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슈뢰더 독일 전 총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만난다

중앙일보 2017.09.10 16:34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der) 전 독일 총리. [중앙포토]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der) 전 독일 총리. [중앙포토]

2004년 8월 1일 게르하르트 슈뢰더(73) 당시 독일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나치에 저항한 시민 봉기 60주년 기념식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11일 오후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 위로 방문
2004년 독일 총리로서 폴란드에 사과한 인물
방한 기간 중 나눔의집 방문 제안 흔쾌히 수락
평소 위안부 피해문제 사죄하지 않는 일본 비판

1시간 동안 역사관 관람, 추모비 참배 등도 계획
나치 실상 알린 소녀 '안네 프랑크' 액자 전달예정
독일 정치인 기회마다 과거사 사죄 일본과 대비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에 의해 끔찍한 유대인 대학살(아우슈비츠 수용소)이 자행된 곳이다. 이런 독일군을 상대로 피 흘려 싸운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자리에 ‘가해국 독일’ 총리가 참석했다. 
 
슈뢰더 총리는 기념식장에서 “폴란드를 점령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데 대해 우리는 다시 진심으로 머리를 숙인다”고 사죄했다. 슈뢰더는 바르샤바인들의 봉기를 ‘폴란드의 존엄’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사죄는 국제사회에 강한 공감을 일으켰다.
 
이런 슈뢰더 전 총리가 11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민간 지원시설인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을 방문한다.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 1일 국내에서 자서전(메디치미디어)을 냈다. 출판을 기념해 최근 방한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해 나눔의집을 찾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 생활시설인 경기 광주 나눔의집. [중앙포토]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 생활시설인 경기 광주 나눔의집. [중앙포토]

 
이번 방문은 양기대 광명시장이 출판사 측에 제안해 이뤄졌다. 광명시는 광명동굴의 수익금 일부를 나눔의집에 기부하는 등의 인연을 맺고 있다. 방문 제안을 들은 슈뢰더 전 총리는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10일 나눔의집에 따르면 슈뢰더 전 총리는 평소 일본의 미온적인 과거사 청산과 관련, “독일은 전쟁범죄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국제적으로 분명히 보여줬는데, 일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비판발언을 해온 인물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에 대한 역사 인식도 분명하다. 할머니들이 철저하게 고통받아온 만큼 위로의 뜻을 담은 위안부라는 표현은 잘못됐다는 게 슈뢰더 전 총리의 설명이다. 피해사실을 보다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해 ‘성노예 피해자’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피해 문제에 대한 사죄등을 요구하는 수요집회 자료사진.[중앙포토]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피해 문제에 대한 사죄등을 요구하는 수요집회 자료사진.[중앙포토]

 
슈뢰더 전 총리는 이날 한 시간가량 나눔의집에 머물며 이용수(89) 할머니 등을 만나 일제의 인권유린 실상을 전해 듣는다. 추모비 참배·역사관 관람 등 일정도 계획됐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 [중앙포토]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 [중앙포토]

 
이 자리에서 그는 나눔의집에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Anne Frank·1929~1945)의 얼굴이 담긴 액자를 기부할 예정이다. 안네 프랑크는 나치 독일군을 피해 2년 동안 숨어 지내면서 겪은 일들을 기록했는데, 그것이 후에『안네의 일기』로 출판돼 전쟁의 끔찍함을 생생하게 세계에 알렸다. 안네 프랑크와 같은 나눔의집 할머니들을 향한 존경의 표현으로 보인다.
 
나눔의집 측은 슈뢰더 전 총리에게 김순덕 할머니(2004년 별세)가 그린 ‘끌려감’ 작품과 못다 핀 꽃 같은 피해 할머니들의 과거를 형상화한 ‘소녀상’ 모형 등을 전달할 계획이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슈뢰더 전 총리 방문에 앞서 지난 7월 5일에는 미국 뉴욕주 에드워드 브라운스타인 하원의원이 나눔의집을 찾았다. 그는 할머니들을 만나 “일본 정부로부터 진짜 사과를 받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브라운스타인 의원은 2013년 뉴욕 맨해튼 유엔주재 일본 대표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 오사카 시장의 위반부 망언을 규탄했다. 하시모토 당시 시장은 “(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필요했다”고 발언해 비판을 받았다.
 

한편 독일의 유력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해와 일본 정치인과 대비를 이룬다.
1970년 12월 7일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독일(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과거를 사과하며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1970년 12월 7일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독일(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과거를 사과하며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04년 슈뢰더 전 총리가 섰던 바르샤바 희생자 추모비는 앞서 1970년 12월 7일 당시 빌리 브란트 서독(당시엔 통일 이전이라 동서독 분단 상태) 총리가 무릎을 꿇었던 곳이기도 하다. 독일 현직 총리가 씻을 수 없는 과거사에 대한 용서를 피해 국가에 구하는 세계사적 명장면이다. 이듬해 빌리 브란트 총리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acker) 전 독일 대통령. [중앙포토]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acker) 전 독일 대통령. [중앙포토]

 
또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역시 1985년 5월8일 40주년 종전기념일 독일연방의회 연설에서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 대해서도 눈이 멀게 된다”며 “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기려 하지 않는 자는 또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고 후대에 기억될 명연선을 했다. 부끄러운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강한 울림이었다.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의 도덕적 양심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일본은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사죄를 하기는 커녕 잊을만 하면 독도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등 도발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