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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 준비 5년 만에 끝내기(27) 노후준비의 새 트렌드] 자산의 크기보다 소득 관점의 은퇴 설계를

중앙일보 2017.10.08 00:02
수익률에만 매달리면 노후자금 조기 고갈 위험 커…현금흐름 창출하는 자산 중심으로 운용해야



노후준비는 은퇴 후 생활비로 쓸 재원을 되도록 많이 만드는 것이 좋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이게 쉽지 않다. 갈수록 노후기간이 길어지는 고령화에 저금리·저성장의 덫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재산 증식을 위한 재테크가 잘 먹혀 들지 않는다. 돈을 굴려 수익을 남기고 재산의 크기를 불리는 일이 수월치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쥐꼬리 같은 금리를 주는 은행 상품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일. 뭔가 새로운 자산관리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노후빈곤을 각오해야 한다. 이는 우리보다 고령화 문제를 먼저 경험한 일본의 고민이기도 했다.
 
고령화 먼저 경험한 일본의 선택
지난해 9월 출간된 [2020 시니어 트렌드]는 50대 이상의 인구가 많아지는 초고령 일본 사회의 각종 현상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앞으로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전망한 책이다. 책은 ‘하쿠호도 새로운 어른 문화 연구소’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7년 간 일본의 40대부터 80대까지 실시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심층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은퇴설계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해당 대목을 인용해 보면 “지금까지 은퇴설계는 노후에 얼마가 필요 한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했다. 매달 필요 생활비를 알아보고 가족행사나 여행에 들어갈 비용을 따져 필요 자금을 계산해냈는데, 대다수 사람은 지금까지 모은 자산과의 금액 차이가 너무 커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특히 정년을 앞둔 예비 은퇴자나 이미 은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좌절에 빠진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후에 얼마가 필요한가가 아닌 노후에 쓸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나를 파악하는 계산 방식이 새로 등장했다. 은퇴 시점의 보유 자산을 기준으로 60대부터 90대까지 매달 얼마씩 쓸 수 있는 지 계산한 후 최소 생활비용을 뺀 나머지를 노후 자금으로 사용한다. 이 걸로 여행이나 투자를 하면 불안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만 해도 은퇴자금 하면 자산의 크기가 이슈였다. ‘10억원이 필요하다’ ‘7억원이면 돼’ 식이었다. 그러나 요즘 이런 이야기는 거의 오가지 않는다. 월 200만원, 300만원 등 소득 관점으로 바뀐 것이다. 소득 관점의 은퇴설계는 고령화·저금리가 촉발한 것이지만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은 개념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MIT대학의 로버트 머튼 교수는 “과거에는 무조건 높은 수익률을 거둬 많은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은퇴 후 원하는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소득을 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은퇴 준비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은퇴 후 소득을 먼저 알아본 뒤 여기서부터 거꾸로 얼마를 저축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동산을 전체 자산으로 계산해 노후를 준비하다가는 자칫 부동산을 팔지 못해 현금이 쪼들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월 소득 목표를 300만원이라고 잡고, 100만원은 국민연금, 50만원은 퇴직연금, 50만원은 연금저축, 100만 원은 일과 임대소득으로 마련하겠다는 소득 관점의 계획을 짜라는 조언이다. 아울러 자산의 수익률에만 초점을 맞추면 시장 상황에 따라 노후자금이 일찍 바닥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보유 자산을 늘리고 수익률을 높이는 방향을 추구하다간 오히려 너무 많은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자산 운용에서 수익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리스크도 커진다는 것은 기초 상식이니까. 욕심을 부려 은퇴자산을 키우려다 실패하게 되면 노후는 재앙이 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무전 장수’다. 꼭 리스크를 들먹이지 않아도 요즘 같은 1% 대의 초저금리 기조에선 자산 불리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2014년 국내에서만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인터스텔라]를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는 중력과 시간의 관계 같은 우주의 법칙을 생생하게 표현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중력이 클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처럼, 초저금리로 갈수록 자산 증식에 걸리는 시일이 가속적으로 늘어난다. 예금이나 채권에 돈을 넣어 2배가 되는 햇수를 따져봤다. 금리가 5%일 때는 14년이 걸린다. 참고 기다려 볼 만한 시간이다. 하지만 금리가 4%면 18년, 3%면 23년, 2%면 35년이다. 같은 1%포인트 차이지만 추가 소요 시일이 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 금리가 1%면 무려 70년이 걸린다. 기다리다 지쳐 저 세상으로 갈 시간이다.
 
그렇다면 소득 관점의 은퇴설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걸까. 은행 예금이나 보험 같은 저축상품으론 답이 안보인다. 역시 돈의 서식지는 주식이나 펀드 같은 투자자산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투자의 세계는 거친 가시밭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발품과 손품을 부지런히 팔아야 한다. 상품 수익률이 얼마다 하는 식으로 조언하는 금융회사는 멀리하는 게 좋다.
 
은퇴설계에 필수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현금흐름이다. 이것이 마르지 않도록 갈무리를 하는 게 관건이다. 현금흐름은 현금이 가계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이른다.우리 몸에는 늘 피가 있지만 동맥경화로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 죽는 것처럼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현금이 돌지 않으면 망하게 돼 있다. 과거에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금리가 높아 보유한 자산 자체가 돈이 됐지만 이제는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산이 중요하게 됐다.
 
현금흐름과 관련해 극적인 변화를 겪은 자산은 부동산이다. 단순한 거주 주택보다는 임대수입을 얻을 수 있는 오피스텔이나 상가·소형 아파트가 인기를 끌고 평수가 넓은 아파트는 다운사이징해 남는 돈으로 현금흐름이 나오는 자산에 묻어두는 추세다. 사는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타다 쓰는 주택연금 가입자도 늘고 있다. 금융 쪽에는 연금 상품이 있다.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세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들 재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노후생활의 질이 좌우된다. 건물을 지을 때 대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고층으로 올리듯이 되도록 연금 재원을 홀쭉하게 높이 쌓아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투자세계에 몸 던져야
아무리 해도 원하는 현금흐름을 만들기 어렵다면 투자의 세계로 몸을 던져야 한다. 물론 투자 수익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공짜 점심이 없듯이 말이다. 수익이 좋다고 덥석 물었다간 된통 당할 수 있다. 원금이 깨질 수 있다는 게 가장 아픈 대목이다. 원금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는 사람일수록 더 맛있는 점심으로 보상받는다. 그 위험이란 것은 시간 앞에선 나약한 존재다. 투자 자산은 위험 감수를 해야 하고 그게 싫으면 시간 속에 묻어둬야 하는 것이다. 투자할 곳은 널려 있다. 주식·펀드·부동산·금·석유·광물 같은 자산과 함께 한국·미국·중국·유럽 등 지역도 투자 대상이 된다. 이들은 한 방향으로 같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앞서기도, 뒤따라 가기도, 때로는 역주행하기도 한다. 주식 값이 떨어지면 채권이 오르고, 채권이 오르면 부동산이 뛴다. 선진국 시장이 기울면 신흥시장이 뜬다. 펀드 투자에서 자산별 또는 투자국가들을 일정 비율로 섞는 포트폴리오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면서 수익도 챙기는 금융 기법은 그래서 중요하다. 해외 시장은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해 준다.
 
서명수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
 
※ 필자는 중앙일보 재산리모델링센터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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