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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실리 후보 맞선 현대차 노조, 협력사 직원과 연대 외면

중앙선데이 2017.09.24 01:34 550호 16면 지면보기
선거철 맞은 민주노총 산별노조
박유기 지부장(왼쪽 둘째)이 이끄는 강성 계열의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올해 임단협 합의에 실패한 채 차기 집행부 선거를 맞이하게 됐다. [연합뉴스]

박유기 지부장(왼쪽 둘째)이 이끄는 강성 계열의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올해 임단협 합의에 실패한 채 차기 집행부 선거를 맞이하게 됐다. [연합뉴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노동계가 바쁘다. 민주노총 산하 상당수 산별노조가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선거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26일 실시되는 국내 최대 규모 단일 사업장(조합원 4만9000명)인 현대차의 노조 집행부 1차 투표에 관심을 쏠리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선거야말로 중대 선거”라고 말했다. 일단 현대차를 둘러싼 경영 환경이 불안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이후 중국의 보복,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력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인력 감축을 비롯한 구조조정 중인 조선업 3사(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기아차·한국GM 등 기타 대규모 사업장의 노사 관계도 맏형 격인 현대차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출렁거릴 가능성이 있다.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 방향을 가늠할 첫 갈림길에 다다른 상황이다.

완성차업체 조합원 임금 늘수록
부품업체 투자 줄어 경쟁력 훼손
“기업별 원·하청 수직적 연대 필요”

노조가 벤치마킹한 프랑스는
‘산별’ 영향력 줄이기 개혁 추진

 
10여 개 계파로 나눠진 노조
“우리들만의 배부른 투쟁만 하는 집단이 아니라 국가 경제를 고민하고 울산시민을 생각하는 노조로 활동 방향을 잡아 나가겠다.”
 
지난 6일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산하 현대차지부) 지부장 선거에 나선 이상수 후보는 이례적으로 울산시청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9~2011년 노조 수석부위원장을 지낸 그는 실리 계열의 ‘현장노동자회’ 소속이다. 그의 출마선언 자리에는 같은 실리 계열로 2009년과 2013년 집행부 선거에서 당선됐던 이경훈 전임 위원장도 참석했다. 이 전 위원장은 2009~2011년 3년 연속으로 무분규를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당시는 현대차그룹이 2008년 420만 대에서 2011년 660만 대까지 연평균 17%씩 성장했던 시기다.
 
2년 임기의 현대차 노조위원장 선거는 각각 강성과 실리를 내세우는 현장조직 간 치열한 세력 대결의 장(場)이다. 울산과 전주(상용)·아산 등 생산직 노조 현장조직은 10여 개, 전국 각 지점에 있는 판매직 노조 조직은 5~6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한 현대차 판매직 노조원은 “이경훈 전임 위원장만 하더라도 전주공장 출신이라 조합원 70% 이상이 근무하는 울산에선 지지 기반이 약했다”며 “강성 계파들은 이 위원장이 회사 측에 동조하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감지되면 곧바로 어용 노조라며 흔들기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도 강성과 실리 노선의 첨예한 대립 양상을 띠고 있다. ‘민주현장’의 문용문 전 노조위원장(4대), ‘들불’을 이끌고 있는 하부영 전 민노총 울산지역본부장은 강성 계열을 대표한다. 실리 계열에선 이상수 후보 말고도 홍성봉 전 수석부위원장(2013~2015년)이 ‘전진하는 혁신투쟁위원회’와 ‘제3의 물결’ 지지를 받고 출마했다. 홍 전 부위원장의 경우, 지난 집행부 선거에서 1차투표 1위(36.3%)를 하고도 결선에서 ‘금속연대’ 소속 박유기 현 지부장(33.6%)에게 패배했다. 2년 전에도 출마한 하부영 후보(31.1%)의 지지 조직 가운데 대다수가 노선이 유사한 박 지부장을 결선에서 지원한 결과다.
 
25일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회사 안팎의 관측이다. 좌파 진영에선 후보를 내지 않은 금속연대 표를 많이 흡수한 쪽, 실리 진영은 1차 투표에서 더 많은 표를 얻어낸 후보가 29일 결선 투표에서 일대일 대결을 펼칠 전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선거 판세로 보면 강성 계열이 조금 유리한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새로 들어설 집행부는 박유기 위원장이 해결 못한 2017년도 임금 및 단체협상을 회사와 마무리지어야 한다.
 
11년 전 산별노조 전환 주역, 지금도 위원장
박유기 현 지부장은 이번 선거에 불출마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 파업(36일)을 벌였지만, 이후 사측으로부터 받은 성과급 액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전주 공장에 근무하는 한 현대차 직원은 “생산직 근로자 상당수로부터 불신임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어 출마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노동계에서는 박 지부장이 현대차 노조 위원장 임기를 마친 후 금속노조나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박 지부장은 2006~2007년 현대차 노조위원장, 2009~2011년 상부단체인 금속노조 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경력이 화려하다.
 
사실 박 지부장은 11년 전인 2006년 기업별 노동조합 형태였던 현대차 노조를 산별 형태로 전환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노동운동가들이 앞에서 산별 노조 전환을 끌고, 노무현 정부(2003~2008년)가 ‘노사 관계 선진화 방안’이라는 명분으로 뒷받침한 덕분이다. 당시 주무부처인 노동부 장관을 맡았던 이상수 전 의원은 “산별노조 전환과 초기업 노조는 시대적 추세”라며 “원·하도급 관계 개선,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같은 기존의 기업단위 교섭으로 풀 수 없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영계와 보수 야당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1980년대 이전 산별노조를 먼저 도입한 미국·유럽이 각종 부작용으로 인해 다시 기업별 노조로 회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별 노조 도입 후 1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산별 노조는 도입 전 우려했던 한계점을 그대로 노출했다”며 “산업구조가 하이테크로 고도화되면 노동조합도 변화해야 하는데 정치인, 노동 운동가의 인식이 여전히 87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별노조가 경영 환경이 서로 다른 회사를 상대로 동일한 임금 인상(예를 들어 기본급 15만원 인상 같은)을 요구했고, 비정규직이나 1·2차 벤더 근로자에는 관심없이 정규직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의 임금 파이를 키우는 데에만 교섭력을 활용했으며, 노조 조직률이 10% 안팎까지 낮아지는 와중에 교섭력이 커지면서 노조가 일부 운동가의 전유물이 됐다는 것이다.
 
산별 노조 도입 당시부터 지적된 노·노 갈등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올 6월 기아차 노조는 총투표를 통해 비정규직 지회를 노조에서 제외시켰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놓고 근로자 간 이해 충돌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정치 선명성 문제도 지속되고 있다. 1년 전 현대차 노조 산하 현장조직 ‘소통과 연대’는 “금속노조가 재벌의 사회적 책임성 강화 등 대의적 명분으로 공동교섭을 기획했다고 하지만, 속내는 한계에 봉착한 산별교섭을 돌파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산별 체제로 강화된 노조 교섭력이 도리어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와 1·2차 협력업체 근로자 간 임금 격차를 늘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으로 잡았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이 62.7, 중소기업 정규직은 52.7,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37.4 수준이다. 송호근 서울대(사회학) 교수는 “국내 공장 근로자가 앨라배마 등 미국 노동자와 협력업체 사원을 희생시켜 본인들의 배를 불리고 있는 것”이라며 “협력업체 ‘단가 후려치기’를 통한 대기업 노조의 임금 인상은 일종의 편취”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말 통상임금 1심 소송에서 패소한 기아차의 경우, 지난 21일 “잔업을 전면 중단하고 특근도 최소화한다”고 밝혔다. 잔업·특근을 줄여 평균 1억원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생산직 근로자에게 추가적인 수당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단가 후려치기 통한 임금인상은 편취”
이 때문에 현재 산별 노조 시스템의 보완책으로 원청-하청업체 간 수직적 연대를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각 기업별 노조가 수평적으로 결합한 형태인 현재 산별 노조 체제로는 대기업과 하청기업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어렵다”며 “대기업의 임금 양보와 중소기업의 임금 상승을 돕는 연대임금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실시하고 있는 임금공유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3년부터 하이닉스는 임금 인상분의 20%를 기금으로 조성해 협력업체 근로자 교육에 쓰고 있다.
 
수직적 연대를 강화할 경우, 산업별 뿌리에 속하는 부품업체도 연구개발(R&D) 투자 여력을 늘릴 수 있다. 완제품뿐 아니라 부품 경쟁력까지 함께 높아지는 방식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품업체들은 회사의 요구에 따라 단가 절감에 맞추다 보니 R&D에 투자는 못하고 완성차 업체가 요구하는 품질보증 기간까지만 버티도록 부품을 만들자는 입장이 됐다”며 “독일 벤츠나 영국 롤스로이스에서 볼 수 있듯 명차는 명부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노조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노동계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프랑스도 산별 노조 시스템에서 운영의 묘를 발휘하려 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산별 노조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노동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50인 미만의 중소기업에서 사용자가 산별 노조를 거치지 않고 개별 사업장 노조와 노동시간, 추가 수당 등 각종 근로조건을 협상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기업의 자율권을 확대한다는 것이 골자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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