딛는 발인 오른 다리를 한껏 들어올린 뒤 스트라이드를 해 힘을 싣는 타법이다. 백 전 감독은 “승엽이는 머리가 정말 좋았다. 내가 말해 준 걸 그대로 흡수했다”고 회상했다. 1997년, 이승엽은 만 22세의 나이에 최연소 홈런왕(32개)에 올랐다. 이듬해 외국인선수 타이론 우즈에 밀려 2위를 차지했지만, 1999년엔 프로야구 최다홈런 신기록(53개)을 세우며 다시 정상에 올랐다.
 
“타격폼을 왜 바꾸나 싶었다.” 타격의 달인 양준혁은 후배 이승엽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2001시즌 중반부터 이승엽이 다리를 내려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승엽과 박흥식 타격코치(현 KIA)는 상의 끝에 떨어지는 변화구와 몸쪽 공에 대처하기 위해 장점을 버리기로 했다.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승엽은 2002시즌 홈런왕(47개)에 올랐다. 그해 삼성은 한국시리즈 여덟 번째 도전 끝에 정상에 올랐다. 한국시리즈 6차전 9회에 터진 이승엽의 동점 홈런이 결정적이었다. 박흥식 코치는 “승엽이는 천재다. 하지만 잘 풀리지 않을 땐 다른 선수처럼 똑같이 고민했다.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대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이승엽의 좌우명이다.
 
잠자리채 신드롬, 억대 호가한 홈런볼
이승엽 홈런볼을 잡기 위해 잠자리채 등을 들고 있는 관중들(위 사진). 이승엽의 55·56호(2003년), 일본 진출 후 첫(2004년) 홈런볼. [특별취재반, 중앙포토]

이승엽 홈런볼을 잡기 위해 잠자리채 등을 들고 있는 관중들(위 사진). 이승엽의 55·56호(2003년), 일본 진출 후 첫(2004년) 홈런볼. [특별취재반, 중앙포토]

2003년 야구장엔 잠자리채 열풍이 불었다. 이승엽이 오 사다하루의 단일 시즌 최다 홈런(55개) 기록을 깨트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이승엽의 홈런볼을 잡기 위해 팬들은 오른쪽 외야석으로 몰렸다. 왼손타자 이승엽이 당겨서 홈런을 날릴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잠자리채와 글러브는 물론 고기를 잡을 때 쓰는 뜰채까지 등장했다. 아시아 시즌 최다 타이인 55호 홈런공은 뜰채를 가져온 20대 젊은이에게 잡혔다. 야구장 밖에선 상인들이 잠자리채 특수를 누렸다. 이승엽 신드롬이 1000억원대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나왔다. 1995년 500만 관중 돌파 이후 하락세를 걸어 2002년(239만 명) 바닥을 쳤던 야구 인기도 회복세로 돌아섰다.
 
스포츠 스타의 기념품에 대한 가치가 국내에서 조명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해외에선 유명선수들의 기념비적인 물품들이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된다. 역대 최고 낙찰가는 베이브 루스가 1920년 입은 뉴욕 양키스 유니폼(상의)으로 442만 달러(약 50억7000만원)였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가 메이저리그 최초로 70홈런 벽을 깬 공은 무려 300만5000달러(34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MLB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 배리 본즈의 통산 756호 홈런볼은 75만2467달러 20센트(8억6000만원)에 팔렸다. 미국에는 기념비적인 공을 쫓아다니는 ‘볼 호크(Ball Hawk)’라는 전문사냥꾼들도 있다.
 
이승엽의 56호 홈런볼에 대한 가치는 최소 1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해 6월 22일 이승엽이 기록한 아시아 최연소 300호 홈런볼 가격이 1억200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구관영 에이스테크놀로지 회장은 이 공이 국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을 주운 회사원으로부터 직접 구매했다. 55호 홈런볼은 TV 홈쇼핑 경매를 통해 1억2500만원에 낙찰됐다가 구매의사를 철회했다. 2003년 10월 2일 대구 롯데전에서 이승엽은 이정민을 상대로 시즌 56호 홈런을 때려 냈다. 이 공을 주운 이는 삼성 구단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이 직원은 구단에 공을 기증했고, 삼성은 답례로 당시 시세 3000만원 정도였던 56냥 황금공을 선물했다.
 
홈런볼 열풍은 2012년 국내 복귀 후에도 이어졌다. KBO리그 통산 400홈런, 한·일 600홈런, 현역 마지막 홈런 등을 잡기 위해서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15년부터 펼친 SAFE 캠페인 때문에 길이 1m가 넘는 잠자리채 반입은 금지됐지만 우측 관중석에 많은 팬들이 몰렸다.
 
국가대표 4번타자 이승엽도 잊을 수 없다. 이승엽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에서 일본 에이스 마쓰자카에게 삼진 3개를 당한 뒤 8회 결정적인 2루타를 날려 동메달을 안겼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일본전에서도 1-2로 뒤진 8회 투런홈런을 터트려 도쿄돔을 침묵에 빠트렸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과 결승에선 연이어 결승홈런을 터트렸다. 동료, 후배들에게 병역 특례를 선물한 이승엽에게 ‘합법적 병역브로커’란 별명도 붙었다.
 
아내 시구로 시작된 은퇴경기 화려 
이승엽 은퇴경기에서 시구하는 부인 이송정씨. [연합뉴스]

이승엽 은퇴경기에서 시구하는 부인 이송정씨. [연합뉴스]

메이저리그에선 새로운 은퇴 문화가 자리잡았다. 은퇴예정 선수가 마지막 원정경기에서 상대 팀에게서 선물을 받는 ‘은퇴 투어’다. 치퍼 존스(애틀랜타),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이상 뉴욕 양키스), 데이비드 오티즈(보스턴) 등 리그를 대표한 선수들이 이 혜택을 누렸다. 한국프로야구 역사를 새로 쓴 이승엽이 프로야구 첫 번째 ‘은퇴 투어’ 주인공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8월 11일 ‘은퇴 투어’ 구단이었던 한화는 대전구장 바로 뒤에 있는 보문산의 소나무로 만든 분재를 선물했다. 이곳에서만 28개의 홈런을 쳐 보문산 정상까지의 거리인 2600m를 훌쩍 넘겨버린 이승엽에게 꼭 걸맞은 선물이었다. 넥센은 고척돔 잔디와 유니폼을 선물했다. 롯데는 대형 잠자리채와 순금 10돈 크기의 모형 잠자리채를 함께 전달했다. KIA는 1995년 5월 2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해태전에서 이승엽이 친 프로 데뷔 1호 홈런이 떨어진 관중석 의자를 선물했다.
 
kt는 수원 화성 행궁 안의 화령전 운한각을 그린 인두화를, NC는 창원 시민 공공 자전거인 ‘누비자’ 모형을 선물했다. 두산은 2군 홈구장이 있는 이천 특산품인 도자기에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새겨 건넸다. SK는 36번이 새겨진 여행용 캐리어를 선물하며 ‘수고했다’는 뜻을 전했다. 지난 1일 마지막 은퇴 투어를 개최한 LG는 이승엽이 사용하는 배트의 재질로 된 목각 기념패를 수제작했다.
 
이승엽의 아내 이송정(35)씨의 시구로 시작된 은퇴경기는 화려했다. 이승엽은 첫 타석에서 한현희의 낮은 직구를 걷어올려 오른쪽 담장 밖으로 날려 보냈다. 다음 타석에서도 이승엽은 또다시 힘찬 스윙을 했다. 프로야구 15시즌에서 이승엽이 때려 낸 467번째 홈런. 한·일 통산은 626홈런. 비거리 총합은 7만4070m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산 높이의 8배가 넘는다. “가장 멋있을 때 떠나고 싶다”던 자신과의 약속대로였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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