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달의 예술 - 무용] 평창으로 간 안나 카레니나

중앙일보 2017.09.16 02:25 종합 31면 지면보기
장인주 무용평론가

장인주 무용평론가

요즘 국립발레단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준비로 분주하다. 발레단이 올림픽 준비를 한다니 의아할 수도 있지만, 올림픽 행사의 일부로 펼치는 문화올림픽 중 한 프로그램으로 신작 ‘안나 카레니나’를 올린다. 대회 기간인 2018년 2월 강릉 올림픽아트센터 공연에 앞서, ‘D-100’이 되는 11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첫선을 보인다.
 

우리의 창작 발레였다면 …

국립발레단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월 국립오페라단이 문화올림픽 참가작으로 창단 55년 만에 첫 야외 오페라를 기획하는 등 열의를 보여준 터라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공연까지 한 달여 남은 시점에 티켓이 50% 이상 판매되는 등 대중적인 관심도 이미 뜨겁기 때문이다. 더욱이 발레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정부의 예산이 20억원이나 배정됐다는 소식이 공연계의 화제가 되었으니 남은 시간이 결코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비련의 여주인공을 그린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 원작인 ‘안나 카레니나’는 서정적이고 드라마틱한 발레의 소재로 안성맞춤이기에 여러 편의 무용으로 만들어졌다. 세기의 발레리나 플리세츠카야를 비롯해 보리스 에이프만·존 뉴마이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들이 도전해 명작을 남겼다.
 
취리히발레단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푹의 안무 ‘안나 카레니나’는 고전과 현대 발레를 넘나드는동작이 압권이다. [사진 국립발레단]

취리히발레단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푹의 안무 ‘안나 카레니나’는 고전과 현대 발레를 넘나드는동작이 압권이다. [사진 국립발레단]

이번 국립발레단이 선택한 작품은 크리스티안 슈푹의 2014년 작이다. 간결한 무대와 우아한 의상,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섬세한 동작이 라흐마니노프·루토슬라프스키의 음악과 만나 여인의 슬픈 생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기차에 뛰어드는 장면 등은 영상으로 처리해 극적 효과를 높였고, 무엇보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연출 덕에 내러티브 발레의 진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을 위해 정부가 과감한 지원을 했다면 ‘안나 카레니나’가 최선의 선택이었는가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 세계인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작을 소개하는 데 이의는 없다. 비록 원작자가 러시아인일지라도, 또한 한국적 소재, 한국 안무가의 작품을 고집할 이유가 없기에 한국 발레의 위상을 알리고 세계적 수준의 예술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문화올림픽에 걸맞다.
 
그러나 만약 국립발레단이 한국 고유의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아니면 좀 더 일찍부터 신작을 준비할 수 있었다면 고가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우리의 것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아닐까. 다음에는 수년간의 기획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계적인 재정 지원을 기대해 본다.
 
장인주 무용평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