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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밖 공공공간 질과 양,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중앙선데이 2017.09.24 02:00 550호 16면 지면보기
아파트에도 생태계가 있다.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과 이를 양산ㆍ제어하는 사회 시스템이 반세기 넘게 작동한 결과다. 국내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1962년 준공) 이후 아파트 생태계는 단지 안과 밖을 나눠 살필 수 있다. 안에는 놀이터ㆍ양로원 등 생활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단지 밖은 늘 부족하다. 단지의 수명도 길지 않다. 30년이 지나면 ‘재건축’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정재은 감독의 세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 ‘아파트 생태계’

 
‘말하는 건축가(2011)’ ‘말하는 건축 시티:홀(2013)’에 이어 정재은 감독의 세 번째 건축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아파트가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의 절반이 아파트다. 게다가 1970~80년대에 지은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요즘 재건축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 아파트들의 평당 분양가와 층수 규제가 주요 뉴스가 됐다. 정 감독은 “왜 건축 영화를 찍느냐고 묻는 것은 왜 밥 먹느냐는 질문과 같다”며 “영화감독이라면 주인공이 사는 집, 도시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24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다큐멘터리는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인 세운상가, 허허벌판 위에 지어졌던 여의도 시범 아파트, 곧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 등 아파트 개발사를 살핀다. 아파트를 만든 이와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의 증언이 다큐멘터리의 골격을 이룬다. “서울 지도를 놓고 원을 그려 30분 만에 지하철 2호선 노선을 완성했다”는 고(故) 손정목 전 서울시 도시정책국장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 서울은 빠르게 성장하고 변했다.
 
지난 12일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다큐멘터리 상영 직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열렸다. 정재은 감독과 『아파트』의 저자 서울시립대 박철수 교수(건축학과)가 참석한 현장에는 오늘날 우리 삶터에 대한 고민이 넘쳤다. 주요 문답을 추렸다.
 
다큐멘터리 속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 단지의 나무가 울창하다. 이런 자연을 뒤엎고 더 친환경적인 거주지를 과연 만들 수 있나.
“1974년 은평구에 지어진 ‘한양주택’의 경우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돼 조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최우수상까지 받았지만 은평 뉴타운 계획으로 200여 채 집을 허물었다. 친환경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였다. 반포주공아파트의 소속구는 63년부터 지금까지 5번 바뀌었다. 처음 지어졌을 때 영등포구였고, 성동구ㆍ동작구ㆍ강남구를 거쳐 지금의 서초구가 됐다. 대한민국은 급하게 변했다. 도시가 갖춰지는 동안 모순적 상황이 반복됐다. 새것을 위해 오래된 것을 붕괴하는 강박적인, 희생의 역사였다.”(박)

“나무의 생애 주기로 보면 40~50년이 절정기라고 한다. 인간에게 가장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때라는 의미다. 그런데 서울의 개발 주기는 30~40년이다. 자연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자연 생태계까지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정) 
 
아파트 단지화로 아파트가 도시 안에서 섬이 됐다.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아파트를 지을 때 생활편의시설을 짓게끔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 비용은 입주자가 부담한다. 그 결과 단지 안은 ‘사설 오아시스’가 됐고, 단지 밖은 걷기도 힘들며 놀이터도 제대로 안 갖춰져 있는 열악한 곳이 됐다. 정부는 결국 국민의 돈으로 주거 관련 편의시설을 모두 구입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반세기 동안 답습해온 이 시스템을 버리고, 정부가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담장 밖, 공공공간의 질과 양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박)

“‘열심히 일하는데 나는 왜 아파트를 가질 수 없나’라는 의문이 살면서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 무능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다큐를 찍으면서 알게 됐다. 아파트 문화와 주택 정책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게 된 이유가 보인다. 제도와 시스템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고,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참여해야 풀 수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정)
 
다큐멘터리는 1세대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시대를 맞아 고민거리를 던진다. 우리 도시는 어떤 방향성을 갖고 변화해야 하는 걸까. ‘아파트 생태계’는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서울국제건축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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