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주 목소리 더 듣되 구조조정에는 신중해야

중앙선데이 2017.09.24 02:05 550호 21면 지면보기
런던 아이(London Eye) : 시총 글로벌 톱10 눈앞에 둔 삼성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곧 글로벌 톱10 기업이 된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어깨를 견주게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13위에 올라 있다. 조만간 10위가 될 게 틀림없다. 삼성전자의 비상은 최근 상황에 비춰 놀라운 일이다. 갤럭시 노트7이 폭발했고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으며 북한 핵 사태가 커지고 있다.

2012년 이후 시총 82% 늘어나
원화 약세보다 경쟁력 강화 덕분
톱10 진입 위해 뉴욕증시로 가야

 
원화 가치 하락이 삼성전자 경쟁력을 높여 줬을 수는 있다. 하지만 사실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았다. 영국 옥스퍼드메트리카가 분석해 보니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보다 삼성전자의 달러 기준 경쟁력이 더 크게 높아졌다. 최근 불행한 사태만 없었다면 진작에 글로벌 톱10이 됐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삼성전자가 언제나 톱10이 될까.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이미 톱10에 오른 중국 기업과 경쟁이 치열하기는 하지만 빠르면 내년, 늦어도 2년 안에 10대 기업 반열에 오를 듯하다. 원동력은 삼성전자 자체 경쟁력이다. 삼성전자는 재무구조가 탄탄하다. 금융 자원이 넉넉해 톱5와 견줄 정도다. 또 꾸준히 기술을 혁신하고 있다. 현금이 풍족해 앞으로도 연구개발(R&D)에 넉넉한 돈을 쓸 수 있다. 게다가 신기술을 개발한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합병(M&A)할 수 있다.
 
다만 두 가지가 부족한 듯하다. 삼성전자는 주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회사를 불안하게 할 대규모 구조조정 요구엔 맞서야 한다. 다음으로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자금 저수지인 미국 자본시장에서 주식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유럽시장에서만 주식예탁증서(GDR)를 발행했을 뿐이다. 미국 자본시장과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은 글로벌 100대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미국 투자자가 서울 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많은 투자자가 삼성전자 주식을 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는 좋지 않은 신호다. 삼성전자가 미 자본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풍부한 자금을 활용하게 되면 자본조달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 한결 수월하게 10대 기업이 될 수도 있다.
 
중국 알리바바·텐센트 IPO로 단숨에 톱10
옥스퍼드메트리카는 2012년 이후 약 5년간 글로벌 100대 기업을 추적했다(표 참조). 올해 9월 1일 기준 글로벌 톱100의 시가총액은 18조8000억 달러(약 2경1000조원)였다. 이는 세계 최대인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기업의 전체 시가총액보다 큰 규모다.
 
최근 5년 새 시가총액은 부침이 심했다. 애플이 세계 최대 기업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8470억 달러 정도다. 어지간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많다. 같은 기간 100대 기업의 시가총액 평균 증가율은 60% 정도였다. 애플은 71%나 늘었다. 복리로 따져보면 애플 시가총액은 연 10%씩 늘어났다. 2018년이 저물 무렵에는 1조 달러 선을 넘어설 전망이다. 세계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 기업이 된다. 글로벌 100대 기업의 대세는 정보기술(IT) 회사들이다. 10대 기업 가운데 8곳이 IT 기업일 정도다. IT 업계 사람들이 ‘G5(Gang of Five)’라고 부르는 애플·알파벳·MS·페이스북·아마존의 전체 시가총액이 3조 달러 정도다. GDP가 3조 달러를 넘어선 나라는 고작 네 나라뿐이다.
 
G5 가운데 놀라운 순위 변동을 보인 회사가 있다. 미국의 페이스북과 아마존이다. 2012년 이후 40 계단 이상 뛰어올랐다. 또 다른 두 IT 회사가 100대 기업에 이름을 새로 올렸다. 중국의 알라바바와 텐센트다. 두 회사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각각 7위와 8위에 오르며 단숨에 10대 기업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타이완세미컨덕터(TSMC)는 최근 5년 사이에 40계단을 껑충 뛰어 38위를 차지했다.
 
100대 기업 현금자산 6조5000억 달러 달해
IT 기업의 두각은 금융적인 측면에서나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시가총액 급등 덕분에 M&A 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장막 뒤에선 은행마저 M&A 대상으로 저울질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들 IT 기업은 불균형적인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소액주주 희생을 대가로 창업자의 장악력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반독점 문제도 표면화할 태세다.
 
어느 기업이 루저인가? 2012년 당시 100대 기업 가운데 28곳이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원자재 분야 기업들이다. 원유 가격이 떨어지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가 떠오른 여파였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기업 가치가 가장 많이 떨어진 12곳 가운데 7개 회사가 석유와 가스 회사들이다. 미국 엑손모빌이 겨우겨우 톱10 자리를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2위에서 8계단 뚝 떨어져 10위에 머물고 있다. 시가총액이 15% 정도 줄어들었다. 영국 BP의 추락은 놀랄 정도다. 38계단이나 추락했다. 68위에 매달려 있는 모양새다.
 
통신회사는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글로벌 100대 기업 리스트에서 5곳만이 탈락했다. 자동차 회사 가운데 3곳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 때문에 평판이 나빠지고 재무제표 사정도 악화됐다. 다른 두 곳은 일본 자동차 회사인 미쓰비시와 혼다다. 이들의 추락은 일본엔 경고음이지만 동아시아 지역 경쟁자인 한국엔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100대 기업의 경영자들은 엄청난 현금 방석 위에 앉아 있다. 무려 6조5000억 달러에 이른다. 톱10 자리를 차지한 IT 기업의 현금 자산은 5000억 달러 정도다. 가장 현찰이 많은 기업은 중국의 알리바바로 1500억 달러에 이른다. 100대 기업의 현금 자산은 꾸준히 늘어나는 흐름이다. 실제 2012년 이후 1조 달러 정도가 불어났다. 투자를 기피한 탓이다. 미국 기업들은 현금 자산을 대부분 해외에 비축해 놓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세금 제도를 바꿔 미국 기업의 해외 현금을 자국 내로 유인하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미 경제에 상당히 도움이 될 듯하다. 글로벌 기업의 불어난 현금은 경제 규모가 큰 나라에 좋은 일은 아니다.
 
 
로리 나이트  전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장
스위스 중앙은행 부총재와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인 템플턴칼리지 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영국의 대표적 투자자문사인 옥스퍼드메트리카를 이끌고 있으며, 템플턴 재단 이사로 투자위원회 의장도 맡고 있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