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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전 발사 감지하고도 “대북지원” 발사 뒤도 “대북지원”

중앙일보 2017.09.16 02:09 종합 3면 지면보기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로 하루 전 800만 달러(약 90억원)의 대북 현물 지원 계획을 발표했던 정부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정부가 ‘인도적 지원’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시도한 대북 접근에 북한이 미사일 도발로 뒤통수를 때린 격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은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뒤통수 맞아도 입장 여전한 정부
“역대 최강의 대북 제재 결의 채택
북 취약계층 인도적 지원 시급해져”

아베 "지원 시기 고려해 달라" 요구에
문 대통령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
시민들 “뺨 맞고 돈도 주나” 목소리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 이후인 15일 오후 5시37분부터 6시11분까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34분간 통화했다. 아베 총리는 통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가 북한에 800만 달러의 현물 지원 계획을 발표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에 문 대통령은 “이 문제는 유엔식량계획(WFP)과 유엔아동기구(UNICEF)가 북한의 영유아와 임산부에 대한 사업 지원을 요청해 와 검토하게 된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영유아와 임산부를 지원하는 것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뒤 “이 사안은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현재의 제반 상황 등을 종합 감안해 시기 등 관련 사항을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언젠가 그런 인도적 지원을 하게 돼도 현금이 아니라 반드시 현물이어야 하고, 그것이 영유아나 임산부 등 필요한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전달되는지 모니터링도 제대로 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박 대변인은 덧붙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대북 지원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지원 시기에 대한 고려를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전날 한·미 공조로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징후를 파악한 상태였다. 하지만 통일부는 대북 지원 계획을 그대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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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이유진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가 대북 인도 지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역대 결의 중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이 채택됐다”며 “이런 제재에 따른 북한 경제의 타격으로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예상된다”고 답했다. 유엔 제재로 북한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 가장 피해가 큰 영유아나 임산부 등 취약계층을 위해 대북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통일부는 ‘공동체기반조성국’을 폐지하고 ‘인도협력국’을 설치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도 13일 입법예고했다. 이명박 정부 때 폐지한 인도협력국을 8년 만에 부활한 것은 남북교류협력에 무게를 싣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인도적 대북 지원 입장 고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직장인 전창훈(28)씨는 “그동안 인도적 지원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대북 지원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회의적일 정도”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고모(29)씨도 “뺨 맞고 돈까지 내주는 꼴 아니냐”며 대북 지원에 반대할 뜻을 밝혔다. 이모(41)씨는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만 정부가 강하게 대응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자꾸 도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피로감을 보이는 반응도 있었다. 직장인 안모(31)씨는 “김정은의 도발이 너무 반복돼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게 이제 한국인들에게 일상처럼 무뎌지는 것 같아 더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규탄과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 하고, 미·중·일·북은 코리아를 패싱하려 하고, 평화를 위해 북한을 지원하면 북한은 그 돈으로 미사일 만들어 쏘고, 무한 반복 아니냐”고 반문했다.
 
허진·이현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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