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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Picture] 암기 중심 교육과 ‘건국 논란’

중앙일보 2017.09.16 02:42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환영논설위원

김환영논설위원

지나친 주입식 교육의 폐해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주입식 교육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새로 묻는 21세기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창의성 교육과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기계적 암기(rote memorization)’가 국내외에서 지탄받고 있다. 토론과 스킬 습득을 강조하는 ‘비(非)주입식 교육’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창의성 교육에도 암기가 밑바탕
암기·토론 사이 균형 찾기 필요
교실에서 건국 논란을 토론해야
민주주의·창의성 교육 실현 가능

찬찬히 살펴보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우선, 해방 후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토론식 수업이 가능했을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주입식 교육을 안 했다면 극소수 부유층·권력층만 교육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현대적 주입식 교육은 미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20세기 초 미국은 보다 많은 국민·대중을 교육하려고 주입식 교육 방식을 개발했다.
 
일방적인 두들겨 패기에 반발해 일각에서 암기의 가치·효용이 재조명되고 있다. 미래를 예단해 본다면, 암기와 토론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창의성 중심 교육이 대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암기의 반격이 가능했던 이유는 뭘까. 우선 구구단이라든가 주기율표, 수학 공식, 단어 같은 것들은 암기하고 있는 게 좋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다 나오지만, 문제는 속도다. 머릿속에서 바로바로 지식을 끄집어내는 게 경쟁력이 있다. ‘수학은 사실 암기 과목이다’라는 오래된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친암기론자(親暗記論者)’들에게 암기는 지식과 이해로 가는 징검다리다. 그들은 암기가 소위 ‘스킬·창의력 중심 교육’의 밑바탕이라고 주장한다. 백번 양보해도 ‘암기 중심 교육’이 나쁜 것이지 암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국사는 대표적 암기 과목으로 인식된다. 국사 또한 주입식 vs 비주입식 교육 논란의 무풍지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국사 교육에도 주입식·비주입식을 절충하고 종합한 교육 방법론이 대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는 앞으로 대한민국 건국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게 될까.
 
역사는 기억이다. 구구단을 외듯이 기원전 2333년(고조선 건국), 1897년(대한제국 선포), 1919년(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혹은 건국), 1945년(해방), 1948년(대한민국 정부 수립 혹은 건국)을 외우고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각 연도에 발생한 일들을 외운 다음에 교실에서 뜨거운 토론이 벌어질 것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주제로 말이다. 건국은 ‘시점’인가 ‘과정’인가. 고조선 건국을 중심으로 판단하면 대한민국 건국 논란이 무의미한 것은 아닌가. 대한민국 건국보다는 광복이 더 중요한 건 아닌가. 언젠가는 성취될 통일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삼아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분단 상태의 건국절 논란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승만·김구·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우리 역대 최고지도자들은 건국·정부 수립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으며 그 장단점은 무엇인가. 독립운동·산업화·민주화 세력이 각기 특정 연도를 건국 연도로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어떤 날짜를 어떤 이유에서 건국 기념일로 삼고 있는가. 개천절과 별도로 ‘대한민국 건국절’이 필요한가. 우리 국어사전에 개천절(開天節)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우리나라의 건국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국경일.”
 
건국 논란은 국부(國父),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논란을 파생시킨다. 토론식 수업에서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등장할 수 있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기원후 14), ‘르네상스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 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 같은 인물들에게 국부라는 칭호가 부여됐는데 우리나라에도 국부가 필요한가.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건국의 아버지들’을 설정한다면 이승만·김구 외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인물들은 누구인가.
 
주입식·암기식 교육에 익숙한 연륜 있는 세대 사람들은 이런 식의 토론식 교육에 상당한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건국을 1919년이면 1919년, 1948년이면 1948년이라고 정하는 게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차라리 기원전 2333년을 건국 연도로 삼고 논란을 종결시키자’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건국이 특정 ‘시점’이라기보다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골치 아프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암기 기반 토론이 교육의 대세가 될 것이다. 사람들 생각이 같다면 토론이 필요 없다. 다르니까 우리는 ‘토론 민주주의’를 한다.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 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 역사는 죽은 역사다. 토론을 위해서는 암기를 피할 수 없다.
 
김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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