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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둘도 많다"던 그 시절…사진 속에 비친 생활상 32장면

중앙일보 2017.10.04 00:01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요즘엔 국가 차원에서 출산을 적극 장려하지만 1970~80년대엔  ‘둘도 많다’  ‘삼천리는 초만원’ 같은 포스터를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학생을 밀어 넣고는 차 문을 탕탕 치며 ‘오라이!’ 를 외치던 버스안내양도 기억납니다. 초등학생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지만 집에 전화기 한 대 있으면 큰 재산이고 동네 자랑거리였던 것도 불과 몇십년 전입니다. 
 

까막눈은 안된다 …50~60년대 문맹퇴치운동 활발
60~80년대 어린이날 즈음에 우량아 선발행사 곳곳서
1969년 낭비줄이자며 가정의례준칙 등장 …99년 폐지
교환원없는 장거리자동전화(DDD) 전국망 87년 구축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생활은 그만큼 많이 변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최근 『기록과 테마로 보는 대한민국(생활편)』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최초의 국산 라디오에서 '4H 운동'까지 32개 주제를 통해 광복 이후 우리의 주요 생활상을 사진과 함께 보여줍니다. 버스안내양 뿐 아니라 쥐잡기 운동, 타지 경진대회 등 지금은 잊혀진 흥미로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사진 제공: 국가기록원]
 
 
라디오 공장 작업모습(1962)

라디오 공장 작업모습(1962)

 
1. 응답하라 아날로그 시대여 - 라디오 공장의 작업 모습(1962)
1959년 치약을 만들던 락희화학(LG화학의 전신)은 최초의 국산 라디오 ‘금성A-501’을 선보였다. 라디오는 당시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 등을 통해 빠르게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국산 라디오가 생산되고 7년 후인 1966년에는 국내 최초의 흑백 TV가 등장하며 안방극장 시대를 열었다.  
 
제2주년 가정의례준칙선포기념식(1971)

제2주년 가정의례준칙선포기념식(1971)

 
2. 가정의례준칙 -  제2주년 가정의례준칙 선포기념식 (1971)
 1960년대 말 산업화가 진행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예전에 비해 화려한 가정의례가 늘어났다.  정부는 1969년 1월 낭비를 줄이자며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 이 법의 시행령에 ‘가정의례준칙’을 넣었다. 좋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자유를 억압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가정의례준칙은 1999년 폐지됐다.  
 
제1차 가족계획전국대회(1963)

제1차 가족계획전국대회(1963)

 
3. 가족계획 - 제1차 가족계획전국대회(1963)
 6ㆍ25 전쟁 이후 본격적인 베이비붐이 시작되면서 한 가정에 4~5명 자녀는 보통이었다. 인구는 빠르게 늘었다. 1961년 인구 증가 억제을 위한 가족계획사업이 펼쳐졌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같은 구호도 등장했다. 지금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률 속에 국가 차원서 출산을 장려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위안 잔치(1972)

할아버지 할머니 위안 잔치(1972)

 
4. 경로우대제도 - 할아버지ㆍ할머니 위안 잔치 (1972)

 1982년 경로우대제가 실시됐다. 65세 이상의 노인은 국가나 자치단체의 운송 시설. 기타 공공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른바 ‘지공거사(지하철 공짜로 타는 노인)’는 경로우대제의 산물이다. 고령 인구가 늘면서 무료 이용을 둘러싼 논란도 일고 있다.
 
김장배추 나르기(1957)

김장배추 나르기(1957)

 
5. 김장 - 김장배추 나르기(1957)
 입동 전후,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도시나 농촌이나 김장 담그기에 나섰다.  김장은 기나긴 겨울의 첫 준비였다. 여자들이 김장을 하면 남자들은 구덩이를 파고 김칫독을 묻었다. 지금은 마트에서 사온 김치를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는 집이 늘고 있다.     
 
전국농업기계전시회(1974)

전국농업기계전시회(1974)

 
6. 농업기계화 - 전국농업기계전시회 (1974)
 1960년대 이후 농기구 현대화가 본격화됐다. 도시화로 농촌 인구가 빠르게 줄면서 농업 기계화는 시급한 일이었다.  재산 목록 1호는 소 대신 경운기가 차지했다. 경운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논을 갈고 나면 이웃의 논을 갈아주면서 돈도 벌고 인심도 얻었다.  
 
한 자리에 모여 라디오 듣는 가족(1957)

한 자리에 모여 라디오 듣는 가족(1957)

 
7. 라디오 방송 - 한 자리에 모여 라디오 듣는 가족들(1957)
 최초의 라디오 방송은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에서 시작했다. 당시 라디오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경성방송국은 1945년 8ㆍ15 광복 이후 서울중앙방송국으로 바뀌면서 국영방송이 시작됐다. 1954년 12월 15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방송사인 기독교방송(CBS)가 첫 전파를 발사했다.  
 
라면공장작업 모습(1972)

라면공장작업 모습(1972)

 
8. 라면 - 라면 공장 작업 모습 (1972)
  국내에 처음 선보인 라면은 1963년 9월 출시된 삼양라면이다. 처음엔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밥과 국, 반찬을 먹어야 한 끼 식사를 했다는 인식이 컸다. 하지만 혼분식 장려책에 간편한 조리법,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이 인기를 끌면서 라면 판매를 빠르게 늘었다. 2016년 소비량은 약 36억개.  
 
문맹퇴치 교육 공로자 표창식(1953)

문맹퇴치 교육 공로자 표창식(1953)

 
9. 문맹퇴치 운동 - 문맹퇴치 교육 공로자 표창식(1953)
1920년대 당시 2000만 국민 중 80~90%가 문맹이었다. 광복이후 문맹퇴치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야학과 천막학교 등을 중심으로 문맹퇴치운동이 활발히 펼쳐졌다. 문교부에서는 1954년 ‘전국 문맹퇴치 5차년 계획’(1954~1958) 추진했다.  
 
추석송편빚는 가족(1957)

추석송편빚는 가족(1957)

 
10. 설과 추석 - 추석 송편 빚는 가정(1957)
일제 강점기 일본은 우리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세시 명절을 억압했다. 광복 후 정부가 ‘신정’을 유일한 설, 휴무일로 지정해  전통의 설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1989년 공휴일 규정이 고쳐지면서 설이 제대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설과 추석엔 민족의 대이동이 이뤄지지만 요즘엔 역귀성도 흔하다.  
 
제1회 계량의 날 기념식(1966)

제1회 계량의 날 기념식(1966)

 
11. 미터법 - 제1회 계량의 날 기념식( 1966)
 10월 26일은 계량의 날이다. 세종대왕이 계량법을 통일한 날이라고 한다. 근대 이전 길이는 척, 무게는 관을 주로썼다. 1961년에  법정 계량의 기본 단위를 미터법으로 하는 ‘계량법’이 제정됐다. 1964년 1월엔 미터단위를 사용토록 했다. 2007년 7월부터는 ㎡, ㎏, 리터(L) 등 미터법을 의무화했다.  
 
안내양이 있는 버스승차 모습 (1961)

안내양이 있는 버스승차 모습 (1961)

 
12. 버스안내양 - 안내양이 있는 버스 승차모습 (1961)
  버스안내양은 1920년대 후반 처음 등장했다. 선망의 직업이었다. 광복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버스 안내양 제도는 1961년 재도입됐다. 대부분 지방에서 도시로 돈 벌러온 누이들 이었다. 1975년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주인공 영자도 버스안내양을 했었다. 버스 안내방송ㆍ자동문 등이 도입되면서 안내양은 사라졌다.  
 
일광절약시간제 제정에 관한 문건(1949)

일광절약시간제 제정에 관한 문건(1949)

 
13.  서머타임제 - 일광절약시간제 제정에 관한 문건(1949)
 서머타임제는 18세기 후반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 고안했다. 우리나라는 1949년부터 서머타임제를 실시했다. 그러다 1961년 잦은 시간 변경이 혼란을 일으킨 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그러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 시행됐다가 2년만인 1989년 폐지됐다.  
 
제 39회 어린이날 기념식(1961)

제 39회 어린이날 기념식(1961)

 
14. 어린이 날 - 제 39회 어린이날 기념식 (1961)
 소파 방정환 선생은 1922년 3월 색동회를 조직하고 5월1일을 어린이 날로 정했다. 광복 후 1946년 5월 5일을 어린이 날로 했다. 1975년부터는 공휴일로 지정됐다.  1950~60년대 어린이 날에는 창경원 등에서 기념식도 열렸다. 1957년엔 ‘어린이 헌장’도 제정됐다.  
 
연탄공장작업모습(1963)

연탄공장작업모습(1963)

 
15. 연탄 - 연탄공장 작업 모습( 1963)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동네 골목에 연탄을 가득 실은 리어카가 집집마다 연탄을 나르는 모습이 익숙한 시절이 있었다. 창고에 가득 쌓아 놓은 연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연탄가스는 온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우량아 및 건강학생 표창식(1956)

우량아 및 건강학생 표창식(1956)

 
16. 우량아 선발대회 - 우량아 및 건강학생 표창식(1956)
  1950년대 후반 어린이 날을 즈음에 우량아를 선발하는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정부도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 정서와 건강을 생각해 우량아 선발 대회를 지원했다. 가장 널리 알려졌던 대회는 문화방송과 남양유업이 1971년부터 연 대회였다. 못 먹는 아이가 줄고, 아기를 상업화한다는 이유로 1984년 폐지됐다.  
 
제1회 집배원의 날 기념식(1968)

제1회 집배원의 날 기념식(1968)

 
17. 우체국과 집배원 - 제1회 집배원의 날 기념식(1968)
 누군가에에 보낼 편지들 들고 빨간 우체동 앞에 서면, 괜히 가슴이 두근 거린다. 사연과 마음이 담긴 편지를 들고 집배원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다. 국내 최초의 근대식 우편 업무 기관은 1884년 설치된 우정총국이다. e메일과 카카오톡을 주로 쓰는 요즘 손 편지는 잊혀진 추억이자 낭만이다.  
 
어린이날 기념운동회(1954)

어린이날 기념운동회(1954)

 
18. 운동회 -어린이날 기념 운동회(1954)
 학교운동회는 놀이가 많지 않던 시절 학생을 중심으로 가족과 마을 사람이 모여 벌인 축제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에는 운동장엔 만국기가 펄럭이고 학생들은 오랫동안 연습했던 체조, 꼭두각시놀이 등의 공연을 했다. 이어달리기를 할 때는 운동장을 찾은 모든 사람이 일어나 응원에 나섰다.  
 
88올림픽 자원봉사자 지원자들(1985)

88올림픽 자원봉사자 지원자들(1985)

 
19. 자원봉사 - 88올림픽 자원봉사자 지원자들(1985)
현대적 의미의 자원봉사 활동은 1903년 설립된 기독교청년회(YMCA) 등이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광복 후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문맹퇴치운동, 농촌 일손 돕기 활동 등을 펼쳣다. 2005년엔 ‘자원봉사활동진흥법’이 제정됐다. 태안기름유출사고 자원봉사는 ‘서해안의 기적’을 만들었다.  
 
전국자동전화완성기념식(1987)

전국자동전화완성기념식(1987)

 
20. 장거리자동전화 - 전국자동전화 완성 기념식(1987)  
  1896년 10월 궁중에 처음 설치된 전화기는 텔레폰(telephone)을 음역한 덕률풍(德律風) 또는 말 전하는 기계란 뜻의 전어기(傳語器)로 불렸다. 1971년 3월에는 서울에서 부산간에 교환원의 도움없이 직접 전화를 거는 장거리자동전화(DDD)가 가능해졌다. 이후 전국망이 완성됐으며 1994년 인터넷서비스가 시작됐다.  
 
남대문 시장 (1972)

남대문 시장 (1972)

 
21. 전통시장 - 남대문 시장 (1972)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봉평장은 강원도 평창군에  있던 5일장의 하나였다. 5일장은 단순을 사고 파는 장소가 아니라 고장의 소식을 듣고 전하는 정보교환의 장이기도 했다. 우리의 삶과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상설시장으로 전통시장도 있다.  시설현대화 등 대형 마트에 밀리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조상을 기리는 제례(1997)

조상을 기리는 제례(1997)

 
22. 제사ㆍ차례- 조상을 기리는 제례(1997)
 제사는 조상의 넋을 기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후손들이 마음를 다해 올리는 전통 문화다. 명절과 제삿날이 오면 육체적ㆍ정신적 부담으로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주부들이 많다. 1990년대 말 여성민우회는 명절과 제사 때의 성 차별 해소를 위한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종이절약포스터(1993)

종이절약포스터(1993)

 
23. 종이절약운동 - 종이절약 포스터(1993)
요즘은 자연보호 차원에서 종이절약을 말하지만 종이절약운동은 애초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1970년대 초반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석유파동 후 종이 절약운동과 폐휴지 수집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학교에서는 매달 폐품 수집으로 각종 폐지를 거둬들이고 이면지 활용이 적극 권장됐다.  
 
쥐잡기 운동 조형물(1972)

쥐잡기 운동 조형물(1972)

 
24. 쥐잡기 운동 - 쥐잡기 운동 조형물(1972)
 1960~70년대 쥐는 가뜩이나 부족한 양곡을 훔쳐 먹어 박멸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1970년 1월26일 ‘전국 쥐잡기 운동’이 실시됐다. 쥐 꼬리를 학교나 관공서로 가져오면 하나당 연필 한자루를 주기도 했다. 농림부는 쥐잡기 운동 20일만에 4100만 여 마리의 쥐를 잡았다고 밝혔다. 정부차원의 쥐잡기 운동은 1990년대 들어 사라졌다.  
 
지하철 개통식(1974)

지하철 개통식(1974)

 
25. 지하철 - 지하철 개통식(1974)
 1968년 서울시는 도로교통체증이 심각해지자 전차를 모두 없앴다. 그리고 빠르게, 많이 수송할 수단으로 지하철에 주목했다. 1974년 8월 15일 청량리에서 서울역을 있는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지금 서울은 9호선까지 운영된다. 울산을 제외한 모든 광역시에서 지하철이 달린다. 우리의 지하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인선협궤열차(1995)

수인선협궤열차(1995)

 
26. 철도 - 수인선 협궤열차(1995)
 1899년 9월 18일 인천(제물포)에서 노량진 사이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이땅에 철도의 시대가 열렸다. 이후 경부선ㆍ경의선ㆍ호남선 등이 개통되면 한반도 전역에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2004년 4월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서울서 부산을 반나절에 오가는 시대가 됐다.  
 
전국남녀타자경진대회(1969)

전국남녀타자경진대회(1969)

 
27. 타자기 - 전국 남녀 타자 경기 대회 (1969)
 타자기가 일반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56년 미국대외원조처가 문교부를 통해 전국 11개 상업고등학교에 타자기를 무상으로 보급하면서다. 타자능력을 검증하는 시험도 있었다.   제한시간 5분에 정타로 1250자를 치면 1급을 주었고 그 아래 5급까지 뒀다.  
 
스튜디오녹화장면(1971)

스튜디오녹화장면(1971)

 
28. 텔레비전 방송 - 스튜디오 녹화장면(1971)
  우리나라 TV방송은 1956년 시작됐다.  사람들은 TV를 ‘활동사진 붙은 라디오’라 부르기도 했다. TV수상기 보급은 빠르게 늘었고 1960~1970년대  KBS,TBC,MBC의 방송 3파전은 치열했다. 1981년 1월에는 컬러 TV 방송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지상파 TV 방송뿐 아니라 케이블과 IPTV, 다양한 위성방송이 시청자와 만난다.  
 
서울~홍콩간 국제노선 탑승 수속(1957)

서울~홍콩간 국제노선 탑승 수속(1957)

 
29.해외여행자유화 - 서울~홍콩간 국제노선 탑승 수속 (1957)
 광복이후 1980년대까지 순수한 해외여행을 위한 여권은 발급되지 않았다. 일반인이 해외에 나가려면 기업의 출장, 학생의 유학, 해외취업 등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했다. 1983년 1월부터 50세 이상 국민에 한해 200만원을 1년간 예치하는 조건으로 연 1회에 유효한 관광여권을 발급했다. 제한적 여행자유화였다. 1989년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됐다.  
 
가족법개정 여성대회(1989)

가족법개정 여성대회(1989)

 
30. 호주제 폐지 - 가족법개정 여성대회(1989)
 호주제란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출생ㆍ혼인ㆍ사망 등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것이다.  남성 우선적인 호주승계 등 차별적 요소로 여성계는 1950년대부터 줄기차게 폐지를 요구했다. 2000년 9월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가 발족했다. 호주제는 2005년 2월 폐지됐다.  
 
1970년대 사용되던 지폐 (1977)

1970년대 사용되던 지폐 (1977)

 
31. 화폐 - 1970년대 사용된 지폐(1977)
광복이후 세 번의 통화조처와 화폐 개혁이 있었다. 1차는 1950년 9월 북한통화 배제를 위해, 2차는 1953년 2월 금융ㆍ산업활동 안정화를위해,  3차는 부정축재자금과 음성자금을 양성화하기 위해서였다. 3차 화폐 개혁에서 화폐 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변경했다.  
제9회 4H구락부 중앙경진대회(1963)

제9회 4H구락부 중앙경진대회(1963)

 
32. 4H 운동 - 제9회 4H구락부 중앙경진대회(1963)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된 4H 운동은 1947년 경기도 군정관이던 찰스 앤더슨 중령과 구자옥 경기도 지사가 도입하면서 국내에 소개됐다. Head와 Heart는 지(知)와 덕(德)으로 해석됐다. Health는 건강 그리고 손을 나타내는 Hand는 실천을 의미했다.   
 
[자료: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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