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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따로" 전국 사립예술고 음악·미술·무용과 내신 갈등

중앙일보 2017.09.20 11:44
삽화=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삽화=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교육부 공문대로 국어·영어·수학 내신을 미술·음악·무용과를 다 합쳐서 내자"(미술학과 학부모들)

"교육부 공문대로 하면 우리 애 내신이 나빠진다. 종전대로 학과별로 따로 내자"(음악·무용학과 학부모들) 

 
서울의 한 사립 예술고의 A교장은 학부모들의 상반된 민원에 최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술·음악·무용학과 학생들이 국어·영어·수학 등 학과에 관계없이 공통으로 배우는 과목의 내신 산출 방식에 대한 요구가 엇갈려서다. 학부모들의 상반된 요구에 학교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전국 사립 예술고들이 모두 직면한 상황이다.  

교육부 "국·영·수 내신, 통합산출 하라" 공문
미술 학부모 "같이 내자", 음악 "예전대로" 대립
미술은 대입서 내신 비중 커 국·영·수에 더 집중

통합산출시 미술 "내신 좋아져", 음악 '"나빠져"
학교마다 내신 제각각 "학교 따라 유불리 갈려"

일부 학교, 내신 따로 내기 위해 수업시간 변경
"기준 통일하거나 미래 입학생부터 적용해야"

 
학부모 갈등의 계기는 교육부가 지난 4월 각 시·도 교육청을 통해 보내온 한 장의 공문이다. 내용인즉슨 “같은 학기에 동일 이수단위(주당 시간)로 수업한 과목은 수강생 전체를 대상으로 석차는 내는 '통합 산출'을 하라”는 것이었다. 
 
예술고는 미술·음악·무용과 등 학과별로 신입생을 뽑고 있다. 학과별로 제각각 배우는 과목이 아니라 공통으로 배우는 과목도 학과별로 각각 내신을 산출해왔다. 전공에 따라 대학 입시에서도 내신 비중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던 차에 교육부·교육청으로부터 "현재처럼 학과별로 내신을 따로 산출하지 말고 전교생을 합쳐 석차를 내야 한다”는 공문이 온 것이다.  
  
가령 미술·음악·무용과 학생들이 국어를 주당 4시간씩 똑같이 배우고 있다면 국어 내신은 학과를 구분하지 말고 전교생을 함께 묶어 석차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교과서로 같은 내용을 같은 시간 배우니 내신을 따로 낼 이유가 없다"는 게 교육부 논리다. 교육부 교수학습평가지원팀 정상명 연구사는 “일반고들은 모두 이렇게 하고 있다. 외국어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와 일부 예술고 역시 내신을 통합산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설명대로 일부 사립 예술고는 지금까지 학과별로 내신을 따로 산출해왔다. 시험 문제도 학과별로 따로 출제했다. 그러나 이 같은 관행은 교육부 훈령인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및 관리 지침’에 어긋난다. 정 연구사는 “수업 분량이 같다면 시험도 동일하게 치러야 한다. 일부 예술고가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 문제다. 규정을 따르지 않은 예술고에게 관련 규정을 준수할 것을 재공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교가 공문대로 하려 하자 학과별 학부모 사이에서 입장이 엇갈렸다. 미술과 학부모들은 "교육부 방침대로 통합산출하자", 음악·무용과 학부모는 "종전대로 학과별로 계속 내신을 따로 내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미술과 학부모는 통합산출이, 음악·무용과는 분리산출이 자녀의 대입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A교장은 “학교가 어느 한 쪽 학부모 편을 들기 어렵다. 학부모 사이 입장이 달라 학교로선 아주 난감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사립예술고 미술과 학부모들이 이달 초 학교 측과 가진 간담회 장면. 미술과 학부모들은 "같은 내용, 같은 진도로 배우는데 학과별로 내신을 따로 산출할 이유가 없다"며 "교육부 방침대로 통합산출 방식으로 내신 석차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학부모]

서울의 한 사립예술고 미술과 학부모들이 이달 초 학교 측과 가진 간담회 장면. 미술과 학부모들은 "같은 내용, 같은 진도로 배우는데 학과별로 내신을 따로 산출할 이유가 없다"며 "교육부 방침대로 통합산출 방식으로 내신 석차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학부모]

음악·무용과 학부모들은 "내신을 분리산출을 해온 예술고에서 통합산출을 하면 미술과 학생들만 유리해진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예술고 음악과에 1학년 자녀를 보내는 이모(47·서울 서초구)씨는 “통합산출로 바뀐 예술고들 얘기를 들어보니 미술과 학생들은 내신 평균 등급이 2~3등급 올라가고  음악·무용과는 그만큼 떨어졌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학과별로 내신에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현행 대학 입시의 영향이다. 대입에서 미술 계열학과는 내신 비중이 높다. 반면에 음악·무용학과는 내신보다는 실기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 한 대형입시학원 관계자는 “미대가 인기인 홍익대는 실기시험 없이 학생을 뽑는다. 디자인과는 내신이 1등급대여야 하고 다른 학과도 2등급은 돼야 붙을 정도로 미술 계열 학과는 내신 비중이 높다. 반면 음악·무용학과는 내신 반영 비율이 대학별로 20%안팎으로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미술학과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 공부에 더욱 집중해왔다. 서울 한 사립 예술고 B 교장은 “음악·무용학과는 내신보다 실기가 더 중요해 고교에서 주요 교과목 공부에는 적극 매달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미술과 학생들은 내신이 중요해 주요 교과목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B 교장은 “이런 상태에서 통합산출을 하면 미술과 학생들이 내신 상위권을 죄다 차지하고 음악·무용과 학생들은 내신 등급이 떨어져 불리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술과 학부모들은 교육부 방침대로 통합산출을, 음악·무용과 학부모들은 분리산출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음악·무용학과 학부모들의 입김이 센 일부 학교는 종전대로 분리 산출을 하기 위해 주요 과목별 수업 시간을 학과 간에 서로 차이가 나게 하는 '꼼수'를 동원했다. 주당 국어 수업을 미술과는 4시간, 음악과는 3시간, 무용과는 2시간을 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학과마다 수업 시간과 분량이 달라져, ‘같은 학기, 동일 수업시간 과목은 통합산출’이라는 규정을 피해갈 수 있다.
서울의 한 사립 예술고가 지난달 학부모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 교육청 지침에 따라 내신 산출 방법을 변경한다는 내용이다. 이 학교는 일부 과목에서 미술, 음악, 무용과 각 학과별로 수업시간을 조정해 '분리산출' 방식을 유지하겠다고 학부모에게 안내했다. [사진 학부모]

서울의 한 사립 예술고가 지난달 학부모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 교육청 지침에 따라 내신 산출 방법을 변경한다는 내용이다. 이 학교는 일부 과목에서 미술, 음악, 무용과 각 학과별로 수업시간을 조정해 '분리산출' 방식을 유지하겠다고 학부모에게 안내했다. [사진 학부모]

통합산출과 분리산출을 섞는 학교도 나왔다. 인천의 한 예술고는 국어·영어는 분리산출을, 수학은 통합산출을 하는 식으로 변경했다. 이런 학교들이 나오자 '같은 학교 내 학과별 유·불리' 논란이 '동일 학과 내 학교별 유·불리'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서울의 한 사립 예술고 미술과 1학년 자녀를 둔 김모(45·서울 마포구)씨는 “우리 애 학교는 여전히 학과별로 내신을 따로 낸다. 그러면 통합산출을 하는 다른 학교 미술과 학생들에 비해 우리 애 내신이 불리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입장이 엇갈린 학부모들은 “이럴 바에야 교육부가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주면 좋겠다”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김씨는 “전국 모든 예술고가 일괄적으로 통합산출을 하든, 아니면 유예 기간을 두고 새로 입학하는 학생부터 적용을 하든 통일된 기준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 사립 예술고의 한 교장도 “재학생은 입학 당시 안내 받은 대로 내신을 내고, 내년 신입생부터는 통합산출을 적용한다면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정현진·이태윤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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