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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긴다', 신임 주중대사의 전략인가?

중앙일보 2017.09.30 08:49
몸이 허약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분이 메르스에 걸려 사망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허약해 죽은 것인가, 아니면 메르스 때문에 죽은 것인가?
 
당연히 사망 원인은 메르스다.

 
롯데마트는 중국에서 적자로 고전했다. 그런데 사드 보복으로 하루아침에 영업장을 폐쇄당했다. 급기야 사업을 접었다. 그렇다면 롯데의 실패는 적자 때문인가, 아니면 사드 보복 때문인가?

 
당연히 사드 보복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피해를 당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롯데마트는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피해를 당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적자로 어렵긴 했지만, 롯데마트는 사드 보복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터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적자라는 것일 뿐, 개별적으로 보면 '손익분기점 또는 흑자' 내는 매장이 훨씬 많았다.
 
롯데 쓰러진 걸 '롯데 때문이야'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현실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런데 그 말이 다름 아닌 신임 주중 대사의 입에서 나왔다. 노영민 신임 대사는 외교부 출입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롯데·이마트 중국 철수는 사드 탓 아니다"라고 말했단다(주요 언론 30일 자 보도).
 
귀를 의심케 한다. 명동에 있는 중국대사가 할 말을 베이징으로 갈 한국대사가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드보복에 막혀 눈물로 일군 사업을 접고, 생업에서 쫓겨나는 현장의 기업인들을 욕보이는 발언이다.
노영민 신임 주중대사

노영민 신임 주중대사

노 대사는 좌담회에서 '사드에 대한 중국의 반발을 이해한다'고 했단다. '중국의 사드 우려는 당연하다고'라고도 했다.
 
그걸 이해 못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중국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중국이 왜 저러는지 다 안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그런 그들을 상대로 우리 입장을 설득하고, 관철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내부에서는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고, 배치가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주장도 상당 부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바로 얼마전까지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외교는 현실이다. 문 대통령도 그 현실 앞에 사드 배치는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던가?
 
곧 외교 현장에 뛰어들 사람이 '나 너희 입장 다 이해해'라고 속내를 다 드러내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결기를 보이면 달려들어도 모자랄판에 말이다.
 
내게는 "알아서 길 테니 잘 봐줘"라는 집 고양이 전략으로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아예 "사드는 우리 정부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하지 그랬나? 그러면 중국이 한 번 더 쓰다듬어주지 않았겠는가...
 
물론 그게 한 전략일 수도 있다. 막힌 외교 정국의 돌파구를 뚫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알아서 기는' 비굴함의 댓가일 뿐이다. 그동안 사드 보복을 당하면서도 우리가 만들어내려고 했던 새로운 한-중관계 설정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처사다.
 
지금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굴복해서 시장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부당한 보복을 중단케하고, 우리의 실력으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중국의 부당한 사드보복을 중단케하고, 우리의 경쟁력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 우리나라 대 중국 정책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부당한 사드보복을 중단케하고, 우리의 경쟁력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 우리나라 대 중국 정책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 대사의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는 “중국 역사 5000년간 한족(漢族)이 지배한 통일왕조는 막강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해 주변국을 영토적으로 복속한 적이 없다”고 말했단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토록 중국의 동북공정에 분개했던가?
 
노 대사는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미·소 냉전 때도 소련 편을 안 들고 비동맹으로 빠지고 러시아(구소련)가 체코를 침략했을 때 패권적이라고 공격했다”고 말했단다. 그는 정녕 1950년대 말 시작된 중-소 갈등이 미-소 냉전체제의 형질을 변화시켰다는 걸 모른다는 말인가?
 
캠프에서 일한 정치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주중대사로 내정됐고, 곧 부임한다. 내정된 건 꽤 오래 전 일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중국 공부 많이 했겠지만, 아직 옅어 보인다. 앞으로도 수 많은 날, 밤샘 공부를 더 해야한다. 그리하여 얻그제 발언이 생각의 아주 적은 부분으로 묻히길 바랄 뿐이다.
 
최소한 중국에 나가있는 우리 기업인들의 속을 뒤짚어 놓는 그런 발언은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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