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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0년 전 미라 27년째 연구하는 유럽 … 화장시킨 한국

중앙일보 2017.09.16 01:31 종합 10면 지면보기
국내에서 발견돼 최근 유전자 분석에서 사인(死因)이 동맥경화로 규명된 17세기 여성 미라(진성이낭)가 연구가 끝난 뒤 화장(火葬) 처리돼 세상에서 사라졌다. 미라 발굴 당시 함께 나온 옷과 유품만 보존 처리돼 박물관에 보관됐다.
 

‘시대의 타임캡슐’ 너무 다른 취급
이탈리아, 빙하서 찾은 아이스맨
구강 복원해 목소리까지 살려내

동맥경화 17세기 조선 여성 미라
별도 보관 않고 관행 따라 불태워
전문가 “식습관·질병 고증가치 높아”

진성이낭 미라의 사인을 분석한 신동훈 서울대 의대 고병리과 연구실 교수는 15일 “연구가 끝나고 나면 미라를 발굴한 고고학팀에 돌려준다”며 “관행에 따라 화장하고 별도로 미라를 보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개골 3차원 영상 등으로 복원된 5300년 전 미라아이스맨 ‘외치’의 모습. [사진 남티롤고고학박물관]

두개골 3차원 영상 등으로 복원된 5300년 전 미라아이스맨 ‘외치’의 모습. [사진 남티롤고고학박물관]

미라는 발굴 당시 생활상을 소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이른바 ‘타임캡슐’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미라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리가 사실상 전무하다. 발굴·연구·사후 관리를 총괄하는 정부 기관이나 연구소가 따로 없다.
 
정민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 연구원은 “미라를 유족이나 연구소에서 인수해가면 이후 행방을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까지 몇 구의 미라가 발굴·연구됐는지 통계조차 없다.
 
그나마 몇몇 연구자가 개인적으로 미라를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김한겸 고대구로병원 병리과 교수는 미라 8구를 병원 부검실 냉동고에 보관하고 있다. 김 교수는 2002년 발굴된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를 부검해 윤씨가 아이를 낳다가 자궁 파열로 사망한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파평 윤씨 모자 미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임신 상태에서 발견된 미라다. 김 교수는 “한국에선 미라가 발굴되면 옷과 부장품은 중히 여기지만 정작 미라를 보존하는 곳이 없다. 3년 후 내가 정년퇴직을 하면 우리 병원에 있는 미라 8구도 아마 다 화장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국내와 달리 외국은 상당히 체계적으로 미라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 후난성 창사시에는 1971년 마왕퇴 동산에서 발견된 ‘마왕퇴 미라’ 보존 박물관이 있다.
 
유럽은 한발 더 앞서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탈리아의 5300년 된 미라, 일명 아이스맨 ‘외치’(Otzi)다. 1991년 알프스 산맥 빙하에서 발견됐다. 이탈리아 볼차노에는 이 외치를 연구하는 ‘유럽아카데미 미라 및 아이스맨 연구소(Eurac)’가 있다. 첨단 분석 기술이 나올 때마다 외치에 대해 새로운 정보를 밝혀내 그 결과를 발표한다.
 
지난해 1월 연구팀은 외치의 장내 유전자를 분석해 현대인의 절반 이상이 갖고 있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을 발견했다. 헬리코박터균은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보인다. 외치는 아프리카보다는 아시아에서 주로 발견되는 균을 갖고 있었다. 반면 현생 유럽인의 헬리코박터균은 아프리카형과 아시아형이 섞인 형태다. 이는 외치가 살았던 5300년 전에는 아프리카의 인류가 유럽으로 활발하게 이동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2007년 연구에서는 외치가 ‘동맥 손상에 따른 과다 출혈’로 사망했음이 밝혀졌다. 2013년에는 외치의 뇌 조직에서 추출한 단백질과 혈액 세포를 조사해 외치가 머리에 타박상을 입어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 지난해에는 외치의 구강 모형에 특수 소프트웨어 기술을 적용해 외치의 목소리도 복원했다. 외치를 전시 중인 볼차노시 박물관은 관광 명소다.
 
미국 일리노이대 미라 프로젝트는 이집트 미라를 중심으로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 간 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라의 성별·나이·복식·영양학적 분석 등 다양한 연구를 한다.
 
신동훈 교수는 “미라는 특히 질병 역사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과거에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 현대 의학으로 밝힐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한겸 교수는 “한국에서 나오는 미라는 이집트 미라와 달리 장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생존 시기의 식습관·질병을 고증할 수 있는 등 연구 가치가 높다”며 “미라 연구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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