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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 펜화 공방

카라얀이 조수미를 잡은 수법

중앙일보 2017.09.18 18:28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성에서 내려다본 프라하. 블타바(몰다우)강이 시내를 관통한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성에서 내려다본 프라하. 블타바(몰다우)강이 시내를 관통한다.

 
 
(2015년 봄 유럽에 출장갈 일이 있었다. 다녀오던 비행기 안에서 아이디어 하나가 불쑥 떠올랐고, 짧은 준비를 거쳐 중앙일보에 <비행산수>시리즈를 연재했다. 그림은 프라하다. 아래 글은 그때 편집기자협회보에 실은 글)    
 
 
카라얀이 조수미를 잡은 수법..........................................
 
비엔나를 안내한 가이드는 초절정 구라였다. 애 둘 딸린 동네 짜장면집 형이 한국에서 공군을 마치고 오스트리아에서 시민권을 얻었는데, 의무복무제도 때문에 다시 군에 가서 감자만 깎다가 제대했다는 사연, 한국에는 육해공군이 있는데 이 나라에는 육해강군이 있다는 얘기(강을 지킨다고 강군), 사위와 한 살 차이인 나폴레옹네 집안의 ‘개족보’ 이야기… 억양 센 경상도 사투리로 툭툭 던지는 말에 늙다리 아저씨들은 수시로 뒤집어졌다.
개그콘서트에 나와도 충분히 통할 야부리였다. 이 친구의 만담을 듣지 못한 2호 버스 탑승자들은 복도 없지. 동선이 맞지 않아 ‘강군’이 활약하는 다뉴브(도나우)는 보지 못했다. 
 
비엔나에서 잘츠부르크로 가는 길은 순탄하다. 왼쪽으로 눈을 뒤집어쓴 알프스가 웅장하고 오른쪽으로 그보다 낮은 산맥이 달린다. 바람은 산맥을 넘지 못하고 산맥과 산맥 사이로 난 고원을 서에서 동으로 관통한다. 나는 바람에 맞서 동에서 서로 달렸다. 눈, 진눈깨비, 가랑비, 소나기, 햇살… 한나절 달리는 동안 하늘은 수시로 변덕을 부렸다. 나는 일정 내내 달달 떨었다.
 
잘츠부르크는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여기서 뮌헨은 비엔나의 절반 거리다. 도시 곳곳이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무대다. 소싯적 줄리 앤드루스의 노래에 빠져 나는 지금도 영화수록 전곡을 담은 테이프를 차에 두고 있다. 도레미송 계단 장면을 찍은 미라벨 정원에서 길 하나 건너면 모차르트 아버지네 집이다. 그 옆이 물리학자 도플러네 집이다. 네이버한테 ‘도플러 효과’가 뭐에 쓰는 물건인지 물어봤다. 
 
[어떤 파동이 파동원과 관찰자의 상대 속도에 따라 진동수와 파장이 바뀌는 현상을 가리킨다. 소리와 같이 매개체를 통해 움직이는 파동에서는 관찰자와 파동원의 매개체에 대한 상대속도에 따라 효과가 변한다. 그러나 빛이나 특수상대성이론에서의 중력과 같이 매개체가 필요 없는 파동의 경우 관찰자와 파동원의 상대속도만이 도플러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뭔 소리인지 당최 알 수가 없는데 쉽게 말하면 이런 거란다.
 
[기차가 서로 다가올 때는 상대 기차의 기적소리가 크게 들리고, 서로 멀어질 때는 기적소리가 낮게 들리는 현상]
 
진즉에 이리 말할 것이지. 기사건 제목이건 쉬워야 하는 법이다. 온갖 아해햏한 말들을 동원해 뽀대나게 말하려고 애쓰는 자들은 그래서 뷁이다.
뭐 어쨌든 간에, 도플러네 집 건너편에는 카라얀네 집이 있다. 성질은 뭣 같지만 카라얀이 사람 보는 눈은 있어서 조수미가 이 할배 은덕을 크게 입었다. 조수미가 이탈리아 베르디 극장에서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맡아 노래하는 걸 듣고 영감이 자지러졌단다. 이를 계기로 2년 뒤에 둘은 함께 음반을 내고, 수미 언니는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공주님이 됐다. 할배가 언니 보고 ‘니 목소리는 말이데이 신이 내릿다 아이가’라며 매달렸다는 말도 있고 ‘처자는 100년에 한둘 나올까 말까허는 천생 카수여’라며 손가락 척 했다는 설도 있다. 
 
카라얀네 집 앞을 흐르는 잘자흐강 건너편에는 모차르트가 비엔나로 가기 전에 살았던 집이 있다. 동네 미관 관리는 치밀하다. 맥도날드집 간판도 벽에 붙은 쇠꼬챙이에 손바닥만한 M자 하나 달랑 붙여놓은 게 전부다. 한국의 우악스럽고 삐뚤빼뚤하고 울긋불긋한 간판이 멋지다고 일삼아 보러 오는 외국인들도 있다하니 뭐가 좋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세상을 들었다 놨다하던 멋쟁이들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이 동네의 명성은 세계로 퍼졌다. 충청북도 충주시 문화동 럭키아파트 옆에도 잘츠부르크음악학원이 있으니 말이다. 조상 잘 둔 덕에 인구 15만의 이 작은 도시가 먹고 사니, 나라면 사당을 세우고 공덕비도 지어 조석으로 따뜻한 밥을 올리겠다. 
 
세계를 휘젓고 있는 중국 자본의 힘은 여기도 예외가 아니어서 추리닝과 잠바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단체관광객들이 흔하고, 블록마다 상해루니 북경이니 하는 중국집이 하나씩은 있다. 내내 파란색 노스페이스를 걸치고 한국 아저씨임을 자동빵으로 티내고 다닌 나도 거기서 거기지만. 잘츠부르크 인근엔 볼프강 호수나 할슈타트처럼 찍으면 그림이 되는 절경이 깔렸다. 빙하가 빠져나간 자리 여기저기에 생긴 호수와 그 주변은 눈만 돌리면 어디나 이발소 달력에서 보던 풍경이다.
 
그런데 이 나라 웬만한 화장실은 어딜 가나 50센트를 달란다. 돈 많아봐야 소용없다. 동전 없으면 미친다. 노후를 보장받는 조건이지만 버는 돈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기에 정작 국민들은 쓸 현금이 없다니 그도 참 쩝쩝. 가이드가 국경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오스트리아를 뒤로 하는 줄도 몰랐을 테다. 경계에는 군인도 경찰도 세관도 어떤 표식도 없다.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가 서로 국경을 개방하는 날은 올까, 하는 재미없고 시답잖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생각을 3초간 하며 체코로 들어갔다. 체스키부데요비치는 버드와이저의 고향이다. 미국 사람들이 이 동네의 맥주기술을 업어가며 글로벌 맥주가 됐다. 체코 민주화 뒤 상표권을 놓고 양쪽이 대판 붙었는데, 미국도 브랜드 이름을 쓰면서 이 동네서 주정을 일정량 사가는 방법으로 끝을 봤단다.
 
 
체코의 하회마을인 체스키크롬노프를 들러 프라하로 갔다. 유럽의 도시들은 어디나 비슷한 구조다. 중앙에 성당과 관공서를 낀 광장이 있고, 거기서 길이 방사선으로 뻗어나간다. 성곽이 시가지를 에워싸고 있는데, 강이나 산이 담벼락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들 도시는 대개 알프스를 넘어 권역을 확대해나가던 로마군단의 전진기지였다. 내가 그린 위의 그림 제목은 <닐니리 프라하 산수>다. <니나노 산수>라고 부를까 하다가 살짝 격을 높여 그리 붙였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프라하성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어이 밀로시 제만, 밥은 묵은겨? 지나가다가 이렇게 말을 걸 수 있는 거리에 최고 권력자가 근무한다. 제만이 아저씨는 지금의 대통령인데, 44년생 잔나비띠이니 나한테는 삼촌벌이다. 성문 앞의 근위대원들은 관광객들과 농담을 따먹고, 짝다리도 짚고, 농땡이도 슬쩍슬쩍 피운단다. 군기가 거시기 하다는 얘긴데 뭐 어떤가,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건물들 지붕 색깔 덕에 하늘에서 보면 온통 붉다.
 
 
블타바(몰다우)강이 도심을 관통한다. 강은 북쪽으로 흘러 독일의 엘베강과 만난 뒤 함부르크를 거쳐 북해로 들어간다. 곡물을 싣고 다니는 배를 따라 올라온 갈매기들이 눌러앉아, 물 있는 데는 ‘강매기’가 쌨고 쌨다. 가만 보니 체코 아이들도 하얀 줄 두 개 그은 빨간 추리닝을 많이 입고 다닌다. 글로벌 패션을 나만 몰랐구나.
 
주차장, 차량 렌탈, 출발, 수하물 찾는 곳, 환승수속…. 프라하공항의 안내문엔 어디나 한글이 병기되어 있다. 오타 하나 없다. 많고 많은 외국어 중에 영어, 러시아어, 한국어 셋이 간택되었으니 이 나라가 보통 정성이 아니다. ‘프라하의 연인’ 덕분에 쏟아져 들어오는 한국관광객들 덕인가. 이 나라에서 엄청 큰 공장인 현대자동차나 어디서든 빵빵 터지는 kt 아이폰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뜬다는 소식을 듣고 신경 썼을 수도 있겠다. 뭐 아니면 말고. 신문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중늙은이들은 이제 수작도 시원찮다. 가지고 간 이슬이와 처음이 팩이 남았다. 
 
다시 돌아온 서울, 꽃은 흐드러졌지만 우울은 걷히지 않았다. 한해가 지났는데도 세월호 문제는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나라는 성완종의 죽음으로 다시 격랑에 휩쓸렸다. 
봄은 봄인데 나는 봄을 느낄 겨를이 없다.
 
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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