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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25) “하마터면 거창과 영영 이별할 뻔 했네~"

중앙일보 2017.10.03 11:00
콧노래 부르다가 거창과 영영 이별할 뻔했다.
 
가끔 집에 다녀올 때 예상보다 좀 오래 머물 때가 있다. 처음 며칠은 아내가 차려주는 오랜만의 밥상이 고맙고, 이쪽저쪽에서 불러대는 친구들의 전화가 반갑다. 그러나 그 편안함과 고마움, 반가움은 채 사나흘이 가지 않는다.
 
 
아내의 집밥. [중앙포토]

아내의 집밥. [중앙포토]

 
읽지 못한 책의 뒷부분이 궁금했고, 텃밭의 어린 채소들과 냉동고에 얼려둔 각종 식재료의 안위가 걱정됐다. 이제 막 손에 익기 시작한 요리 레시피가 다시 어색해지고, 음식의 맛이 길을 잃을까 봐 안달이 났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혼자만의 삶이 흐트러질까 봐, 적응 단계에 들어선 어둠과 고요의 세상이 다시 두려움으로 바뀔까 봐,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질까봐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중앙포토]

친구들과의 술자리. [중앙포토]

 
나는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혼자 밥 먹는 세상, 어둠과 고요의 세상으로. 자신과 진솔하게 대면하거나 대결하는 세상으로. 드디어 거창으로 내려오는 날 아침, 아내와 함께 커피를 내려 마시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아차 싶었지만 늦었다. 콧노래는 이미 내 코를 빠져나와 집사람의 귓바퀴 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난 다음이었다.
 
그 콧노래를 듣고 가만있을 아내가 아니다. “나 없이 혼자 사는 게 그렇게 좋아? 콧노래가 나올 만큼 좋은 거야? 아주 신이 났구먼! 나 몰래 여자라도 하나 숨겨둔 거야?”
 
 
싸늘하고 시니컬한 아내 
 
 
[사진 freepik]

[사진 freepik]

 
싸늘하고 시니컬하다. 남편의 시골생활을 마지못해 이해해주고는 있지만, 한동안의 이별을 코앞에 둔 순간에 남편의 코에서 나온 노래를 이해해 줄 아내가 어디 있겠나. 내가 미쳤지, 콧노래라니. 눈물·콧물을 흘려도 시원찮을 타이밍에. ㅠㅠ
 
“미안해. 지금은 혼자 지내는 산속이 콧노래가 나올 만큼 좋아. 그런데 산속 생활이 다시 익숙해져 일주일이 하루같이 흘러가면 바로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올게. 약속~~~!”
 
 
답답하고 갑갑한 서울 나들이에서 돌아온 날 거창의 하늘은 미세먼지 흔적조차 없었다. 서둘러 우두산에 올라 평소에는 보기 힘든 지리산의 천왕봉을 보았다. [사진 조민호]

답답하고 갑갑한 서울 나들이에서 돌아온 날 거창의 하늘은 미세먼지 흔적조차 없었다. 서둘러 우두산에 올라 평소에는 보기 힘든 지리산의 천왕봉을 보았다. [사진 조민호]

 
미세먼지가 되도록 맞을 뻔한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고 도착한 거창엔 미세먼지가 흔적조차 없는 하늘이 반겨준다. 다시 가슴이 트인다. 마음껏 콧노래를 불렀다~ “먼지가 되어 날아 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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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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