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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출산 육아휴직 때문에 안돼”…합격권 여성 7명 골라 탈락시킨 공기업 사장

중앙일보 2017.09.27 20:09
박기동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중앙포토]

박기동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중앙포토]

 
박기동(60)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이 면접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를 의도적으로 탈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합격권에 있던 여성 7명의 면접 점수를 조작해 이들을 불합격시킨 것이다.

검찰, 박기동 전 가스공사 사장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
두 차례 공채 과정서 합격권 여성 면접 점수 낮춰 7명 탈락 시켜
여성 지원자 ‘Ⅹ’, 남성 지원자는 ‘○’ 순위 조작 지시
부당하게 채용서 탈락한 여성 지원자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도

 
청주지검 충주지청은 직원 채용 과정에서 면접 순위를 조작해 여성지원자를 집중 탈락시키고 업무 편의 제공과 승진 등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박 전 사장을 업무방해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고 2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사장은 2015년 1월과 2016년 5월에 있었던 사원 공개채용 과정에서 여성합격자를 줄이기 위해 인사담담자 A씨 등 5명에게 면접점수와 순위를 변경하도록 지시했다. 박 전 사장의 지시를 받은 인사담당자들은 면접 위원을 찾아가 기존에 작성한 면접평가표를 재작성하도록 요구, 이를 인사위원회에 올려 직원을 뽑았다. 
 
이런 수법으로 두 차례 공채과정에서 모두 31명(남성 20명, 여자 11명)의 면접점수가 조작돼 면접에서 사실상 불합격 점수를 받은 남성 지원자 13명이 합격했다. 합격권인 여성 지원자 7명은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특히 면접에 올라온 여성 지원자 11명 전원의 점수를 낮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사장은 평소 “여자는 출산과 육아휴직 때문에 업무연속성이 단절될 수 있으니 (면접 점수를)조정해서 탈락시켜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채용비리에서도 고득점을 받은 여성 지원자들에 대해 객관적 자료 없이 면접 순위를 임의로 변경하는 방법으로 여성 7명을 탈락하게 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정성이 담보돼야 할 공공기관 인사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한 채 성별에 대한 개인적 편견에 사로잡혀 자의적으로 여성만을 탈락시킨 사례”라고 말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전경. [중앙포토]

한국가스안전공사 전경. [중앙포토]

 
가스안전공사 공개 채용은 서류와 필기, 면접을 거쳐 진행된다. 각 단계별 통과 방식이다. 면접에서 분야별 채용인원의 2~4배수를 대상으로 직무관련 지식을 물어본 뒤 이를 인사위원회에 넘기는 방식이다. 조기룡 청주지검 충주지청장은 “면접 점수가 순위별로 나오기 때문에 면접이 채용의 당락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시뮬레이션 결과 탈락한 여성 지원자 7명은 합격권이었다”며 “박 전 사장은 앉은 자리에서 여자 지원자의 순위를 내리고 남자 지원자의 순위를 즉흥적으로 올려 인사담당자에게 점수를 조작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은  면접 점수가 1배수 안에 들어 합격이 확실시 되는 여성 지원자는 ‘Ⅹ’, 2배수 밖으로 예비 합격권에도 들지 못한 남성 지원자는 ‘○’로 표시하고 화살표로 순위 변경을 지시했다. 면접 순위 2위인 한 여성지원자는 8위로 순위가 낮아져 불합격됐고, 면접순위 5위인 남자 지원자는 3위로 순위가 올라가 합격하기도 했다. 한 여성 지원자는 230개 지점을 보유한 세계적인 가스도관 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음에도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불합격처리됐다.  그는 2015년 1월 지인의 청탁을 받고 특정 지원자 3명이 합격권에 들도록 면접점수를 올려주기도 했다.
 
공공기관은 ‘양성평등 채용목표제’ 등을 통해 특정 성비가 합격자의 70%를 넘지 않도록 기준을 설정했다. 가스안전공사의 경우 직원 1341명 중 여성은 15%(199명)에 불과했다.
 
조혜경 성인지정책연구소 대표는 “정부가 여성 채용의 문턱을 낮추는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와중에 공공기관의 대표가 나서 여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공공기관장 임명시 양성평등 의식에 대한 자질검사와 함께 이번 사태가 공공기관 전체의 문제는 아닌지 전반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좋은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은 “단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며 “더욱이 민간기업도 아닌 공기업에서 이같은 일이 이뤄져 여성 청년들은 분노하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을 뿌리 뽑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합격 처리된 여성 지원자들이 손해배상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현근택 변호사는 “양성평등에 대한 몰이해로 합격권 지원자가 탈락한 만큼 위자료 등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게 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대학이 아닌 기업을 상대로 탈락자가 불합격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박 전 사장은 이사로 재직하던 2012년∼2014년 특정 업체로부터 가스안전인증 기준(KGS 코드)을 제·개정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거나 용역계약 체결, 직원 승진 대가로 1억331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사장의 지시를 받고 채용비리에 가담한 가스안전공사 인사부 직원들과 박 전 사장에게 뇌물을 준 9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그는 각종 비리가 드러나면서 지난 19일 사장에서 해임됐다.
 
충주·수원=최종권·김민욱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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