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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처럼 재생한 옛 공간의 의미는

중앙선데이 2017.09.24 02:00 550호 29면 지면보기
지난 주말 본 영화 한편의 여운이 꽤 길다. 사루 브리얼리의 회고록 ‘어 롱 웨이 홈(A Long Way Home)’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라이언’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소년 사루가 호주로 입양됐다가 25년 뒤 다시 고향을 찾는 실화를 담았다.

아쉬움 남긴 서울 재생 프로젝트

 
인도에서 7600㎞ 떨어진 호주에서 사루가 살게 된 것은 깜빡 졸아서다. 일하러 가는 형을 따라갔다, 다섯 살 소년은 기차역에서 곯아떨어졌다. 분명 멈춰선 기차 안에 들어가 잠들었는데 눈 떠보니 기차가 달리고 있다. 그렇게 쉬지 않고 2박 3일을 달려 낯선 곳에 도착한 사루가 알고 있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동네 이름과 형 이름 뿐이다. 결국 사루는 호주로 입양됐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좋은 호주인 부부를 만났다는 거다. 사루는 완벽한 아들이자, 건실한 호주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런 사루를 다시 고향 땅으로 강하게 끌어당긴 것은 과자 한 입이었다. 파티장에서 우연히 맛본 고향의 과자 ‘젤라비’가 잊고 살았던 기억을 몽땅 소환했다. 사랑하는 형이 “언젠가 사주겠다”던 바로 그 과자였다. 사루는 위성영상지도 서비스인 구글어스를 통해 고향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옛 기억을 더듬어 길과 동네를 발견하고 마침내 집을 찾는다. 25년 동안 동네가 거의 바뀌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서울의 9월은 ‘건축’으로 떠들썩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부터 서울세계건축대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등이 동시다발로 열렸다. 그 현장을 다니다 자꾸 만난 화제가 있다. 기억과 재생 관련 이야기였다.
 
41년 전 만들어진 서울 매봉산 석유비축기지는 문화비축기지로 리모델링되어 이번 건축 축제의 주요 무대가 됐다. 서울에서 잊혀졌던 70년대 산업기지를 문화공간으로 재생했다. 문화비축기지는 과거의 기억을 더 이상 마구 허물지 말자는, 도시 재생 시대의 상징과도 같다. 하지만 그 역사적인 현장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짧은 공사 기간 탓이다.
 
10년 넘게 잊혀졌던 기지를 재생하기 위해 디자인하는 데 9개월, 공사 기간은 1년 6개월이었다. “디테일이 눈에 밟힌다”는 탄식을 현장에서 들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으로, 새로 짓는데 5년 가까이 공사했다는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이 부럽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문화비축기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돈의문 박물관마을(사진)의 경우 공사 기간이 1년도 안 됐다. 옛 새문안 동네 안 68채의 집을 재단장하는 데 든 시간이다. “68채의 집을 68명의 건축가가 맡아서 연구하고 토론해서 재생시켰으면 좋지 않았을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현장의 외침이 안타까웠다.
 
재생에 익숙한 유럽은 어떨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를 최근 만났을 때다. 그의 파리 중앙 우체국 재생 프로젝트가 지난 해에서야 공사를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2012부터 디자인하기 시작한 터였다. 설계 기간만 무려 5년이었다. 공사 기간은 심지어 정해지지 않았다.
 
옛 것에 새 숨결을 불어 넣는 일은 새로 짓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 사람이 쓸 수 있게 깨끗하게 고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어서다. 옛 것의 의미를 꼼꼼히 조사하고 어떻게 지금 시대와 연결할 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영화 ‘라이언’의 여운이 길었던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주인공 사루는 잊고 살던 고향을 찾아서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았다. ‘쌔루’, 인도말로 그 의미는 사자였다. 쌔루는 기억을 찾고, 자신도 온전히 되찾는다. 우리가 도시 재생을 통해 발굴하려는 것도 이런 게 아닐까. 도시의 진짜 기억을 찾고, 의미 없이 부유하고 있는 것만 같은 우리 존재를 연결시키는 것. 결코 빨리 할 수 없는 일이다.
 
 
글·사진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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