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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혁신성장, 김동연 부총리에 맡기고 힘 실어줘라

중앙일보 2017.09.29 01:44 종합 28면 지면보기
김광기 제작2담당·경제연구소장

김광기 제작2담당·경제연구소장

문재인 정권을 창출한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생) 운동권이다. 촛불시위를 이끌고 대선 전략을 짜내며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86운동권은 노동현장과 시민단체·정치권 등에 고루 포진해 동지적 의식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날로 심해지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걱정하며 한국 사회의 근본 개혁을 고민해 왔다. 그들은 도덕성과 헌신성에서 보수세력을 앞서며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 왔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국민의 정부’나 ‘참여 정부’와 달리 스스로 네이밍을 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이름 붙이자면 ‘운동권 정부’가 맞지 않을까 싶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운동권 인사가 다수 발탁돼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주도적으로 국정을 이끌지는 못했다. 당시 30~40대 초반의 낮은 연령과 짧은 경륜이 한계로 작용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정통 관료를 중용해 정치권·운동권과 조화를 이뤄 가며 국가를 경영하도록 했다. 강봉균-진념-이헌재-변양균-김석동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 뒤로 10년이 흘렀다. 86운동권은 이제 40대 후반~50대의 중장년이 됐다. 그들이 창출한 정권이기에 변혁을 향한 의지와 자신감이 강하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정권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 있다.
 
86운동권을 두루 만나 보면 관료 진영에 대한 불신이 크다. 노무현 정부 후반에 개혁 동력이 급속히 떨어졌던 게 관료 때문이라고 본다.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재벌 및 수출 의존적 정책을 고집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경제관료들의 주장대로 성장에 매진했지만, 성과물은 소수의 가진 자가 독식했다고 비판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관료가 푸대접받는 배경이다. 하마평이 오르던 인물 중 제 목소리를 낼 법한 사람은 대부분 낙마했다. 적잖은 관료가 “일자리 확충을 위해선 기업의 혁신을 촉진하는 성장전략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운동권 그룹은 “또 그 소리인가”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들은 관료 진영에 대해 “소득주도 성장이 잘되도록 예산을 집행하고 세금을 더 걷는 데 역량을 집중하라”고 주문한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넉 달 만에 “기업의 혁신성장도 중요하다”면서 관료 쪽 손을 들어준 건 흥미로운 변화다. 소득주도 성장만으론 일자리 창출을 지속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게다. 새 정부 들어서도 청년실업률이 계속 오른 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법하다.
 
문 대통령은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혁신성장의 액션플랜을 서둘러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김 부총리는 그동안 “소득성장도 중요하지만 혁신성장과 함께 가지 않으면 일자리를 계속 만들기 힘들다. 고용안정과 노동유연성을 같이 확보하는 대타협이 절실하다”고 소신을 피력해 왔다. 이제 기회가 온 것이다.
 
운동권 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었던 정책 운동장은 과연 평평하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벌써부터 운동권이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설 리 없다는 예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선택이 관건이다. 큰맘 먹고 관료 그룹에 힘을 실어줄지 지켜볼 일이다.
 
관료는 흔히 ‘영혼이 없는 존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국가 지도자의 주문과 시대정신을 따라 일을 되게 만드는 정책 기술자가 관료다. 과거 보수정권에서 일했다고 무조건 적폐세력이라고 몰아선 곤란하다. 운동권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와 분배 쪽에 안목이 있지만, 성장정책까지 직접 끌고 가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양쪽이 손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양쪽 그룹을 자주 불러 난상 토론을 벌였으면 좋겠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하던 방식이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모두 같지 않겠는가. 이 토론이 자리를 잡으면 기업인과 노조도 끼워 주자. 그러다 보면 한국형 노사정 대타협에까지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김광기 제작2담당·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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