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셋 코리아] 여객운송 허가권 등 정부 업무, 지자체에 한꺼번에 넘기자

중앙일보 2017.10.02 01:00 종합 15면 지면보기
지자체 자율권 강화하려면
1일 인천~백령도를 오가는 선박에서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지자체들은 중앙정부가 가진 여객운송사업 면허권의 지방 이양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일 인천~백령도를 오가는 선박에서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지자체들은 중앙정부가 가진 여객운송사업 면허권의 지방 이양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부산시청에서는 지방분권 개헌 부산시민회의 출범식이 있었다. 부산시·부산시의회·부산시구청장군수협의회와 142개 지역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박현욱 부산시민회의 공동대표는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라고 명시한 조항을 헌법에 넣어야 한다. 지방분권 개헌이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무산되지 않도록 모두 함께 뛰자”고 말했다.

리셋 코리아 지방자치분과 제안
국가 업무 관련된 법률만 1000개
지방에 넘기려면 일일이 고쳐야
법안심사권 가진 국회 특위 구성
권한 일괄이양하는 법 논의를
지방세 늘려 재정자립도도 높여야

 
앞서 인천에서는 시민단체와 대학교수, 법조·경제·언론 등 각계각층 27명으로 구성된 지방분권 협의회가 발족했다. 부산·인천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시민회의·분권협의회 등의 이름으로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방선거가 있는 내년 6월의 개헌 일정에 맞춰 지역의 의견을 중앙 정치권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8월 28일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지방으로 중앙의 사무와 기능을 대폭 넘기고 그에 상응하는 재정과 인력도 이양하겠다”고 했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지방자치분과 위원들은 생활밀착형 중앙 사무를 지방으로 이양하기 위해서는 일괄이양법 제정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한 국회 특별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지방의 자주적 재원 확충 방안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이 더 잘할 수 있는 사무를 지방에 이양해 지방이 주인 의식을 바탕으로 질 높은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2월 6일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주민들은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앞에서 여객선 운항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인천~소청도를 오가던 선박 두 대가 동시에 수리에 들어가면서 H사의 대체 선박이 투입됐는데 이 배는 화물적재가 어려워 생필품 등을 실어 나를 수 없었다. 소청도 주민들이 인천시와 옹진군에 항의했다. 하지만 두 지자체에서 “담당 업무가 아니다”고 하자 허가 관청인 해양수산청으로 간 것이다. 옹진군 관계자는 “주민들의 불편을 뻔히 알지만 여객운송사업 면허 권한 등은 해수부에서 가지고 있어서 난감했다”며 “이런 주민 생활과 밀접한 권한은 지자체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달 28일 열린 ‘중앙권한의 지방 이양 토론회’에서 전남 여수시도 내항여객운송사업 면허를 지방해양수산청장에서 시·군·구로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지방자치분과 위원들은 ‘지방 일괄이양법’을 제정해 생활 밀착형 국가 사무는 한 번에 지방으로 넘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국가 사무 4만5000개와 관련된 법률만 1000여 개에 달한다. 현재로는 중앙정부의 사무를 시·도지사 사무(지방 사무)로 넘기려면 이 1000여 개의 법을 일일이 바꿔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개별법 하나하나 국회 동의를 얻는 게 대단히 어렵다.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권경석(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정책자문위원장) 분과장은 “국회가 적극 나서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지방분권을 이룰 수 없다”며 “일괄이양법 마련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선 국회에 법안 심사권을 가진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에 중앙 사무, 자치 사무 명시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구체적 역할과 기능을 보다 분명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윤창 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이른바 상호 중첩형 사무 체계로 중앙과 지방정부 간 사무가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역할과 기능 및 비용 부담 문제에서 갈등의 소지가 내포돼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법 시행령 별표 1은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별 사무’를 소개하고 있다. 이 중 3번 ‘농림·상공업 등 산업 진흥에 관한 사무’에서는 농업용수 설치·관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농업용수를 지자체의 사무로 지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광역자치단체는 농업용수 개발사업 계획을 수립·조정한다. 기초자치단체는 농업용수 개발 계획을 짠다. 문제는 중앙정부에서도 농업용수 공급 종합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한 업무를 정부와 광역·기초단체가 중복으로 추진하는 셈이다.
 
헌법에 ‘자치 사무’를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권영주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는 “1991년 지방자치 출범 이후 중앙과 지방 간 사무 구분 분쟁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분석해 보니 총 16건 중 15건이 국가 사무로 판결이 났다”며 “법 규정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처리하도록 되어 있는 사무’라고 해도 실제론 대부분 ‘기관 위임 사무’로 여기기 때문에 헌법에 자치 사무를 명확히 규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자치 사무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기관 위임 사무는 중앙정부가 책임과 권한을 가지면서 집행을 지자체에 위임하는 사무로 도로·하천의 유지 관리, 호적에 관한 업무 등이 있다.
 
일각에서는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 이양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있는 만큼 중앙 사무의 지방 이양이 지역민의 생활과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적극 알리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예를 들어 국유림에 관광호텔을 세우는 경우 부지가 국가 소유지이기 때문에 산지전용허가 업무는 중앙정부가, 건축허가·관광숙박업 허가는 시·군이, 관광지 사업승인은 광역단체가 하기 때문에 허가를 받으려면 한 달 이상 걸린다. 이를 시·도나 시·군으로 이전하면 20일 정도로 단축되고 민원인의 시간·비용 절감은 물론 불편도 크게 해소할 수 있다는 걸 널리 알려 사무 이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 감독권 행사, 지방 유착은 막아야
 
정준현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기업 유치 등과 관련한 권한을 자치단체가 갖게 되면 자치 재원 확보는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더라도 이른바 토착 세력과의 유착 등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행정 사무의 합법적 집행 여부에 대한 감독권은 국가가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들은 권한 이양과 함께 지방 재정 확충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 감소 등으로 지방의 자체 재원 증가율이 둔화하면서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전국 243개 자치단체(광역+기초) 중 90.5%인 220개 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가 50%에도 못 미친다. 자체 수입으로 인건비를 해결할 수 없는 지자체도 75곳이나 된다. 부족한 돈은 중앙의 지원을 받아 해결하는 구조여서 지방의 중앙 종속이 심화하는 만큼 지방의 자주 재원(지방세·세외수입)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앙 사무를 지방으로 넘길 때 이에 필요한 재원을 동시에 이양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들의 재원이 한정돼 있다 보니 국가보조금 등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러다 보면 지자체의 자율적인 역량이 떨어져 지방분권과 반대로 가게 된다”며 “지자체의 자주 재원 확대를 위해서는 조례를 통해 세목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행 8대 2에서 장기적으로 6대 4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6대 4까지 도달하는 구체적인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8대 2에서 7대 3을 거쳐 가능한 한 현 정부 임기 내에 6대 4 수준까지 가도록 하겠다”(심보균 행안부 차관)는 정도다.
 
이와 관련,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국세의 과감한 지방세로의 이양과 지방교부세의 전면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며 “물론 지자체도 세입 범위 안에서 지출하는 지방 재정 원리에 충실하면서 구조조정, 행정서비스 민영화 등 개혁에 주력하고 지방의회의 견제와 감시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 빈부 격차 최소화하는 방안 마련을
 
임승빈(지방자치학회장)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도 “행정·정치적 권한 분권만큼 재정적 분권이 중요하다. 국세의 지방세 이전이 먼저 실행돼야 한다”며 “현재 주(酒)세의 상당수가 국고보조금의 형식으로 광역지역 특별회계로 들어가는 만큼 주세와 토지 양도세를 지방세로 돌리면 국가보조금 문제를 정리하고 심각한 지방의 재정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획일적인 지방세 비율 증가는 지역 간 격차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서울 강남구 등 부자 동네는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지만 가난한 지역은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근 영남대 지역·복지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재정 분권은 지역 경쟁력 강화와 균형 발전이 목적인데 재정분권은 양면성이 있다”며 “잘사는 수도권의 경우 자체 재원을 늘리도록 하고 못사는 지역은 교부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지역적 특성에 맞게 적정하게 재정을 배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들의 자율권 강화를 위해 현행 국고보조금 제도를 ‘포괄보조금 제도’로 개편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했다. 분과위원들은 “국세 대 지방세의 비율을 8대 2에서 6대 4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지자체 간 빈익빈 부익부 등 부작용도 예상되는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동시에 마련해 신중히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염태정·최모란 기자, 권예솔 인턴기자 yonnie@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