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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의 청년아카데미는 바르셀로나FC의 '라 마시아'처럼 될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7.10.05 06:00
여의도는 지금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아카데미가 한창이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여야 주요 정당들이 잇달아 청년 정치학교를 개설해 ‘젊은 피’ 수혈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월 ‘청년정치대학’을 열어 지난달 27일까지 5주간 교육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도 각각 ‘정치대학원’과 ‘청년정치학교’를 지난달 9월 열었다. 24만~90만원의 만만치 않은 수강료에 50명 가르치는 소수 정예 시스템이다. 국민의당도 각 지역당별로 ‘정치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지난달 12일 저녁 서울 여의도 바른정당 당사에서 열린 청년정치학교 제1강 수업에 참석해 특강을 하고 있다. [여합뉴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지난달 12일 저녁 서울 여의도 바른정당 당사에서 열린 청년정치학교 제1강 수업에 참석해 특강을 하고 있다. [여합뉴스]

강사진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민주당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해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등이 강사로 나섰고, 한국당도 홍준표 대표, JTBC ‘썰전’에 출연하는 박형준 교수 등이 참여했다.
바른정당도 김무성·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같은 당내 간판 정치인을 비롯해 강원택 서울대 교수, 신광식 연세대 교수, 오준 전 유엔대사, 윤평중 한신대 교수, 정재승 KAIST 교수 등이 참여한다.  
흥행에도 성공했다. 특히 바른정당은 330명이 지원해 6.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민주당이 밝힌 지원자 수 217명(정원 50명)보다 많은 데 대해 바른정당은 “젊은층의 관심이 높다”며 고무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올해 이처럼 정치아카데미가 봇물 터지듯 쏟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축사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달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정치아카데미 1기 입학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축사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달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정치아카데미 1기 입학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각 당이 정치아카데미를 마련한 주요 계기는 내년 6월 열리는 지방선거다. 각 지역에 후보를 내야하는 정당과 출마를 원하는 정치지망생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정치지망생들도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각종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데다 중앙 정치권에서 활동을 하지 못했던 이들은 이를 통해 유력 정치인과 네트워크도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치권의 노령화도 한몫을 하고 있다. 2000년 총선만 하더라도 ‘386’ 돌풍이 불며 수십여 명의 30대 정치인들이 국회 입성했지만 이후엔 젊은 신인들의 대대적인 입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 결과 20대 국회에서는 30대 국회의원이 단 2명(신보라 한국당 의원,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국회 평균 연령은 55.5세에 이른다. 주민등록상 평균 연령이 41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14.5세가 많다.  
자유한국당 정치대학원 개원식 [중앙포토]

자유한국당 정치대학원 개원식 [중앙포토]

국회가 다당제로 전환된 점도 중요한 요소다. 국회 관계자는 “사실상 양당제 구도로 진행된 17~19대 총선까지만 해도 정당들이 정치아카데미에 크게 애쓰지 않았다. 어차피 둘 중 한 곳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다당제로 전환되면서 인재 영입 경쟁이 보다 치열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정치아카데미에 상대적으로 더 기대를 걸고 있는 곳은 3·4당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다. 바른정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나 한국당은 가만히 있어도 명사들이 몰려들지만 우리당은 지역구를 채우기도 버거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청년정치학교 교장을 맡고 있는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은  “중량급 있는 인사를 영입하기보다는 차별화 된 프로그램으로 젊고 참신한 인재를 발굴 육성하는데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정당정치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긍정적 시각이 많다. 실제로 정당정치의 역사가 깊은 서구 선진국에서는 청소년 시기부터 정당과 연계된 활동이 시작되며, 정치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지난 9월 총선에서 승리해 4선 연임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중앙포토]

지난 9월 총선에서 승리해 4선 연임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중앙포토]

 
독일은 집권 기민당(CDU)에선 청년유니온(JU·Junge Union)이, 야당 사민당(SPD)에선 ‘사민당의 젊은 사회주의자’라는 뜻의 유소스(Jusos)를 운영하고 있다. 청년세대에 정당의 정강을 전파하고, 정치적 기회를 제공한다. 나치 폐해를 겪었던 터라, 정치교육을 중시하고 있기도 하다.
유명 정치적 지도자들도 많이 배출됐다. 빌리 브란트 총리는 17세에 사민당에 입당해 서베를린 시장과 외무 장관, 사민당 총재를 지낸 후 총리에 올랐다. 헬무트 콜 총리도 18세부터 기민당 당원으로 활동했고,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역시 18세에 사민당 당원으로 입당해 정치 훈련을 받았다. 또한 최근 4선 연임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7세에 자유독일청년단 회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정당에서 오랜 훈련을 거친 뒤 선택을 받은 만큼 리더십, 협력, 정치적 철학 등이 우수한 인재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근 유럽에서 공교육 개혁의 전도사로 평가받는 스웨덴의 교육부 장관 구스타프 프리돌린(33)은 중·고등학교 시절 녹색당의 청년조직인 영 그린스(Young Greens)의 대변인으로 활동한 뒤 19세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축사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달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정치아카데미 1기 입학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축사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달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정치아카데미 1기 입학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유망주를 키우는 일종의 ‘팜(Farm)’ 시스템인 셈이다.  
축구 강팀인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이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는 팜 시스템이 발달해 적은 예산에도 강팀을 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바르셀로나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인 ‘라 마시아’를 통해 리오넬 메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사비 에르난데스 같은 유망 자원들을 길러내 '황금시대'를 열기도 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두산베어스가 상대적으로 선수 영입에 큰돈을 들이지 않고 유망주를 육성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같은 정당들의 청년 수급 노력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그간 이런 프로그램들이 명칭만 다르게 여러 차례 시행됐지만 이를 통해 데뷔한 국회의원이나 청년 정치인은 없다. 기껏해야 선거 때 실무진으로 활용하는 정도였다“며 ”각 정당에서 선거 때마다 외부 명망가 그룹만 바라보지 말고 ‘보석’을 발굴하겠다는 진정성을 갖고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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