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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양적 완화'에서 '양적 긴축' 시대로 …연금술사들, 가보지 않은 길에 또 들어서다.

중앙일보 2017.09.20 00:20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19~2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양적 완화 축소계획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 7월 의회 발언을 준비하고 있는 재닛 옐런 Fed 의장. [AP=연합뉴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19~2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양적 완화 축소계획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 7월 의회 발언을 준비하고 있는 재닛 옐런 Fed 의장. [AP=연합뉴스]

 [하현옥의 금융산책]
 Fed의 새로운 여정 
 
 각국 중앙은행이 또다시 미답의 길 위에 섰다. 사상 초유의 양적 완화(QEㆍquantitative easing) 실험을 끝내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20일(현지시간)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그 문을 열었다. 양적 긴축(QTㆍquantitative tightening)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기수를 돌리기 위해서다.
 
 2008년 세계 경제를 뒤흔든 금융위기의 격랑 속에서 키를 잡은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 완화정책과 각종 부양책을 동원해 난파선을 구해냈다. 물량 공세의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주요 45개국의 경제가 올해 성장의 궤도에 올랐다고 밝혔다.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는 모양새다.
 
 문제는 돈이 많이 풀리면 부작용도 만만찮다는 점이다. 물가 상승 등 경기 과열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세계경제호의 키를 정반대로 돌려야 한다. 이번에는 느슨하게 열어뒀던 돈줄을 죌 때가 된 것이다.
 
 19~20일(현지시간) 열린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Fed의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는 양적 긴축 방안을 결정했다.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나 주택담보부증권(MBS)에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중에 풀린 자금을 흡수하는 것이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은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점진적으로 보유 자산 축소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략 3개월마다 보유 자산 축소 규모를 늘릴 방침이다. 
 
 Fed가 보유 자산 축소에 들어가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Fed가 금융위기시대의 부양책을 던져 버리고 반대 방향으로 향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Fed는 양적 긴축의 구체적 스케줄도 공개했다.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양적 긴축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이다. 다음달부터 12월까지 매달 100억 달러 규모로 자산을 줄여가고 내년 1월부터 10월까지는 석달에 한 번씩 축소 규모를 늘릴 계획이라고 Fed는 밝혔다. 최종적으로 국채 한도는 매달 300억 달러, MBS는 200억 달러까지 줄어들게 된다.  
 
 현재 Fed의 자산 규모는 4조5000억 달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자산 규모가 9000억 달러 수준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19년까지 2년여 총 8000억 달러 내외의 자산 긴축이 진행돼 2019년 말 Fed의 자산 규모는 3조5000억~4조 달러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옐런 Fed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도 시사했다. 이날 공개한 점도표에서 Fed는 지난 6월과 마찬가지로 올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7일 "다음달 통화정책회의에서 통화완화 정책에 대한 조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포토]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7일 "다음달 통화정책회의에서 통화완화 정책에 대한 조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포토]

 
 Fed가 연 ‘양적 긴축’을 이어갈 다음 다음 주자는 ECB가 될 공산이 크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 7일 통화정책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양적 완화와 관련한 많은 결정이 아마도 10월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ECB는 최근 개선된 경제 상황을 반영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로 올려잡았다. 6월의 전망치(1.9%)보다 상향 조정한 것이다.
 
 영란은행도 양적 긴축의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한다. 영란은행은 14일 통화정책위원회(MPC) 회의 직후 향후 기준금리 인상 계획을 밝히는 등 긴축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금융위기 수습을 위해 시행해 온 주요 중앙은행의 통화완화정책이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란은행은 1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진은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 [중앙포토]

영란은행은 1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진은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 [중앙포토]

 ‘헬리콥터 벤’의 등장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중앙은행의 연금술을 세상에 널리 알린 계기였다. 소방수 역할을 맡은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은 금리를 제로수준으로 낮추는데 그치지 않고 대규모의 자산매입을 통해 경제 구하기에 나섰다. 2008년 이후 세 차례의 양적 완화를 실시하며 돈줄을 풀었다. ‘헬리콥터 벤’의 등장이었다.
 
 버냉키에게 이 별명이 붙게 된 것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Fed 이사이던 버냉키가 밀턴 프리드먼의 말을 인용해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태로 빠져들면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돈을 뿌리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12월 경제전문잡지인 ‘포브스’ 표지에 ‘빅 벤, 헬리콥터를 띄우다’라는 기사 제목이 실릴 정도였다.
 
세계금융위기 당시 양적완화를 실시하며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중앙포토]

세계금융위기 당시 양적완화를 실시하며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중앙포토]

 양적 완화는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의 채권을 사들이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다. 돈의 가격(금리)보다 돈의 양을 강조하는 정책이다. 금리가 제로 수준으로 떨어져 전통적인 통화 정책을 구사하기 어려울 때 쓰는 방법이다.
 
 버냉키 의장은 2012년 조지워싱턴대 강연에서 ”2008년 12월부터는 연방자금금리를 더 이상 인하할 수 없게 돼 전통적 통화정책을 쓸 수 없었다“면서 “회복을 지원할 뭔가 다른 조치가 필요했다”며 양적 완화를 동원한 이유를 밝혔다.
 
 사실 양적 완화를 가장 먼저 쓴 곳은 일본은행(BOJ)이다.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 경제가 회복하지 못한 채 비실대자 2000년대 들어 양적 완화를 실시했다.
 
 하지만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시장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Fed의 영향이 크다. Fed는 2009년 3월 시작된 1차 양적 완화로 1조7000억 달러를 시장에 풀었다. 2차 양적 완화는 2010년 11월에 실시돼 6000억 달러 규모로 진행됐다. 
 
2012년 9월부터는 매달 85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사들이는 3차 양적 완화를 실시했다. 이후 2014년 1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를 시작했다.
 
 각국 중앙은행도 Fed의 행보를 따랐다. 일본은행도 아베노믹스의 시행과 함께 무제한 양적 완화에 나서는 등 돈 보따리를 풀었다. 유럽재정위기에 직면한 ECB도 2014년부터 대규모 채권 매입에 나섰다.
아베노믹스가 시행되면서 일본은행은 2012년부터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중앙포토]

아베노믹스가 시행되면서 일본은행은 2012년부터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중앙포토]

 
 그 결과 각국 중앙은행의 자산 규모는 큰 폭으로 부풀어 올랐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008년 9000억 달러에 불과하던 Fed의 보유자산은 4조500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CB의 총 자산 규모는 4조9000억 달러에 이른다. 일본은행의 자산도 4조530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새로운 긴축 발작 겪을까  
 
 Fed가 돈 보따리를 싸기 시작하고 ECB와 영란은행 등도 양적 긴축 모드에 돌입할 태세를 보이면서 유동성 파티도 이제 끝을 향해 다가가는 듯한 모습이다. 시장은 일단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뉴욕타임스(NYT)는 “Fed의 양적 긴축이 돈을 빌리는 비용을 끌어올릴 수도 있지만 시장은 당분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는 모습”이라고 보도했다. Fed가 자산 축소에 나서면 시중에 풀린 통화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실상 장기 금리는 오르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Fed가 밝힌 대로 양적 긴축은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시장의 긴장감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WSJ에 따르면 유럽과 일본이 여전히 자산을 사들이는 영향도 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는 없다. 양적 축소라는 새로운 이벤트가 금융시장과 세계경제에 가져올 불확실성 때문이다. 이미 경험도 있다. 2013년 버냉키 Fed 의장이 테이퍼링을 시사하자 신흥국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등 세계금융시장이 요동친 ‘긴축 발작(Taper Tantrum)’이다.
 
 일본은행(BOJ)의 실험도 양적 축소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소재용 하나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2006년 3월~7월 대차대조표 축소를 실험했던 일본은행의 경우 금리 급등과 엔화 강세, 주가 하락이라는 결과를 야기했던 만큼 시장이 경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료:미국 연방준비제도(Fed)·한국은행

자료:미국 연방준비제도(Fed)·한국은행

 
 매슈 조조프 JP모건체이스은행의 애널리스트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난 10년간 중앙은행이 1조 달러 규모의 MBS에서 손을 놓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며 “(양적 긴축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은 금리 인상 등 통화 완화정책이 축소되면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될 수 있고 세계 경제가 탈선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다른 시각도 있다. 스탠리 피셔 Fed 부의장은 지난 6월 미국 컬럼비아대 강연에서 "Fed가 4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보유자산의 축소를 시작해도 2013년과 같은 긴축발작이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긴축발작 당시와 같은 주요 금융시장의 동요에 직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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