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달'
시골 청년 춘섭(최민식)은 고향 친구이자 죽마고우인 홍식(한석규)의 연락을 받고 상경한다. 취직시켜주겠다는 말에 전 재산 500만원을 들고 올라온 것. 춘섭은 서울에서의 삶과 성공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지만, 홍식은 그의 돈을 훔쳐 달아나 버린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던 서울이 이런 곳이란 말인가.
허나 홍식은 아직 덜 익은 어설픈 사기꾼이다. 순박하지만 끈질긴 춘섭에게 금세 꼬리가 잡히고 만다. 무릎까지 꿇고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비는 홍식. 착한 춘섭은 이걸 또 용서해준다. 어쩌겠어, 패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춘섭이 말한다. “이제부터 500만원 다 받을 때까지 너랑 먹고 자고 싸고 모든 걸 같이 할 거다.”
‘서울의 달’은 결코 간략한 줄거리로 요약할 수 없는 작품이다. 80부작이 넘는 대서사이기도 하지만 달동네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이웃집 군상들 각각이 조연이 아닌 ‘인생을 가진’ 캐릭터로서 사연을 품고 있다.

'서울의 달'
“보이즈 비 엠비셔스(Boys, be ambitious)”를 입에 달고 사는 홍식은 어떻게든 인생 한 방을 꿈꾼다. 춤 선생에게 사사받은 ‘경부선 스텝’(맞다! 그 유명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을 무기로 첫 작업에 돌입하는 홍식. 그러나 베테랑 꽃뱀을 만나 역으로 털려버리고 만다.
되는 일 없기는 춘섭도 마찬가지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홍식과 함께 춤도 배워 보고, 흥신소에서 알바도 뛰어 보지만 영 신통치가 않다. 심지어 좋아하는 영숙 마저 친구인 홍식을 흠모한다. 홍식도 싫지 않은 눈치다. 서울 참 거지 같다, 싶다.

'서울의 달'
가사를 곱씹어보면 왜 이 곡이 ‘서울의 달’의 메인 테마인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코믹한 터치가 많지만, ‘서울의 달’은 사실 무척 어두운 이야기다. 홍식은 약간의 주접을 거둬내면 누아르의 주인공 설정에 가까운데, 시청자들은 그가 악한임을 알면서도 응원하며 끝내 그의 성공을 바란다. 허나, 성공은 개뿔. 돈을 뜯어내려던 여자에게 “너란 인간한테 진심이란 게 있긴 하니?”라는 비아냥거림이나 듣던 홍식의 삶이 해피엔딩일 리 없다.
그는 원한을 산 또 다른 여자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받는다. 눈발 날리는 산동네 판자촌에서 싸늘히 죽어가는 홍식. ‘춤 선생님 가다마이도 한 벌 해드려야 하고, 장가 간 미술 선생 집들이도 가야하는데…. 춘섭이한테 갚을 돈도 많이 남았는데. 이젠 다 청산하고 영숙이랑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는데.’ “영숙아, 나 지쳤어.” 한마디를 남기고 홍식은 숨을 거둔다.

'서울의 달'
끝난 거야? 진짜? 이렇게 끝나도 되는 거야? 아홉 살짜리 꼬마였던 나의 기억 속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 정말 파격적인 최고의 엔딩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던 건지…. 당시 MBC 드라마국엔 주말마다 홍식이를 살려내라는 전화로 업무를 못 볼 지경이었다고 한다,

촬영 현장에서 / 사진=중앙포토
글=한준희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