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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않겠다" ...백남기 살수 경찰관, 유족 배상 요구 모두 수용

중앙일보 2017.09.26 18:48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숨진 백남기 농민에게 살수를 했던 두 경찰관이 유가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청구 내용을 전부 받아들이겠다는 '청구인낙서(請求認諾書)'를 재판부에 냈다.
 

"원고 주장 모두 받아들이겠다"
변호인 통해 '청구인낙서' 제출
"명령에 따랐을 뿐인데
엄청난 고통 뒤따라"
'경찰 조직 입장과 별개' 주장

두 경찰관은 변호인을 통해 2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2부(부장 김한성)에 제출한 청구인낙서에는 “국가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이상 더 이상 유족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원고들의 청구에 대하여 이를 모두 수용하고자 한다. 유족들을 직접 찾아뵙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청구인낙은 피고가 원고의 청구 내용을 모두 인정하고 승낙한다는 뜻으로, 청구인낙서를 제출하는 것은 원고의 주장에 대해 재판 과정에서 더 이상 다투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이에 따라 원고 청구대로 결정이 나며 소송은 종료된다.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대회 모습. [연합뉴스]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모대회 모습. [연합뉴스]

 
유족들은 지난해 3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살수에 의해 의식불명 피해를 입었다"면서 국가와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 구은수 당시 서울경찰청장, 살수차를 직접 조작한 한모·최모 경장을 상대로 총 2억41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은 지난해 9월 30일(백남기 농민 사망 5일 뒤)에 처음 열렸고 오는 29일에 8차 변론기일이 예정돼 있다.
 
유족들은 한모 경장과 최모 경장에 대해 “사전에 필요한 안전교육과 안전검사를 받지 않았고 살수 전 경고방송을 하지 않았으며 가슴 위 부위를 겨냥해 살수한 뒤 즉시 구호조치도 하지 않았다”면서 두 사람에게 1인당 5000만원 배상을 요구했다. 
 
두 경장은 청구인낙서에서 “명령에 따라 배치된 곳에서 성실하게 근무를 하던 중 급히 지시에 따라 사고현장으로 배치된 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복된 명령에 따라 그 지시를 따랐을 뿐인데 이로 인해 발생한 결과는 실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고통이 수반됐다”며 “그 고통의 한 순간에 저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고 심경을 밝혔다.
 
청구인낙서를 내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사고 이후 유족들을 찾아뵙고 용서를 구하려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으나 경찰의 최고 말단 직원으로서 조직의 뜻과 별개로 나서는 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비겁한 변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유족들의 아픔에 대해 국가가 먼저 나서지 않는다면 저희 스스로 용기를 내어 사죄드리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양심의 소리에 따라 결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떠한 형태로라도 이 사건 청구인낙과 별개로 유족들을 직접 찾아뵙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것이 청구인낙서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들은 청구인낙서 제출이 경찰 조직의 입장과는 별개로 내린 의사결정임을 밝히기도 했다. "청구인낙을 제출하는 이 순간도 너무나도 두렵다. 성실하게 살아왔고 상관의 명령을 성실하게 이행했을 뿐인데 유족에게는 엄청난 아픔을 주었고 한 가정의 가장인 저희는 평생직장을 잃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저희가 사고 이후 겪어온 고통이 유족들이 감내한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알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저희가 속한 경찰청의 의사와 무관하게 힘겨운 결단을 내리게 됐다"고 썼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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