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상력, 동양 신화

화가 정지영
이성·합리성 추구 산업화 시대엔
인간 중심 그리스로마신화 적합
인간·사물 교감, 감성 복권 시대
동양신화의 귀환과 역할 기대 커
반인반수 농업·의약의 신 신농
괴물 벗어나 통섭의 아이콘 돼야
할머니의 이 말씀은 오늘날에 이르러 완전히 설득력을 상실했다. 지금은 옛날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해지기는커녕 부자가 되기 쉽다. 가난한 이혼녀 조앤 롤링이 켈트신화의 마법 이야기를 ‘해리 포터’ 시리즈로 잘 풀어내서 거부(巨富)가 된 것만 보아도, ‘포켓몬 고’가 동양신화의 고전『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괴물들을 캐릭터로 소환해서 대박을 친 것만 보아도 옛날이야기는 이제 부와 지근거리(至近距離)에 있다.
스토리가 부를 만들어 내는 시대

신농(神農). 고구려 오회분 5호묘 벽화.
미셸 마페졸리는 개인주의에 기반한 현대사회가 퇴조하고 감성 혹은 정서를 공유하는 대중 즉 고대의 부족과 같은 성격을 지닌 사회가 등장하였음에 주목한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그 사회는 막스 베버의 이른바 탈주술(disenchantment)의 시대 이후에 등장한 재주술(re-enchantment)의 사회이다. 롤프 옌센은 이러한 입장을 계승하여 미래의 기업을 부족에 비유한다. 그리고 부족 정신의 중요한 것으로서 감성, 연대감 등을 들고 이러한 것들이 상품 매체를 통해 스토리로서 구현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미노타우로스(Minotaur). 크레타섬 벽화.

저인(?人). 『산해경(山海經)』『해외남경(海外南經)』
인어아저씨와 인어공주, 동서양의 차이

인어(A mermaid). 워터하우스(J.W.Waterhouse) 자료: 정재서 『동양고전으로 오늘을 읽다』 (신아사)
B세트(그림 3, 4)는 인간의 환경, 설화적 토양의 차이로 인한 동서양 인어 스토리의 상이한 양상을 보여 준다. 서양에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양문화의 발달, 그리고 대양으로의 장구한 항해 등의 환경에서 인어는 고독한 항해자인 남성의 성적 욕망을 투사하기 적합한 예쁜 여인으로 묘사된다. 반면 상대적으로 이러한 문화적 성향이 현저하지 않은 중국대륙에서 인어는 전통사회의 일반적인 관례에 따라 남성으로 대표된다.
세계관, 문화적 환경 등의 차이에 따라 스토리의 원조인 신화도 이처럼 상반되기까지 한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A세트의 신농을 접한 순간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하고 신성(神性)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B세트의 인어아저씨 저인(氐人)을 보자마자 “별 이상한 인어 다 보겠네” 하고 황당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반인반수는 괴물이고 인어는 예쁜 여자여야 한다는 우리의 상상력-이미지-스토리에 대한 통념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통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심문하지 않을 수 없다.
브루스 링컨은 근대의 신화학이 인도유러피언 즉 서양 인종의 기원을 탐색하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데 열중해 왔으며 이러한 경향이 민족주의, 제국주의 등의 욕망과 긴밀한 상관관계에 있음을 논증한 바 있다. 미르시아 엘리아데 역시 플라톤 이래 서양의 철학자들이 내린 신화에 대한 정의가 모두 그리스로마신화 분석을 토대로 삼고 있으며 그것이 보편타당하지 않음을 지적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녔던 통념의 이면에는 그리스로마신화라는 ‘표준’에 입각한 상상력-이미지-스토리의 제국주의가 엄존(儼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자연 조화로운 합일의 표상
동양신화는 귀환하고 있는가?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더니 스토리의 시대는 도래했건만 동양의 신화는 아직 귀환하지 않았다. 과거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했던 근대 산업화 시대에는 인간 중심의 그리스로마신화가 적합했고 그 소임을 다했지만 인간과 사물이 교감, 공존하고 상상력-이미지-스토리 등 감성 능력이 복권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오히려 동양신화의 역할이 기대된다. 과연 반인반수의 신농이 괴물의 지위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합일, 융복합과 대통섭의 표상으로 이 시대의 신화적 아이콘이 될 날은 언제인가.

서울대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하버드-옌칭 연구소와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중국어문학회 회장, 비교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산해경 역주』『이야기 동양신화』『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