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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마저 우아하고 기품 있게 담아내다

중앙일보 2017.09.20 07:30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제임스 그레이(48) 감독에게 따라 붙는 흔한 수식은 ‘고전적인 영화를 찍는 현대 감독’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전’의 의미는 내용과 형식 모두다. ‘더 야드’(2000) ‘위 오운 더 나잇’(2007) ‘투 러버스’‘이민자’까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네 편의 장편부터 보자.

칸국제영화제가 4번 초청한
미국 감독 제임스 그레이
그가 맡은 첫 어드벤처영화
'잃어버린 도시 Z'

 
그가 다루는 이야기는 매번 멜로드라마(‘이민자’‘투 러버스’) 갱스터무비(‘더 야드’‘위 오운 더 나잇’) 등 장르를 경유해 원천적인 비극적 서사에 도착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등 수천 년을 통과해온 고전이 언제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기도 힘든 인물을 그렸던 것처럼.
 
‘이민자’의 주인공은 제1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본국을 떠나 미국에 온 폴란드 여성 에바(마리옹 코티아르)다. 두 남자와 삼각관계에 빠진 그녀의 이야기는 통속적인 멜로로 흘러가는 듯하나, 결국 인간답게 살아갈 조건과 그것이 좌절된 비극적 운명을 말한다.
 
‘위 오운 더 나잇’ 역시 잘나가는 클럽 지배인 바비(호아킨 피닉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상투적인 범죄물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바비가 가족과 이민자 사회에서 겪는 복잡한 관계, 그로 인해 사면초가의 역설적 상황에 치닫는 과정을 그린다. 이러한 서사에서 인물을 곤경에 빠뜨리고, 선택을 강요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혈연, 즉 가족이다.
 
'위 오운 더 나잇' 현장

'위 오운 더 나잇' 현장

더러는 ‘이민자’ ‘위 오운 더 나잇’처럼 사회적 소수자라 할 만한 이민자라는 가혹한 설정이 더 붙기도 한다. 안정적인 여성과 불안한 여성 둘을 동시에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 ‘투 러버스’에서도 가족의 의미는 비슷하다. 레너드(호아킨 피닉스)의 가족이 바라는 짝은 가정적인 산드라(비네사 쇼)다. 하지만 레너드는 그녀에게 안정감과 속박당하는 느낌을 동시에 받는다.
 
러시아계 유대인이자 이민자 3세인 그레이 감독에게 가족은 이렇게 양가적이다. 아무리 노력한들 바꿀 수 없는 뿌리이며 개인의 삶에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 가족은 그의 영화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조건이자 원형적 비극이 선명히 드러나는 영역이다.
 
형식적인 면에선 고전미를 향한 그의 열망은 더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잃어버린 도시 Z’와 마찬가지로 전작 모두를 35㎜ 필름으로 찍었으며, 정직하고 간결해서 더없이 고전적으로 느껴지는 화면 구성을 선보였다. 고전주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영상은 그레이 감독의 작품을 하염없이 감상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잃어버린 도시 Z’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어드벤처영화라는 점에서다. 아쉽게도 칸국제영화제 진출엔 실패했지만, 호평이 잇따랐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작가적 색채는 흐려지지 않았다. 특출난 탐험가의 삶에서도 한 가정의 가장이자 군인이자 탐험가로서 겪는 모순과 갈등을 포착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셋의 마지막을 담은 장면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자세히 말할 수는 없으나, 그레이 감독이 상상한 포셋의 최후는 ‘안식’에 가깝다. 이러한 결말에 무릎을 쳤다. 어떤 선택을 해도 뒤따르는 결과와 그에 대한 책임을 쉽게 감당하지 못했던 그의 영화 속 인물들. 그건 ‘잃어버린 도시 Z’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그레이 감독이 포셋의 삶을 오랜 시간 뒤쫓으며 발견한 건 이상을 좇는 자가 짊어졌던 무거운 삶의 굴레였을 것이다. 영원한 안식이라는 위로. 그가 상상한 포셋의 마지막이 숭고하고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메인타이틀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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