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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3년...정부의 시장 개입, 울고 싶은 소비자들

중앙일보 2017.09.25 17:01
‘소비자를 호갱(어수룩한 고객이라는 뜻의 신조어)으로 만든 법.’
 

다음달 1일로 도입 3년째...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는 일몰
소비자 혜택 보장한다는 취지 뒤로 거꾸로 선택권 축소
"기본적 시장 원리 외면한 '정부 규제의 실패' 교훈 삼아야"

다음 달 1일 도입 3년째를 맞는 일명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에 대한 시장의 냉혹한 평가다.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분위기가 거꾸로 돌아갔다는 의미다. 단통법은 지난 2014년 정부(당시 미래창조과학부)와 정치권이 가계 통신비용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로 밀어붙여 그해 10월부터 시행됐다.
 
단통법은 지난 3년간 소비자와 영세 유통업자들의 반발 속에 '단지 통신사만 위한 법'이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뉴스1]

단통법은 지난 3년간 소비자와 영세 유통업자들의 반발 속에 '단지 통신사만 위한 법'이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뉴스1]

단통법의 핵심은 3년간의 한시 규정이라 이번 달을 끝으로 일몰되는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다.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구매할 때 고가 요금제와 연계돼 차등 지급되는 지원금을 규제, 최대 33만원까지만 지원금을 줘 혜택을 소비자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는 규정이다(단기간 시장 정상화를 목표로 이런 한시 규정이 도입됐다). 이를 위해 통신사뿐 아니라 제조사의 판매 장려금도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통신사와 영업망들은 단말기별로 출고가와 판매가, 지원금 액수를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했으며, 어떤 경우라도 지원금 차별 지급이 없도록 했다.
 
취지와 달리 정부의 규제는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3년간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지원금 명목으로 들던 마케팅비를 크게 줄이면서 영업이익이 도합 배로 뛰었다. 2014년 1조6108억원에서 지난해 3조5976억원으로 급증했다. 이에 통신사만 혜택을 본 법이 됐다는 비판론이 제기됐다.
 
물론 통신사들도 할 말은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마케팅비가 줄어든 것처럼 보여도 선택약정 요금 할인 때문에 실제로는 매출 감소가 있었다”며 “우리 회사는 재무제표를 연결 기준이 아닌 별도 기준으로 봤을 땐 수익이 계속 하향세”라고 했다. 통신사들도 겉보기와 달리 법의 수혜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책의 수혜 대상이 됐어야 할 소비자들은 실제 소비 현장에서 단말기 가격과 통신비 인하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가 단통법 시행 후 단말기를 바꾼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0.9%는 “통신비가 이전보다 늘었다”고 답했다. 48.2%도 “변화가 없었다”고 했다. “통신비가 줄었다”는 응답자는 11%에 그쳤다.
 
현장에서 이런 괴리가 나타난 이유는 지원금 상한제가 통신사나 제조사들끼리 '가격 경쟁’에 소극적이게끔 하는 법적 장치로 변질해서다. 33만원이라는 공식적인 지원금 상한선이 생기자 기업들은 대리점 등 유통망에 비공개로 주는 장려금을 하향 조정했다. 통신사들은 단통법 시행 전까진 소비자가 가입된 통신사를 옮기는 ‘번호이동’을 할 때 더 많은 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단말기만 바꾸는 ‘기기변경’에도 번호이동 때와 동일한 지원을 할 수 밖에 없어졌다. 그러면서 기기변경만 하는 소비자가 급증했다. 기업들로선 타사에 소비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경쟁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이렇게 장려금이 축소되면서 단말기 출고가도 단통법 시행 전보다 올랐다. 이전까지 자율적인 시장 경쟁 하에 발품만 팔면 염가에 최신 스마트폰을 구매할 수 있었던 소비자들은 이 같은 기존 혜택마저 잃게 됐다. 소비자의 선택권 축소라는 측면도 있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정책국장은 “과거 소비자들은 지원금과 선택약정 요금 할인, 두 가지 혜택을 모두 받는 시장 구조 안에 있었다”면서 “둘 중 하나만을 택할 것을 강제하는 단통법으로 소비자들만 혜택을 놓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단통법은 기업들이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각종 꼼수를 부리게 하는 부작용도 유발했다. [사진 JTBC 캡처]

단통법은 기업들이 시장질서를 어지럽히는 각종 꼼수를 부리게 하는 부작용도 유발했다. [사진 JTBC 캡처]

 
물론 단통법도 나름대로의 안전장치를 구축해놓기는 했다. 예컨대 출시된 지 15개월이 지난 단말기는 지원금 상한제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실효성이 떨어지는 안전장치라는 지적이 많다. 직장인 박연주(34)씨는 “스마트폰을 바꿀 때 최신 제품을 주로 염두에 두지, 오래된 제품을 염두에 두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한편 장려금이 줄면서 영세 유통망도 판매량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러다보니 암암리에 불법 지원금 경쟁이 심해졌다. 생존 위기에 처한 대리점들이 오피스텔 등 비밀 장소로 소비자를 불러 놓고 상한선 이상의 불법 지원금 지급 경쟁을 벌이는 촌극이 벌어졌다. 제도 도입 취지 자체가 무색해진 셈이다.
 
결국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시장질서는 교란되고, 소비자와 유통망 모두 단통법에 피해를 입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얘기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단통법은 ‘정부가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과서적인 내용을 재확인시켜준 사례”라며 “정부 규제의 실패라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간 건강한 시장 경쟁이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간다는 기본적인 시장 원리를 정부가 도외시하면서 부작용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단통법 3년이 안겨준 교훈을 놓고 시장은 여전히 시끄럽다. 최근 정부가 가계 통신비 절감을 위한 새 대안으로 꺼내든 단말기 ‘완전자급제’ 카드에 기대감과 우려감이 공존하는 것이 한 예다. 반대론자들은 자급제 또한 정부의 인위적 시장 개입의 하나로,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자급제 도입으로 통신사들이 단말기 유통을 안 하게 되면 지원금과 선택약정 요금 할인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감안하면 소비자들이 얻는 실익은 장담할 수 없다는 논리다. 반면 소비자들은 기대감이 더 크다. 자급제가 시장의 담합 대신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단통법의 폐단을 뿌리 뽑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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