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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사드가 아니다"

중앙일보 2017.09.26 14:48
중국 최대 남성복 기업 '치피랑'의 저우샤오슝 회장. [중앙포토]

중국 최대 남성복 기업 '치피랑'의 저우샤오슝 회장. [중앙포토]

"고객들에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보다 가성비가 더 중요한 가치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관계가 점차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기업 치피랑(七匹狼)의 저우샤오슝(周少雄·52) 회장은 다른 선택을 했다. 9월 22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 호텔에서 한국 패션기업 티엔제이(TNJ)와 합자 조인식을 열고, 중국 현지에서 운영할 조인트 벤처를 세우기로 했다. 치피랑그룹이 51%, 티엔제이가 49%를 출자하는 형식이다.   

시총 2조원 중국 패션그룹 '치파랑' 저우사오슝 회장
"사드 국면에 한국과 손잡은 건…
자라·H&M보다 경쟁력 뛰어난 동대문 시스템에 매력"

치피랑그룹은 은행·건설·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계열 군을 보유하고 있는 시가총액 2조원 규모(선전 증시 기준)의 대기업으로, 그중에서도 패션 부문이 그룹을 대표한다. '치파랑' '늑대와춤을' 등 5개 브랜드에 4000여 개 매장을 갖고 14년간 중국 남성 캐주얼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했고, 2016년에는 패션 부문 순수익만 약 26억4000만위안(약 4566억원)에 달했다.  
저우 회장이 한국 기업과 합자에 나선 것은 자라나 H&M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키워보겠다는 포부에서다. 파트너가 된 티엔제이는 동대문 의류 업체 500여 곳에서 다품종 소량 물량을 받아 '트위'라는 이름으로 편집숍을 운영 중인 기업으로, 국내와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에 50여 곳 매장이 있다. 그는 티엔제이의 빠른 상품 확보 및 배송 시스템, 가성비 높은 제품 등 우수한 사업 모델에서 아시아형 SPA 브랜드를 키울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엿봤다. 새로 설립되는 합자 회사는 캐주얼 브랜드 '민트블럭'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푸젠성에 10개 매장을 열 예정이며, 이후 중국 전역 확대를 결정한다. 
9월 22일 '치피랑그룹-한국 티엔제이(TNJ) 합자 조인식'에 참석한 저우사오슝 중국 치피랑그룹 회장(왼쪽)과 티엔제이 이기현 대표. [사진 티엔제이]

9월 22일 '치피랑그룹-한국 티엔제이(TNJ) 합자 조인식'에 참석한 저우사오슝 중국 치피랑그룹 회장(왼쪽)과 티엔제이 이기현 대표. [사진 티엔제이]

그는 "동대문 시장의 속도와 디자인 능력으로 트렌드를 맞춰 가는 시스템이 중국에는 아직 없다" 면서 "최근 패션 시장에서 중요한 3가지가 '스피드, 트렌드, 가성비'라고 봤을 때 동대문 시장 체제가 이를 모두 충족시킨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라나 H&M 같은 글로벌 브랜드보다 나은 장점도 꼽았다. 빠르고 대량으로 물량을 공급시키는 대형 업체들이 재고 부담을 안고 있는 반면 소량을 먼저 내놓고 시장 반응을 보며 추가 생산하는 동대문 시장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저우 회장은 또 "동대문 시장은 진보하고 생존하기 위해 건전하게 경쟁하는 생태계"라며 "브랜드와 동대문 시장이라는 플랫폼이 결합하기만 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되기 충분하다"고 예측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패션 기업의 부진한 이유도 '속도'에서 찾았다. 고속 산업화를 이뤘다는 한국 소비자들도 안목과 감성을 바꾸는데 3년쯤 걸린다면 중국 소비자들은 6개월 안에도 가능하다는 것. 그는 "초기 성공하는듯 했던 한국 대기업들이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건 이러한 시장의 빠른 변화를 이해하고 소비자들에게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고객들의 취향이 점점 더 세분화 되고 차별화 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맞출 수 있는 강소 업체들이 성장할 수 있다"고 덧붙이며  "가치 있는 중소 업체들을 인큐베이팅 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의사도 밝혔다.
7마리 늑대를 의미하는 '치피랑' 로고. [치피랑 홈페이지 캡처]

7마리 늑대를 의미하는 '치피랑' 로고. [치피랑 홈페이지 캡처]

저우 회장은 1990년 원단 장사를 해서 모은 밑천으로 형제·친구 등 6명과 함께 치피랑을 창업했다. 늑대가 도전 정신과 협력심이 강하고 개성을 잘 표현한다는 있다는 의미에서 '7마리의 늑대'를 뜻하는 회사명을 정했다. 초기부터 그는 시장에서 '개척자'였다. 재킷이 대박이 나면서 백화점에 입점하며 승승장구 했지만 그만큼 짝퉁 상품이 늘어난 것. 당시 중국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현상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모조품 생산 업자들을 소송하겠다며 전면전을 선포했고, 이것이 상하이·베이징·광저우 등 주요 지역 언론에 '진짜와 가짜 늑대의 전쟁'으로 기사화되면서 브랜드를 단번에 알리는 기회가 됐다. 이후 중국 내 처음으로 대리점 경영 체제, 스타 마케팅 등을 업계에 도입하면서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지금은 자체 브랜드뿐 아니라 칼 라거펠트, 발리 등 글로벌 브랜드의 중국 사업권(라이센스 생산, 유통, 판매)을 확보하며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이처럼 자국 내 기반이 탄탄한 패션기업이 직접 SPA 브랜드 론칭에 나서지 않고 다른 기업과 손을 잡은 이유는 뭘까. 그는 즉답 대신 성장하는 기업들의 공통점을 언급했다.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건 두 가지다. 서로 부족한 걸 터놓고 메우고 배우는 개방과 학습이다. 독식하려다 때를 놓치면 끝이다. 중국만 봐도 수많은 기업들 중 이 두 가지를 실천한 기업만 살아남고 성장하고 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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