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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22) “가다가 아니 가면 안 간 만큼 이득이다~”

중앙일보 2017.09.22 11:00
거창 우두산. 바위를 기다시피 오르다 보면 더 가고 싶지 않은 가파른 돌벽을 만나 고민한다. 어떤 날은 오르고, 어떤 날은 돌아선다. 오르면 기분 좋고, 돌아서면 개운하다. [사진 조민호]

거창 우두산. 바위를 기다시피 오르다 보면 더 가고 싶지 않은 가파른 돌벽을 만나 고민한다. 어떤 날은 오르고, 어떤 날은 돌아선다. 오르면 기분 좋고, 돌아서면 개운하다. [사진 조민호]

 
광고하겠다는 아들을 아버지는 내내 못마땅해하셨다. 대학 시절, 혹시라도 아버지 말씀이 옳을지 몰라 원하시는 대로 공인회계사 공부를 1년쯤 했다. 같이 준비한 친구는 합격하고, 나는 떨어졌다. 더는 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만든, 내 부족한 인내심을 합리화할 때마다 촌철의 기지를 발휘해주던 말이 이거다. ‘가다가 아니 가면 안 간만큼 이득이다!’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다’라고,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라는 얘기 아닌가? 갈 데까지 갔는데 애초의 결정이 잘못 된 결정이었으면? 정상에 올랐는데, 이 산이 아닌가벼~ 하면 어쩌란 말인가? 인생이 걸린 도전인데 옆에서 툭 한 마디 거들기엔 너무 무책임한 말이지 않은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길, 열릴지 어쩔지도 모르는 길을 계속 두드리다 결국 포기하게 되면 그 젊고 새파란 세월의 값이 도대체 얼마인가? 그러니 가지 않은 만큼 이득이라는 말이다.
 
간 만큼 손해일 수도 있지만 가지 않은 이득이 더 크다고 나는 우겼고, 결국 내가 옳았다. 이제는 마감한 내 평생의 업이 세월이 지나고 보니 아버지가 바랬던 그 길보다 못할 것이 없더라는 얘기다.
 
 
이 길이든 저 길이든 내가 선택한 길이면 된다. 함양에 있는 상림(上林)을 가끔 걷는다. 어떤 날은 이 길로, 어떤 날은 저 길로. 이 길은 밝고 훤해서 좋고, 저 길은 바람이 많아 좋다. [사진 조민호]

이 길이든 저 길이든 내가 선택한 길이면 된다. 함양에 있는 상림(上林)을 가끔 걷는다. 어떤 날은 이 길로, 어떤 날은 저 길로. 이 길은 밝고 훤해서 좋고, 저 길은 바람이 많아 좋다. [사진 조민호]

 
살다 보면 시작은 하지만 끝을 보지 못하는 일이 많다. 또는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자고 자신을 채근하고 있을 때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자신의 부족한 인내심을 책망한다. 후자의 경우엔 실패가 가져다 줄 낭패의 삶을 탓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내 삶인데 왜 나를 탓할까? 
 
가다가 포기했으면 가지 않은 이익을 생각하며 “잘 포기했어~”라고 할 일이고, 다 갔는데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없었다면 간 만큼의 이익을 생각하며 “그동안 수고했어~”라고 할 일이다. 자신을 탓해봐야 남는 게 없다. 억지의 논리라도 가져다 지금의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게 남는 장사다.
 
 
공시생 작파한 둘째 딸에게 박수 
 
공직 생활을 하고 있는 큰 딸을 따라 공무원이 되겠다고 고난의 공시생을 자처한 둘째 딸이 있다. 내가 권한 길이 아니라 자기가 원했던 길이니 응원만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여기 거창까지 둘째가 공부를 작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들인 책값이 얼만데, 수강료는 어쩌고, 무엇보다 딸 공부한다고 큰 소리도 안 내고 눈치 보던 일이 억울해서 집사람은 나한테 무슨 말이든 좀 하란다. 타이르든 야단을 치든 가다가 아니 가지 않도록 시골에만 쳐박혀 있지 말고 집으로 와서 말 좀 하란다. 그래? 말을 하라고 하니 해야지~
 
“가다가 아니 가면 안 간만큼 이득이다, 혜민아~” 둘째 딸 얼굴이 장군봉 위에 솟은 아침해처럼 밝아졌다.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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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필진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 퇴직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이 없는 도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이러다 죽는 날 아침에 “뭐 이렇게 빨라, 인생이?” 할 것 같았다. 경남 거창 보해산 자락, 친구가 마련해준 거처에 ‘포월침두’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평생 처음 겪는 혼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달을 품고(抱月) 북두칠성을 베고 자는(枕斗) 목가적 생활을 꿈꿨지만 다 떨쳐 버리지 못하고 데려온 도시의 취향과 입맛으로 인해 생활은 불편하고 먹거리는 가난했다. 몸을 쓰고, 글을 쓰자. 평생 머리만 쓰고 물건 파는 글을 썼으니 적게 먹어 맑은 정신으로 쓰고 싶은 글, 몸으로 쓰는 글을 쓰자, 했다. 올 3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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