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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글쓰기 선생, ‘상처 입은 치유자’를 꿈꾸다

중앙일보 2017.09.30 02:43 종합 28면 지면보기
정여울 작가

정여울 작가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내 모습은 작가라기보다 상담 선생님에 가깝다. 작가이기 때문에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게 되었지만, 혼자 글을 쓰는 외로운 창작자가 아닌 학생들의 모든 고민을 들어주는 다정한 상담사가 되어야만 그들의 마음 깊숙이 잠자고 있는 창조성의 황금알을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멀리하고 오직 종이와 펜으로만 글을 써보자’는 내 제안을 낯설어했다. “맞춤법이 헷갈려서요,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잠깐 검색하면 안 될까요?”라고 질문하며 어떻게든 휴대전화를 놓지 않으려는 학생도 있었다. 종이와 펜만으로 글을 쓰는 방식에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컴퓨터 자판을 그리워하는 아이도 많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면 매시간 종이 위에 또박또박 글을 쓰는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진지해지고, 매시간 철저한 일대일 멘토링을 해 주면서 감정과 체력의 한계를 느끼던 나 또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져 더 이상 힘든 줄도 모르게 된다. 글쓰기는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 모두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속속들이 바꾸어 내는 마음의 연금술이 아닐까.
 

트라우마의 흉터마다 그 흉터보다 더 아름다운 꽃 피워 내는
끝내 타인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그런 치유자가 되고 싶다

나의 글쓰기 수업에서 가장 자주 주문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정직해지기’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 이미지를 끊임없이 신경 쓰는 마음의 습관을 멈추자고. 글을 쓰는 이 순간만은 세상에 ‘종이와 펜, 그리고 나’만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 마음을 고백할 곳이 지금 이 순간 이 종이 위밖에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더없이 솔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최고의 계기는 ‘내 상처를 표현하는 글쓰기’다. 나는 ‘여러분의 상처야말로 최고의 글쓰기 재료’라고 가르치지만, 아이들은 나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상처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상처로 글을 쓰라니. 얼마 전에 ‘나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자고 했더니 몇몇 아이가 반기를 들었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공개하기 싫다는 아이들의 심정을 나 또한 잘 안다. ‘첫 번째 아킬레스건’이 아니어도 좋으니 내 단점이나 결점 중에서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내 상처로 글을 쓴 내 글쓰기를 직접 보여주면서 아이들을 설득했다. 상처를 끄집어낼 때마다 부끄럽고 아프지만, 나는 상처를 글로 표현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해 왔다고.
 
상처가 남김없이 치유되어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만이 타인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 아직 아프고 힘들지라도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을 함께 공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불어 치유된다. 얼마 전에는 학생들에게 내 고민을 말했다. ‘다정하고 친절한 교사’가 되어야 할지 ‘혹독하고 냉철한 교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될 때가 많다고. 사실 따뜻하고 듣기 좋은 말, 칭찬하고 다독이는 말을 하기가 훨씬 쉽다고. 하지만 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새끼를 벼랑으로 모는 어미새처럼 그렇게 여러분을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야 할 때가 있다고. 벼랑 위에서 떨어지는 순간은 무섭지만, 여러분에게는 분명 날개가 있으므로 그 날개를 펼치기만 하면 된다고. 가끔은 내가 제 새끼를 벼랑으로 밀어 버리는 어미새처럼 여러분에게 가슴 아픈 말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네 안의 날개’를 반드시 펼치게 하려는 내 의지이지 결코 여러분을 아프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그 순간 학생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자신의 상처와 가까워지며, 비로소 상처를 극복하고 마침내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를 마음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나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다. 상처 입어 피눈물 흘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해자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흉터마다 마침내 그 흉터보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는, 끝내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 또한 어루만지는 치유자가 되고 싶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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