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힙합 꼬라지’ 못 봐 주겠다는 당신의 꼰대 꼬라지

중앙선데이 2017.10.08 00:02 552호 26면 지면보기
[CRITICISM] 사회를 보는 숨김없는 거울, 힙합
힙합 뮤지션들.

힙합 뮤지션들.

힙합이 대세다. TV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공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어른들은 힙합을 모르고 아이들은 힙합을 숭배한다. 힙합을 모르는 어른들을 아이들은 조롱한다. 쇼미더머니 시즌6에서 지코&딘 팀이 불러서 유명해진 ‘요즘 것들’은 거의 대놓고 꼰대를 물먹인다.

힙합은 장르 아닌 ‘포괄적 문화’
랩, DJ, B-boy, 그래피티 등
‘길 위의 예술’은 다 힙합 문화 식구
멜로디 거세 … 음정보다 톤 중시
백인들의 저작권 개념 자체를 폐기

퇴조하는 듯하다 다시 살아나
강인한 생명력 … 국악과 협연 늘어
끊임없이 증식하며 새 스타일 창조

 
“묵묵하시던 아저씨도 (What the f…) 꼭 한번씩 뭐라 하시죠 옷 입은 꼬라지 저 꼬라지 좀 보라지.”
 
프로듀서인 딘(Dean)이 직접 부른 이 프리훅(pre-hook: 후렴 이전에 미리 하는 선후렴)에서 그 ‘꼬라지’는 물론 아저씨의 관점에서 본 힙합하는 애들의 꼬라지다. 그 꼬라지를 못 봐 주겠다고 하면 꼰대가 된다. 역으로 그 꼬라지가 꼰대의 꼬라지다. 냉소적이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주목을 받은 해시스완(Hash Swan)은 아예 이렇게 아저씨를 놀려 댄다.
 
“요즘 애들이 이래요 이런 말을 하면 꼰대래요 풉 풉 풉 메롱.”
 
물론 거들먹거리는 래퍼들을 느끼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다. 그러나 그 아이들조차, 힙합을 깔보기보다는 그저 불편해할 뿐이다. 그들도 힙합의 힘을 인정하고 그 영향력에 공감한다. 심지어 이제 힙합에 열광하는 아재들마저 등장하고 있다. 도대체 힙합의 어떤 면이 이 땅의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노래의 통념에 대한 가차없는 테러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힙합은 음악 장르의 이름이 아니라 여러 실행들을 포괄하는 문화의 이름이다. 마이크를 들고 랩을 하는 MC, 리듬을 만들고 뒤섞고 플레잉하는 DJ, 춤추는 B-boy, 길거리에 낙서하는 그래피티(graffiti) 아티스트가 모두 힙합 문화의 식구들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길’ 위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이다.
 
도끼

도끼

힙합은 문화적 테러다. 가장 우선적으로 힙합은 서양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노래의 통념에 대한 가차없는 공격이다. 힙합에는 멜로디가 없다. 멜로디, 즉 선율은 서양 사람들이 노래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음악적 요소다. 힙합은 멜로디를 거세하고 그 자리에 랩의 플로우(flow유장한 힙합적 흐름)를 갖다 박는다. 음정(note) 대신 톤(tone)이라는 개념이 들어선다. 톤은 말투와 음정의 중간쯤 되는 음악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어쩌면 톤은 음정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한 개념일 수 있다.
 
게다가 힙합은 기존의 창작개념에 대한 테러다. DJ는 ‘샘플링’의 방법으로 기존 음반의 음악적 요소를 복제한다. 일종의 도둑질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Lou Reed)가 부른 ‘워크 온 더 와일드 사이드(Walk on the Wild Side, 1972)’의 유명한 도입부는 이스트 코스트 최고의 힙합 그룹 중 하나인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의 ‘캔 아이 킥 잇(Can I Kick It?, 1990)’에서 샘플링되어 부활한다. 이처럼 샘플링을 통해 올드 스쿨이 다시 태어나 현재화한다. 샘플링은 패밀리 중심의 힙합 문화가 음악적으로 연대하고 서로의 세포를 교환하며 증식하는 중요한 방법적 도구다.  힙합은 백인이 만든 저작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쓰레기통에 폐기시켜 버린다.
 
또한 힙합은 풍속에 대한 테러다. 영어 사용자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용하기를 꺼려하는 ‘f’ 자가 들어간 단어(fuck)를 힙합 아티스트들은 거리낌 없이 구사한다. 욕설이 난무한다.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있는 그대로다. 마약과 섹스, 성적 비하와 폭력, 가난과 비참, 밀거래와 돈맛이 공공연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이 힙합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렇다고 힙합이 거기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다. 정글에서 사자나 물소가 먹이사슬 체계에 순응하듯, 그들은 정글의 법칙에 따른다.
 
힙합이 종횡무진이다. 국악과 힙합의 협업도 이젠 낯설지가 않다. 왠지 판소리와 랩은 통하는 면이 있다. 힙합 문화의 한 축인 ‘비보잉’은 인기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한때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외교사절 노릇을 했다. 힙합의 또 다른 축인 그래피티도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 전시를 마친 전설적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Banksy)의 한국 전시가 관람객들의 열띤 관심 속에 일주일 연장되기도 했다. 음악, 춤, 시각예술의 영역에서 힙합은 끝없이 증식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낳는다.
 
길의 관점서 삶을 조망하는 세계관 
힙합은 삶을 꾸리는 방식, 일종의 라이프스타일이며 길의 관점에서 삶 전체를 조망하는 하나의 세계관이다. 한때 힙합의 퇴조가 가시화하는 듯했다. 2005년 시사주간 타임은 “힙합이 죽어 가고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힙합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포장마차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안락하고 따스한 ‘집’의 문화 반대편에 있는 힙합은 잡초처럼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집 없는 이들은 공공의 공간을 불법으로 점유하여 삶을 꾸리고, 그 터전에서 예술을 한다. 길 위의 인생은 경찰들에 늘 쫓겨다닌다. 심하게 말하면 그들은 ‘공공의 적’(Public Enemy·퍼블릭 에너미)이다. 퍼블릭 에니미는 전설적인 초기 힙합 그룹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들은 ‘혁명은 TV로 방송되지 않는다’고 랩한다. 그래서 그들은 ‘검은 CNN’이라 불렸다. 1980년대 이후 흑인 거주지역이 비참한 정글로 변했을 때 웨스트 코스트의 N.W.A. 같은 갱스터 힙합 그룹은 그 정글의 삶을 숨김없이 랩에 담아 냈다. 그들의 랩은 범죄 보고서와 비슷하다. 길 위의 삶 자체가 불법이므로 그들의 생존은 그대로 전복적인 위험성을 띤다. 그 지점에서 제도권적 저항과 힙합적 전복이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스스로 의식하기도 전에 문화적 저항이 되어 버리는 힙합은 길 위의 관점에서 사회를 보는 숨김없는 거울이다. 사회가 감춰 왔던 것을 힙합은 드러낸다. 바로 거기서 힙합의 에너지가 분출된다. 
 
성기완 교수

성기완 교수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계원예술대 융합예술과 교수
시인, 뮤지션. 아프로-아시안 퓨전 록 밴드 ‘아싸(AASSA)’의 멤버. 인디 록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전 멤버. 현재 아싸의 신보를 준비하고 있으며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PC통신 ‘크레올’ 아재의 힙합 체험사] 처음 접하고 어리둥절, 리듬은 매혹적 현진영·이주노 즉석 춤배틀에 입이 쩍 
 아재라고 너무 욕하지 마라. PC 통신 하이텔 닉네임 크레올(creole)이라고 해. 나는 너네들이 아직 수정체가 되기도 전에 힙합을 들었단다. 아니, 솔직히 말할까? 아저씨도 그 역사와 함께했어. 아저씨가 힙합을 처음 들은 것은 1980년대 초반 미군방송(AFKN TV)의 흑인음악 프로그램에서였지. 흑형들이 나와서 노래는 하지 않고 랩을 하는데 이게 무슨 음악인가 싶었다. 뜻도 모르고 맥락도 이해가 안 가 어리둥절했지만 그 리듬만은 매혹적이었어.  
 
지금 기억하기로는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의 전설적인 올드 스쿨 넘버 ‘플래닛 록(Planet Rock)’ 비슷한 리듬이 아니었나 싶다. 힙합 디제이가 디제잉을 하는 춤판은 1985년 강남역에 있던 ‘월팝’이라는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구경했지. 동창이 주최한 고팅에 나갔었는데 그때 힙합의 박진감 넘치는 리듬을 처음 느꼈던 거야. 고팅이 뭔지 아니? ㅋㅋ 촌스러운 거니까 몰라도 돼.  
현진영

현진영

  
1980년대 후반 이태원 ‘문라이트’에서 현진영, 이주노 등 당대 최고의 춤꾼들이 벌이는 즉석 춤배틀을 봤을 때 입을 다물지 못하겠더군. 당시의 문라이트보다 더 쿨한 힙합 클럽은 지금도 구경하기 힘들단다. 그때가 한국 힙합의 성장기 아닌가 싶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들었을 때 퍼블릭 에너미의 목소리가 샘플링된 걸 알았고 얘네들도 제대로 힙합을 들었구나 생각했지. 하이텔의 흑인음악 동호회 ‘블렉스(Blex)’가 활동하던 1990년대 중후반에 한국의 언더 그라운드 힙합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을 봤어. 그들이 낸 ‘검은 소리 vol.1(2007)’라는 음반은 음악적 완성도에 관계없이 하나의 정신으로 기억된다. 가리온, 다 크루, 주석 같은 인디 힙합 팀들이 묵묵히 힙합 정신을 이어 가는 것이 멋져 보였어. 아직 YG로 넘어가기 이전의 홍대 힙합 클럽 NB에 일본의 전설적인 DJ인 디제이 크러시(DJ Krush)가 업타운, 가리온 등과 함께 무대를 열기로 꽉 채우던 때가 생생하다. 놀랍게도 디제이 크러시는 턴테이블 세 대를 자유자재로 플레잉 했어. 그때 그런 걸 처음 봤다. 갑자기 인디 힙합 모음집 ‘1999 대한민국’ CD를 다시 꺼내 들어보고 싶어지네. 앨범 표지에 ‘18세 미만 청취불가’ 딱지가 떡~하니 붙어 있는 DJ DOC의 CD는 딱지를 안 뗀 채 소장하고 있다.  
 
2003년 디제이 섀도우(DJ Shadow)가 을지로3가에 있던 국내 최초의 스탠딩 전용 공연장 트라이포트 홀에서 멋진 디제잉을 선사하던 때도 기억나는 순간의 하나.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가 게스트 디제잉을 했지 아마. 이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0여 년이 흘렀고, 힙합은 우리 땅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 장르의 하나로 자리 잡은 거야.  
 
끝으로 기억나는 에피스도 하나만 더 얘기하고 마칠게. 21세기가 될 즈음, 홍대 놀이터 옆에 있던 지하 힙합 클럽(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재 기억력, 양해 바람)에서 허니 패밀리의 명호가 끝도 없이 프리스타일 랩을 하던 것. 관객이 거의 나뿐이었으니 이건 넋두리에 가까운 거였어. 마치 봇물 터지듯 랩을 쏟아 내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자기는 어렸을 때 언어장애가 있었다는 거야. 그때의 억압이 이렇게 신들린 듯 나오는 랩으로 전복되고 있었어. 힙합이 저런 거구나 싶었다. 더 늘어놓으면 진짜 아재의 추억이 될 게 뻔하니까, 이 정도에서 그치자. 이 땅에 더욱 멋진 힙합 문화가 꽃피길 바라며, 아재답게 피스~ 아웃~!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