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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수요 이상 공급 늘리지 않아야 브랜드 가치 지킨다 … 명품 고집

중앙일보 2017.09.30 01:00 종합 20면 지면보기
‘세계 100대 골프장’ 남해 사우스케이프 지은 정재봉 회장 
 
정재봉 사우스케이프 회장이 경남 남해에 지은 자신의 골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선글라스를 쓴 그의 사진은 부인이자 회사 감사인 문미숙씨가 찍었다. [사진 사우스케이프]

정재봉 사우스케이프 회장이 경남 남해에 지은 자신의 골프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선글라스를 쓴 그의 사진은 부인이자 회사 감사인 문미숙씨가 찍었다. [사진 사우스케이프]

경남 통영에 사량도라는 섬이 있다. 박완서의 소설 『그리움을 위하여』에 등장한다. 소설에는 이 섬이 “청정해역일 뿐 아니라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적이 없다”고 묘사된다. 그 사량도를 바라보는 남해군 창선면 모상개 해수욕장 인근에 럭셔리 리조트를 표방하는 사우스케이프 스파 앤드 스위트가 있다.

캘리포니아 페블비치 뺨치는 곳
남해 왔다가 풍광 한눈에 반해
잘나가던 패션회사 한섬 매각

평소 선글라스 쓰는 까닭
낯가리는 성격, 눈도 잘 못 맞춰
사업 수완 없으니 본질에 충실

배용준도 돈 다 내고 허니문
공급, 수요보다 크면 가치 하락
공짜 숙박 없어 … 서로 존중해야

 
소설에 소개된 것처럼 날씨는 온화하고 경치가 빼어나다. 리조트 건축물과 절벽 위 골프장의 풍광도 경탄을 자아낸다. 특히 바닷가 절벽을 따라 도는 후반 9홀이 아름답다. 바다를 건너 날카롭게 돌출한 곶에 있는 그린을 향해 샷을 하는 16번 홀은 세계 최고로 꼽을 만하다. 럭셔리 골프장을 소개하는 『골프 플래닛』은 이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를 월드베스트로 꼽았다.
 
그래서 ‘핫플레이스’ 다. 리조트는 현빈과 유해진이 주연한 ‘공조’ 등 영화에도 종종 나온다. ‘욘사마’ 배용준의 신혼여행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명품 전자제품과 골프 관련 광고도 이곳에서 많이 찍었다.
 
골프장은 2014년에 개장했다. 영국의 ‘톱 100 골프 코스’는 사우스케이프를 세계 100대 골프장에 뽑았다. 골프계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페블비치 같은, 지역 전체를 관광명소로 끌어올릴 만한 기념비 같은 장소가 될 것이라고 본다.
 
사우스케이프 골프장 코스. [사진 사우스케이프]

사우스케이프 골프장 코스. [사진 사우스케이프]

이 골프장을 만든 사람은 정재봉(76) 회장이다. 시스템·마인·타임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패션회사 한섬을 경영하다 2012년 현대백화점에 회사를 4200억원에 매각했다. 그 돈을 이 리조트에 쏟아부었다. 정 회장은 “이태백이 서호에 비친 달을 보고 호수에 뛰어들었듯 우연히 남해에 왔다가 풍광에 반해 앞뒤 가리지 않고 땅을 샀다. 패션계에서 일궜던 감각을 쏟아부어 한국의 이정표가 될 만한 곳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해외에도 정 회장과 비슷한 예가 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헤지 펀드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던 타이거 펀드의 줄리언 로버트슨(85·미국) 회장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풍광을 찾아다니다가 뉴질랜드에서 카우리 클리프, 케이프 키드내퍼스 등 골프 리조트를 개발했다. 수익사업이 아니라 대자연에 예술품을 남기겠다는 생각이었고 결과적으로 오지를 고급 관광지로 만들었다. 정 회장은 사우스케이프가 로버트슨의 리조트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취향에 따라 골프장 선호도가 다를 수 있다. 리조트도 우리보다 뛰어난 곳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호텔 등 리조트 시설 전체로 보면 우리가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발리의 불가리 빌라형 호텔 등을 견학해 최고 수준의 리조트를 빚었다.
 
정 회장은 평소 선글라스를 쓴다. 인터뷰하면서도 기자와 눈을 잘 맞추지 못했다. 그는 “소심한 편이다. 특히 낯선 사람 만나는 게 거북하다”고 말했다. 아쉬운 소리도 잘 못한다. 사업을 하면서 로비는커녕 공무원을 만나본 적도 거의 없다고 했다. 그가 대담하게 공무원을 찾아간 일이 있다. 김대중 정부 옷로비 사건이 터졌을 때다. 국세청은 고급 패션 회사들을 특별 세무조사했다. 사건과 관계는 없지만 고급 브랜드를 운영하는 한섬이 대상이 됐다.
 
정 회장은 “성격상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세금을 냈다. 사업이 잘될 때라 많은 돈을 냈다. 그런 우리에게 특별조사국 세무조사를 하니 화가 났다. ‘사업 열심히 해 세금 많이 내는 파트너인 우리를 왜 피곤하게 하느냐,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서울청장을 항의 방문한 적 있다”고 말했다. 그 이후 그는 다시 소심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가 성공한 이유는 오히려 그 소심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사업 수완이 없어 영업도 잘 못하고 부탁할 성격도 못되니 물건을 잘 만들어야 했다. 본질에 집중해야 했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런 풀(pull) 마케팅에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중요하다. 정 회장은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공급이 수요보다 크면 브랜드 가치는 떨어지게 되어 있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다고 해도 수요 이상으로 공급을 늘리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쉽지는 않았다. 정 회장은 “대형 백화점들이 경쟁적으로 매장을 확대하면서 신규 매장에 고급 이미지를 심기 위해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브랜드 입점을 강권했다. 버텼지만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심적 갈등이 많았다. 매장을 확대하다 보면 브랜드 정체성이 희석되는데 손익을 떠나 내 소신에 맞지 않는 타협을 계속하는 게 싫었다. 백화점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업체에서는 행복한 고민이라고 했지만 나는 서서히 망가지는 길이라고 여겼다. 한섬을 판 이유 중 하나다”고 했다.
 
사우스케이프 스파&스위트. 패션업체에서 일궜던 감각을 리조트에 쏟아부었다. [사진 사우스케이프]

사우스케이프 스파&스위트. 패션업체에서 일궜던 감각을 리조트에 쏟아부었다. [사진 사우스케이프]

사우스케이프에서도 그렇다. 그는 판매자와 소비자는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우스케이프는 연예인에게 홍보용으로 공짜 숙박을 제공하지 않는다. 공짜를 요구하는 요청이 오면 “배용준도 돈을 다 냈다”고 얘기한다.
 
그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젊은 시절엔 열등감도 있었다. 성격을 바꾸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를 만회하려고 열심히 일을 했다. 운도 좋았다. 과거엔 크고 세고 강한 것이 좋은 것이었는데 이제는 섬세하고 깊이 있는 것이 인정받는 시기다. 내 성격이 장점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단점은 아니다”며 웃었다.
 
정 회장의 사우스케이프 경영은 절반쯤은 은퇴의 개념이다. “빠르게 변하는 패션 트렌드를 따라 정신없이 살았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사흘쯤 쉬고 사나흘 일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소심한 성격이라 항상 걱정이 많았는데 마음도 편하다. 수십 년간 55㎏을 유지하던 몸무게가 8㎏ 늘었다. 정 회장은 “몸무게가 늘면서 드라이버 거리도 50m쯤 늘었다. 리조트에 4000억원을 들였으니 거리 10m 늘이는 데 800억원을 쓴 꼴”이라고 농담을 했다.
 
큰돈을 들인 리조트인데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최고 자재를 쓴 건축물과 인테리어 집기 등은 감가상각이 워낙 크다. 그는 “리조트는 평소 성격과 달리 모험을 한 것이다. 나이도 들었으니 한 번쯤 멋대로 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설사 손해가 나더라도 20년은 견딜 수 있고 어차피 최고의 골프 코스와 리조트는 남게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완서의 소설 속 주인공은 노년이 되어 새로운 사랑을 만나 사량도에 정착한다. 정 회장도 사량도가 보이는 절벽 위에서 안식을 찾고 있다. 그는 “원칙을 지키고 본질에 충실하게 지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S BOX] ‘월스트리트의 마법사’ 줄리언 로버트슨, 그는 왜 뉴질랜드에 골프 리조트 지었나
케이프 키드내퍼스 리조트.

케이프 키드내퍼스 리조트.

줄리언 로버트슨(85)은 미국의 잘나가는 주식 중개인이었다. 1978년 과로에 지쳐 회사를 그만두고 뉴질랜드에 가서 소설을 썼다. 글을 완성했지만 출판하지는 않았다. 그는 “소설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남에게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소설가보다는 펀드매니저로 훨씬 더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돌아와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타이거 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를 만들었다. 16년 만에 900배의 수익을 올렸다. 월스트리트의 마법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1998년 그의 펀드 규모는 220억 달러에 이르기도 했다.
 
그는 95년 다시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뉴질랜드의 대자연 속에서 소설을 쓰던 때의 기억을 잊지 못했다. 땅의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바닷가의 6500에이커의 양 목장을 즉흥적으로 샀다. 이곳에 카우리 클리프라는 눈부신 골프 리조트를 만들었다. 2001년 로버트슨은 또다시 뉴질랜드의 절경을 발견하고 케이프 키드내퍼스 리조트(사진)를 만들었다. 로버트슨은 은퇴해 사회공헌, 환경운동 등을 하고 있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과 함께 재산 절반 기부 운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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