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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헬베티카, 서울에 서울서체

중앙선데이 2017.09.24 02:00 550호 14면 지면보기
뉴욕 지하철에 남아있는 옛 타일형 사인들. 헬베티카 사인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뉴욕 지하철에 남아있는 옛 타일형 사인들. 헬베티카 사인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도 한다. 가끔은 글자도 그렇다. 뉴욕 시에서 만난 헬베티카는 마치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스위스에서 날 낳으시고, 뉴욕 시 날 키우시니….”

유지원의 글자 풍경

 
나는 세계에서 글자들이 인간의 보편성과 지역의 특수성을 어떻게 반영해서 연결되는지 파악하는 ‘글자 네트워크 지도’에 관심이 있어, 가급적 세계의 중요한 글자 현장들은 직접 확인하려고 한다. 독일에서 유학을 한 나의 글자 경험들은 주로 유럽과 동아시아에 촘촘하게 편중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요 지역인 런던과 뉴욕은 남들보다 조금 늦게 접했다. 런던은 20대 후반에, 뉴욕은 30대 후반에 처음 방문했다.
 
뉴욕의 헬베티카
뉴욕 지하철 표지판 속 헬베티카

뉴욕 지하철 표지판 속 헬베티카

이전 만은 못하다고 하지만 인상적으로 부유하고 거대하다는 것이 뉴욕을 본 첫인상이었다. 이렇게 규모가 큰 도시에서, 한 치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고도 반듯하게 적절한 성량의 또렷한 목소리를 내며 빛나는 글자체가 있었다. 헬베티카였다.
 
헬베티카는 특히 뉴욕의 지하철에 적용되었다. 1904년에 처음 개통된 뉴욕 지하철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 1968년에는 모더니스트 디자이너 마시모 비넬리가 뉴욕 지하철의 사인 시스템을 정비했으니, 이때 비넬리는 헬베티카를 썼다.
 
헬베티카는 1957년에 스위스에서 만들어졌다. 이름도 스위스를 뜻하는 ‘헬베티아’에서 왔다. 글자체에도 지역마다 시각적인 방언들이 있어서, 이전에는 유럽의 국가마다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 양식이 서로 달랐다. 한편, 헬베티카는 스위스라는 특정한 지역색을 벗어나 글자 본연의 골격과 구조에 충실한 ‘탈지역성’을 띤다. 또한 1957년이라는 특정한 시대성을 벗어난 ‘탈역사성’을 지닌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헬베티카는 특히 미국의 다국적 기업에서 환영 받으며 널리 쓰였다. 이른바 ‘국제주의 양식’을 연 것이다.
 
가장 다양한 언어와 민족들이 모인 도시인 2017년의 뉴욕에서, 60년 전 스위스에서 만들어졌지만 특정 시대와 지역에 치우치지 않은 헬베티카는 여전히 더할 나위없이 어울리며 잘 기능하고 있었다.
 
헬베티카, 너는 누구일까?
이 칼럼을 쓰고 있는 내 책상에서 위를 비스듬히 올려보면 무지(MUJI)의 무음 벽시계가 걸려있다. 숫자판 폰트가 헬베티카다. 헬베티카가 좋아서 고른 것이 아니라, 마음에 안 드는 숫자판 글자체들을 제외하다 보니 헬베티카가 남았다.
 
헬베티카는 이런 저런 이유로 널리 쓰인다. 헬베티카라고 개성이 없겠냐만은 상대적으로 ‘탈개성’적이라 잘못 고를 위험이 낮아서 선택되기도 한다. 또 매킨토시에서도 윈도우에서도 디폴트 폰트로 탑재되어 있어, 굳이 찾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늘 손 닿는 곳에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굴림체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이렇게 많이 쓰이는 헬베티카는 그만큼 좋은 글자체일까?
 
위로부터 헬베티카노이에, 에어리얼, 유니버스, 악치덴츠 그로테스크. 왼쪽의 글자들은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오른쪽의 글자들은 표시한 부분을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위로부터 헬베티카노이에, 에어리얼, 유니버스, 악치덴츠 그로테스크. 왼쪽의 글자들은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오른쪽의 글자들은 표시한 부분을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글자체는 그 자체로 1차 디자인 창작품이지만, 일반적인 문서와 디자이너들의 작업에 사용되면서 2차 창작품으로서의 새 생명을 얻는다. 헬베티카는 워낙 많이 쓰이다보니, 뛰어난 그래픽 디자인에 무수히 사용되어 더 좋아 보이는 효과를 얻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1차 창작품으로서의 완결도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헬베티카는 가장 중립적인 글자체라고도 한다. 그러나 헬베티카 말고도 중립적인 성격을 가진 산세리프 글자체들이 있다. 헬베티카와 거의 대등한 위상에 놓을 수 있는 유니버스체와 비교해보면, 외관이 무척 닮았다. 글자체는 낱글자보다는 단어 단위로 인상을 파악하긴 해도, 그림 3의 왼쪽 낱글자들은 차이를 변별하기가 쉽지 않다. 오른쪽 글자들에는 그래도 몇몇 힌트들이 보인다.
 
내 경우에는 R의 다리가 곡선으로 맺어진 모습, a의 물방울 모양 하얀 속공간, 수평으로 잘리는 C의 마감 등으로 헬베티카를 판별한다. 이런 특징들을 보면 헬베티카가 중립적이기만 한가 싶다. 기본적으로는 중립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담백한 유니버스체에 비해서도 나름의 고유한 풍미가 있다.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헬베티카는 정말 잘 디자인된 글자체인가? 이런 질문에 이르면, 글자체를 순수형식적인 완성도에서 판단하는 비평적인 안목으로 답을 해야 한다. 헬베티카의 비례, 곡선을 가진 글자들의 커브, 커브가 끝나는 커트의 처리, 하얀 속공 간의 탱글한 긴장감, 글자들 간의 어울림에는 빈틈이 없다. 무표정한 듯도 하지만, 조화와 리듬감을 갖춰 경직되지 않았다.
 
서울남산체가 아름답게 적용된 서울 도심의 보행자 도로 안내판 ⓒ서울특별시

서울남산체가 아름답게 적용된 서울 도심의 보행자 도로 안내판 ⓒ서울특별시

가까운 서울시로 눈을 돌려보면, 서울서체 중 고딕체 계열인 서울남산체가 산세리프인 헬베티카와 비견할 만 하다. 서울남산체에는 장점이 많다. 도시의 인상을 단아하고 부드럽게 보여준다(그림 5).
 
합정역의 ‘합’자에 적용된 서울남산체 히읗

합정역의 ‘합’자에 적용된 서울남산체 히읗

그러나 워낙 촉박하게 만들어진 터라, 아쉽게도 낱글자들의 완성도가 들쭉날쭉하다. 특히 ㅎ은 글자체의 개성을 과도하게 드러내려다 무리가 생겼다. 가뜩이나 획들도 몰려있는데, 오른쪽 끝을 열어 두려니 더 복잡해졌다. 이렇게 글자의 개성을 내세우면 브랜딩의 측면에서 서울시가 뭔가 일을 했다는 표가 나긴 하지만, 이런 자의식은 시민들의 미적 쾌감 및 편의와는 별 관련이 없다.
 
한번은 합정역에서 크게 확대된 서울남산체의 ㅎ이 눈에 띠게 찌그러진 모습을 봤다. 아랫쪽 동그란 부분을 무리하게 열려다 보니 오른쪽 커브가 부득이 찌그러지고 커트의 마무리 각도도 어색해졌다. 이런 ‘엽사(엽기사진)’를 노출시켜 서울남산체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빈틈없는 헬베티카는 엽사가 안 찍힌다. 서울시는 서울서체를 계속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니 더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너의 헬베티카와 나의 헬베티카
그래픽 디자이너라면, 이 글의 제목을 보고 아마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아니, 헬베티카에 대해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아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사람도 그렇고 글자도 그렇고, 어떤 대상에 대해 완전하게 안다고 여기는 데에서 오해와 오독이 생겨난다. 독일어에 이런 말이 있다. “Man lernt nie aus”. 아무리 잘 알아도 모르는 것은 항상 남아있으니, 겸손하라는 뜻이다.
 
뉴욕 시의 당당한 헬베티카는 내가 주로 알프스 북쪽 유럽에서 접한 깨끗하고 합리적인 헬베티카와는 또 다른 새로운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니 새삼 겸손해진다. 우리가 헬베티카를 말할 때, 너의 헬베티카와 나의 헬베티카는 이렇게도 달랐겠구나.
 
 
유지원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저술가·교육자·그래픽 디자이너. 전 세계 글자들, 그리고 글자의 형상 뒤로 아른거리는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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