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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 1년, "밥값 3만원 맞추기 어려워 인원수 부풀린다"

중앙일보 2017.09.24 11:52
지난 8월 29일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농협 품목별 전국협의회 관계자들이 추석 전 청탁금지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8월 29일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농협 품목별 전국협의회 관계자들이 추석 전 청탁금지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업무 관련된 민원인에게 식사를 대접받거나 선물을 받는 문화가 사실상 사라졌다. 이제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밥을 사는 시대가 온 것 같다.”, “회식을 치맥(치킨+맥주)으로 하자고 (눈치 보지 않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와인 등 주류를 각자 들고 와서 회식자리에서 나눠 먹는 문화도 일상화됐다.”  

중앙부처, 지자체 공직자들 "식사 대접이나 선물 문화 찾기 어려워"
회식은 치맥으로 하고, 각자 와인을 들고 오는 등 회식문화 바뀌어
직무관련 청탁 사라진 점도 긍정 평가, 민원인들도 밥 사줄 생각 안해
식사비 한도 3만원 지키기가 가장 어려워, 경조사비는 낮춰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1년을 맞은 공직사회의 분위기다. 공직자들은 “김영란법이 정한 '식사비 3만원ㆍ선물 5만원ㆍ경조사비 10만원'을 잘 지켜왔다”고 말했다. 공직자들은 이 가운데 특히 식사비 3만원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고 있지만, 어려움도 많다고 털어놨다. 공직자들은 또 “선물 주고받기나 청탁 문화가 사라진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며 “김영란법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규정된 밥값을 지키기 위해 식사 인원을 부풀려 관련 서류를 꾸미기도 한다”고 하는 등 법망을 피하기 위한 꼼수도 동원된다고 했다.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ㆍ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공직자들은 "이제는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밥을 사는 시대가 왔다"며 "김영란법은 잘 지켜지고 있다"고 했다. [중앙포토]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ㆍ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공직자들은 "이제는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밥을 사는 시대가 왔다"며 "김영란법은 잘 지켜지고 있다"고 했다. [중앙포토]

 
금융위원회 국장급 한 인사는 "달라진 건 이제 식사 자리가 있으면 밥값이 얼마나 나올지가 다 계산이 된다는 점이다. 그 전에는 밥값을 신경 안 쓰고 먹었는데, 이젠 아예 장소를 잡을 때부터 밥값을 따지니까 알게 된다. 저녁 자리를 옛날에는 주로 방에서 했는데, 이제는 홀에서 주로 먹는다는 것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란법으로 새로운 회식문화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안주도 조금만 시킨 채 소주만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요령이 생겨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면 각자 와인을 가져와 마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지사 시절인 지난해 8월 30일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영광군 법성면 굴비상가를 방문해 업주에게서 의견을 듣고 있다. [사진 전남도]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남지사 시절인 지난해 8월 30일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영광군 법성면 굴비상가를 방문해 업주에게서 의견을 듣고 있다. [사진 전남도]

 
부산경찰청 경정급 인사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회식을 치맥으로 하자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됐다”며 “이렇게 하면 굳이 금액을 신경 쓰지 않아도 1인당 3만원 이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경남지역 시청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한 공무원(50대 중반)은 “김영란법 시행 전 주로 사업 관련 외부업체들에게 점심은 한 달에 2~4회, 저녁은 1~2회 식사를 접대 받는 쪽이었는데 지난 1년 동안 한 차례도 외부업체와 밥을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3만원 한도를 지킨다 해도 제3자의 눈이 무서워 만남 자체를 갖지 않았다”고 했다.  
 
충남 서천군청 6급 직원은 “이제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밥 사는 시대가 왔다. 업자를 만나건 단순 민원인을 만나건 공무원들이 밥 산다. 민원인들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편으론 밥 사는 게 싫어 민원인을 가급적 식사 시간을 피해서 만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내 회식도 거의 사라져, 소속 부서로 직원이 전입하면 자연스럽게 해오던 환영식도 구경한 지 오래됐다”고 했다.
 
‘돈 봉투 만찬’ 사건을 조사해 온 법무부ㆍ대검찰청 합동감찰반이 지난 6월 이영렬(59ㆍ사법연수원 18기)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51ㆍ20기)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면직’ 처리를 권고했다고 발표했다.[중앙포토]

‘돈 봉투 만찬’ 사건을 조사해 온 법무부ㆍ대검찰청 합동감찰반이 지난 6월 이영렬(59ㆍ사법연수원 18기)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51ㆍ20기)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면직’ 처리를 권고했다고 발표했다.[중앙포토]

공직사회 회식문화가 달라진 것은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물러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사건도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이 전 지검장 등은 지난 19일 면직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무부·대검 합동감찰반의 감찰 결과에 따르면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은 서울중앙지검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 소속 검사 6명과 법무부 검찰국 간부 2명을 데리고 4월21일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안 전 국장은 특수본 검사들에게 각각 70만~100만원이 든 돈 봉투를 수사비 명목으로 건넸고, 이 전 지검장도 100만원이 든 봉투를 법무부 간부들에게 각각 나눠줬다. 이 돈은 법무부·대검의 특수활동비의 일부였다.  
왼쪽은 지난해 7월 대전의 한 소고깃집에 미국산 소고기와 술, 식사를 포함한 가격이 2만 9900원인 이른바 ‘김영란 세트메뉴’가 등장한 모습 [연합뉴스], 오른쪽은 장하성 정책실장이 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자리와 추경, 소득 분배와 양극화 해소 등과 관련해 기자회견 도중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왼쪽은 지난해 7월 대전의 한 소고깃집에 미국산 소고기와 술, 식사를 포함한 가격이 2만 9900원인 이른바 ‘김영란 세트메뉴’가 등장한 모습 [연합뉴스], 오른쪽은 장하성 정책실장이 4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일자리와 추경, 소득 분배와 양극화 해소 등과 관련해 기자회견 도중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공직자들은 선물 주고 받기나 청탁 문화도 사라져 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허청의 한 4급 인사는 “김영란법 이후 지인 등에게 받은 청탁은 한 건도 없고 조직 안에서 선물을 주고 받는 문화도 구경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산림청의 4급 직원도 “전국의 휴양림 예약 민원 같은 게 사라져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건축인허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인천시청 한 공무원은 “고참 직원을 따라 점심이나 저녁 자리에 가면 업체 관계자들이 있어 난감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는 없다”고 했다. 그는 “청탁금지법이 처음 시행됐을 때 ‘뇌물이나 받는 공무원’ 취급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지만 지금은 서로 부담스러운 부탁을 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구청 과장급 인사는 "업무 관련된 사람에게 고가의 식사나 선물을 받는 문화가 사라진 것은 물론, 매사에 조심하게 된 것 같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 한 구청 6급 직원은 “곤란한 부탁 또는 요구가 사라져 무척 편하다”고 했다.
  
반면 아직도 회식 인원수를 부풀려 회식비 규정을 조작하는 등 편법도 남아 있다고 했다. 대전시청 4급 공무원은 “김영란법 시행 초기에는 공직자들이 무척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한마디로 느슨해 졌다”고 했다. “밥값 3만원을 지키기 어려워 식사 인원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방법 등을 동원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식사비 등 김영란법 규정을 손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잇달았다. 행정안전부 과장급 인사는 "경조사를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내렸으며 좋겠다. 한도가 10만원으로 돼 있으니 체면상 그 이하로 내리기 힘들다”고 했다. 이 인사는  “경조사비 한도는 5만원으로 내리고, 식사비용 한도(3만원)는 5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와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서민경제 발목잡는 김영란법 중단 및 근로시간 단축저지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와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서민경제 발목잡는 김영란법 중단 및 근로시간 단축저지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금융위원회 인사도 “만약 규정을 바꾼다면, 경조사비는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내리고, 대신 식사비는 5만원으로 올리는 게 좋을 듯하다”고 했다.
대구지역 사립대학 50대 교수는 "더치페이(각자 내기)를 하는 문화가 정착됐다고 하는데. 아직 영남권 특히 보수적인 학자들 사이엔 그렇지 않다. 만날 것도 아예 안만나는 경우도 있다”며 “전체적으로 식사비는 현실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인천·광주·울산·부산·대구=김방현·임명수·김호·최은경·이은지·백경서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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