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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이용호 “유엔 헌장이 ‘美 폭격기 격추’ 자위권 인정” 사실일까

중앙일보 2017.09.26 12:55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25일(현지시간) ‘미국의 선전포고’를 이유로 들어 “앞으로는 미국의 전략폭격기들이 설사 우리 영공계선을 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해도 임의의 시각에 쏘아 떨굴 권리를 포함해 모든 자위적 대응 권리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 “유엔 헌장은 개별적 성원국의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다”며 나름대로 근거도 댔다. 그의 말은 사실일까.  
 

유엔 헌장 51조 근거 주장, 국제사회는 요건 엄격 해석
무력 공격 있을 때만...선전포고 여부, 자위권과 상관 없어
선제적 자위권도 미래 공격 두려움만으론 발동 안돼
"역사적으로 모든 전쟁에서 주장했지만 명분에 불과"
"美 한반도에 군사 전개 빌미, 中 절대 용납 안할 것"

[YTN 화면 캡처]

[YTN 화면 캡처]

◇자위권 발동, 어떤 경우 가능할까=이 외무상의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유엔 헌장 2조 4항은 ‘모든 회원국의 무력 위협이나 무력 행사’를 금지하고 있지만, 유엔 헌장 51조는 자위권 행사에 한해 예외를 인정한다.  
 
그러나 ‘무력 공격이 발생한 경우’에만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전제를 달고 있다. 무력 공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정당한 자위권이 될 수도, 유엔 헌장 위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외무상이 주장한 선전포고 여부는 사실 자위권 행사와는 큰 관계가 없다.
 
국제사회는 그 간 자위권 발동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했다. 1986년 베를린의 미군 전용 디스코텍에서 테러가 발생해 미군을 포함, 3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쳤다. 미국은 테러의 배후로 리비아를 지목하고 수도 트리폴리를 공습했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자위권은 우리의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이며, 이는 유엔 헌장 51조에 부합한다”고 공습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테러가 미 영토에 대한 무력 공격이 아니었고, 공습이 아닌 다른 대응 수단이 있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비판이 일었다. 유엔은 미국의 공습을 비판하는 결의도 채택했다.  
 
송승종 충남대 초빙교수는 2015년 정치·외교 학술지 ‘국가전략’에 게재한 논문에서 “과거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 간 국경 분쟁을 다룬 배상위원회는 ‘인명 손실이 있더라도 소규모 보병부대 간 국지적 국경 충돌은 무력 공격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며 “무력 공격으로 인정되려면 무력의 사용이 일정한 규모와 효과를 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규모와 효과를 감안할 때 전략 폭격기가 북한의 영공 밖에 출격하는 것이 무력 공격으로 인정되기는 힘들다는 해석이 외교가에선 지배적이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은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근본 원인이 북한 자신의 핵, 미사일 도발과 위협적 언사 때문임을 깨닫고 비핵화 대화의 길로 조속히 나와야 할 것”이라며 “이 외무상의 자위권 언급은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제적 자위권 행사 허용될까=사실 이 외무상이 주장한 자위권은 위협에 먼저 대응하는 ‘선제적 자위권’에 가깝다. 1985년 사이프러스 해안의 요트에서 테러가 발생해 이스라엘 국적자 3명이 숨지자 이스라엘은 보복으로 튀니지에 있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본부를 공습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미래의 공격을 예방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라며 선제적 자위권을 주장했다. 하지만 안보리는 이스라엘의 공습을 튀니지에 대한 무력 침략으로 규정하고 규탄했다. 미래에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만으로는 유엔 헌장 51조상 자위권을 발동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외교가 소식통은 “이런 식의 선제적 자위권을 인정하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북한이 핵무기를 사실상 완성했으니, 미래에 있을 핵무기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북한을 선제 공격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논리”라고 말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도 1986년 니카라과 정부의 반미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이 니카라과 반군을 지원한 사건에 대해 판결하면서 이는 유엔 헌장 51조상 자위권 행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국제법 전문가인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역사적으로 모든 국가들이 전쟁을 시작할 때 자위권을 주장하지만 이는 하나의 명분일 뿐 엄격하게 본다면 대부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며 “선전포고가 아니라는 미국의 입장도 나온 상황에서 이 외무상의 발언은 극한 상황에서 위기를 부각시켜 상황을 주도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일 뿐, 자위권 주장은 지나친 해석이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의 자위권 묵인할까=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규범을 수없이 위반해온 ‘룰 브레이커’인 북한이 이 같은 국제법적 해석은 무시하고 자위권 행사를 고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 요인으로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북핵 문제에 대한 3대 원칙을 ▶한반도 비핵화 달성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로 규정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무력 사용도 두번째 원칙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 어긋난다. 중국이 한·미 연합훈련에 반대하는 이유도 한반도 정세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미국 전투기를 격추하는 것은 중국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공식적으로 미국이 한반도에 군사적 전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데,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이런 시나리오”라며 “중국으로선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공조가 적극적으로 움직일 빌미를 주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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