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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되풀이되는 '공공기관장 흑역사'

중앙일보 2017.09.10 17:44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공기업 사장들이 잇따라 사정기관의 타깃이 되고 있다.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와 검찰·감사원 등 사정 기관의 칼날과 맞물려 공공기관장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10일 “검찰 수사가 임박한 공기업 또는 준공기업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후 공기업 사장 물갈이 '본격화'
박근혜, 이명박 정부서도 '낙하산 인사' 논란
"전문성 중시 기관장, 무리한 '물갈이' 자제해야"

청주지검은 지난 8일 박기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을 구속했다. 그는 2013~2014년 공사 관련 업체들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업무방해)를 받고 있다. 지난 7월 24일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수리되지 않았다.
 
공공기관장들에 대한 감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 5일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 정용빈 한국디자인진흥원장, 백창현 대한석탄공사 사장, 우예종 부산항만공사 사장 등 4명의 채용 관련 비위 행위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정하황 한국서부발전 사장의 사장 공모 당시 면접 점수가 조작됐다는 감사결과도 발표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필요할 경우 검찰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1기 인선’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7월 이후엔 자진 사퇴한 공공기관장들이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승훈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지난 7월 20일 임기를 10개월 여 남기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친박근혜계로 3선 국회의원 출신인 김학송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지난 7월 7일, 역시 친박계로 분류되는 홍순만 코레일 사장은 7월 28일 자진 사퇴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내 332개의 공공기관(공기업 35개, 준정부기관 89개, 기타공공기관 208개) 수장들의 ‘물갈이’ 잔혹사는 역대 정권에서 반복됐다. 새 공공기관장들에겐 ‘정권 철학에 맞는 인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보은인사’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도 함께 붙었다. 이 과정에서 ‘보은인사→공기업 부실화→물갈이’로 이어지는 공기업의 ‘흑역사’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선 포스코, KT&G에 대한 ‘하명수사’ 논란이 일었다. 민영기업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과거 공기업의 ‘그늘’이 걷히지 않은 곳들이다. 배임 혐의로 기소된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1,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고,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된 민영진 전 KT&G 사장은 지난 6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무리한 수사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장석효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4대강 비리 의혹’ 수사과정에서 금품 수수의혹으로 2013년 9월 4일 구속됐지만 1,2심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조계륭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은 2013년 10월 임기를 1년 반 가량 앞두고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이듬해 가전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초인 2008년엔 공기업 비리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 수사가 이뤄졌다. 33개 공공기관에서 250명이 기소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원창 당시 석탄공사 사장은 같은해 건설사 특혜 지원 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된 뒤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사표는 수리됐다.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황두열 석유공사 사장은 석유공사 비리 수사 과정에서 출국 금지됐다. 이후 소환 없이 수사가 종결됐지만 사표는 2008년 5월 수리됐다.
 
공기업 기관장에 대한 정권의 개입이나 간섭 방지 등을 목적으로 2007년 4월부터 공공기관장 임기제가 시행됐다. 기관장 임기는 3년이고 1년 단위로 연임이 가능했지만 정권 교체기의 ‘물갈이 관행’ 앞에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문성이 중시되는 기관장을 정권 초 ‘전리품 분배’ 식으로 물갈이 한다면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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