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이 베스트] 미국판 ‘개·용·남’ 절망 탈출 보고서

중앙일보 2017.09.16 01:00 종합 26면 지면보기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8월 출간된 신간 중 세 권의 책을 ‘마이 베스트’로 선정했습니다.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판매 부수 등을 두루 고려해 뽑은 ‘이달의 추천 도서’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빛이 안 보이는 백인 빈민촌 출신
환경이 학습 시킨 무기력 떨치고
예일대 로스쿨 나와 인생 반전
김훈 “내부자 감성으로 가난 이해”

힐빌리의 노래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흐름출판
 
『힐빌리의 노래』는 소설처럼 읽히는 자서전이다. ‘통계와 싸워 이긴’ 빛나는 승리 이야기다.
 
지은이 밴스는 미국 최고의 자타 인정 로스쿨인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러나 그는 ‘두메산골 촌뜨기’를 뜻하는 힐빌리(hillbilly) 출신이다.
 
힐빌리는 우리 국어사전에도 나오는 단어다. “미국 중서부의 시골에서 부르는, 향토색이 풍부한 민요. 또는 그런 식으로 부르는 대중 음악. 멜로디와 가사가 모두 소박하다.” 유튜브에서 힐빌리를 찾아보면 경쾌함 속에 깊은 슬픔이 담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해 지은이의 슬픔에 공감하는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이 책을 추천했다. 소설가 김훈의 추천사는 다음과 같다. “내부자의 감성으로 가난을 이해하고 내부자의 언어로 그 가난의 내용을 전한다.”
 
밴스의 어릴적 장래 희망은 ‘강아지와 놀아주는 전문가’였다. 시종일관 문제아였다. 다른 많은 힐빌리 출신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중퇴자가 될 뻔했다. 이제는 희미해진 아메리칸 드림의 현장에서 그는 태어나고 자랐다. 대표적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속하는 오하이오 철강 도시에서였다. 미국 속 ‘제3세계’와 같은 곳이다.
 
지은이는 이런 말들로 그의 10대를 회고한다. “내가 사랑하는 몇몇 사람이 구해주기 전까지 나는 시궁창 같은 삶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었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 “나는 그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밴슨은 미국판 ‘개천에서 난 용’이다. 책도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인기가 좋다. [사진 흐름출판]

밴슨은 미국판 ‘개천에서 난 용’이다. 책도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인기가 좋다. [사진 흐름출판]

 
그의 집안은 폭력이 난무했다. 한번인가는 할매(원문에서는 mamaw)가 “한 번만 더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오면 죽여버리겠다”고 할배(papaw)에게 경고했다. 경고를 무시하자 휘발유를 할배의 온몸에 부은 적도 있다. 밴스와 같은 힐빌리는 백인 노동 계층 출신이다. 그들은 미국의 여러 종족 집단 중에서 가장 염세적이다. 히스패닉과 흑인이 오히려 미래를 더 밝게 본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선 백인 노동 빈곤층의 기대 수명만 줄고 있다.
 
반전을 잉태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둠의 심연 속에서도 소중한 배움이 있었다. 할매는 의리가 소중한 가치라는 것, 배신이 가장 나쁘다는 것을 가르쳤다. 할매는 또 틈만 나면 “네가 하고 싶은 일이면 뭐든 할 수 있단다” “신(神)은 모든 계획을 가지고 있으므로 결코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할매는 싸움의 기술 세 가지도 일러줬다. 그 중 하나는 “주먹에 온 힘을, 그중에서도 특히 ‘엉덩이에 힘을 실어 가격하라’는 것”이었다. 노동자였던 할배는 “네 세대에는 손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혜안 있는 어른이었다.
 
약물중독자인 어머니는 몇 개월마다 남자 친구를 갈아치웠지만, 교육의 중요성을 믿는 분이었다. 밴스가 글자를 깨치기도 전에 도서관에 데려가 도서 대출카드를 만들어줬다. 덕분에 밴스는 학교 성적은 형편 없었지만 책읽기를 좋아했다.
 
밴스는 열여덟 살 때까지는 “세상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를 입대하고 나서 세계관이 바뀌었다. 군대에서 밴스는 자신이 ‘주위 환경이 학습시킨 무기력’ 때문에 자신의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착각했다는 것, 스스로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충만한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그 결과의 하나로 어쩌면 이 책이 독자 여러분의 손에 들릴지도 모르겠다.
 
김환영 논설위원 whanyu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