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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기려면

중앙선데이 2017.09.24 01:00 550호 34면 지면보기
Outlook
클레오파트라 7세는 이집트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다. 미인의 대명사가 된 이 비운의 여왕은 부왕이 세상을 떠난 뒤 남동생과 같이 왕위에 올랐으나 금세 서로 다투었고, 권력 싸움에 밀려 이집트 밖으로 쫓겨났다. 기원전 48년, 그녀의 나이 스무 살 때의 일이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던 한 여성이 다시 이집트의 여왕으로 복귀하고, 세계사의 한 획을 장식한 영웅적 인물로 기억되는 것은 뛰어난 책략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당대 로마의 지배자 카이사르를 사로잡았다.  
 

북핵·사드, 길 멀고 날 어두운 형국
유능제강의 지혜와 책략 꼭 필요
클레오파트라·스위스·베트남 등
난국 타개 역사 속에 답이 있어
지도자는 국민 단합부터 이끌어야

카이사르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다음에는 안토니우스와 사랑에 빠졌다. 이 사랑은 결국 안토니우스를 파멸하게 하고 이집트 왕조 또한 멸망하게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남자의 연인으로서 막강한 로마제국과 병행하여 한 시기의 자기 나라를 지켰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가진 불세출의 매력이 널리 알려진 것처럼 외모의 아름다움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세계사적 지위의 남자들이 그 치마폭에 굴복한 것은 끊임없는 독서와 사유를 통해 다진 지성과 재치로 인해서였고, 그녀는 국제 정세와 경제의 흐름을 읽는 명석한 눈으로 약소한 나라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감당했던 것이다.
 
힘이 강한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기로는 스위스 만 한 경우가 없다. 스위스의 영세중립주의는 19세기 초반에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주변 열강에 종속되지 않고 자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신질서를 위해 열린 빈회의에서 이 선택이 승인되면서 영세중립국 스위스가 탄생했다. 약자가 강자들과 국가의 명운을 걸고 거래한 외교적 승리였다. 스위스는 그런 다음에도 나라의 안위를 위한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 나라의 인구는 800만 명 정도인데 징병제를 실시하여 국민의 10%는 30년 동안 현역 아니면 예비역으로 복무한다.
 
스위스 국경의 다리와 터널은 언제든지 외부의 침입을 봉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강한 의지로 잘 훈련된 스위스 용병은 수많은 전쟁에서 명성을 떨쳤다. 지금도 바티칸의 경호를 스위스 위병 135명이 담당한다. 그런가 하면 나라가 핵 공격을 당할 때 전 국민이 대피하는 데 충분한 핵 대피소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핵 대피소인 소넨베르크 터널도 스위스의 것이다. 누란의 위기를 겪어 본 국가의 국민들이 얼마나 처절한 경각심을 가졌으며, 얼마나 지혜롭게 이를 풀어 나갔는가를 모범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지정학적 환경이 유사한 우리에게는 참으로 본받을 만한 타산지석이다.
 
베트남은 한국과 오랜 은원을 가진 나라다. 베트남 또한 우리 못지않게 비극적인 역사 과정을 거쳐 왔다. 60년간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미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했던 베트남 전쟁을 겪었으며 지금도 인접한 중국으로부터 끊임없이 국경과 해상의 위협을 받고 있다. 베트남은 국력이 약한 나라이지만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 세력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 낸 전력을 가졌다. 이 나라의 국민이 자유와 독립에 대해 유난히 높은 자긍심을 보이는 이유다. 1946년 호치민은 프랑스와의 충돌에서 겨우 34명의 공식 군대에 민병대를 더하여 50만 대군에 맞섰다. 지금껏 남중국해를 덮고 있는 패권다툼에서도 베트남은 전쟁을 불사하면서 조금도 중국에 밀리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베트남의 경우는 국가의 위신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결코 힘의 우위나 전략적 계산만으로 수행될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더 근본적인 것은 온 국민이 마음을 한데 모아 극복해 나가겠다는 정신력의 승리다. 스위스가 보여 준 외교적 집중력과 치열한 대비태세는 우리가 학습해야 할 항목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이 가진 모든 장점을 활용하여 침략과 부도의 위험에 처한 나라를 지혜롭게 방어한 역사도 참고해야 한다. 대국(Great Nation)은 없고 강국(Strong Nation)만 있는 시대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북한 핵이나 사드 문제 외에도 많은 부문에서 여정은 멀고 날은 어두운 형국이다. 역사 속에 답이 있다. 우리가 약할 때, 그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이기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지혜와 책략과 결기가 필요하다. 이 엄중한 위기의 시대에 나라의 지도자들은 가장 먼저 국민적 단합을 이끌어야 옳다. 그 역할을 맡은 정부는 대국(大局)의 전환을 위해 정권적 정파적 욕심을 내려놓고 모든 정치세력과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야권 또한 마찬가지다. 천하에 물보다 약한 것은 없으나 굳고 강한 것을 이기는 데는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 노자의 ‘도덕경’ 78장에 있는 말이다.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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