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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20명인 바흐 음악을 어떻게 낭만적이지 않게 연주할 수 있나"

중앙일보 2017.09.10 12:31
세계적으로 유명한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전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작품을 연주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비판도 자주 듣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전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작품을 연주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비판도 자주 듣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샤 마이스키(69)는 유명하지만 비판도 적지 않게 받는 첼리스트다. ‘너무 낭만적’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마이스키는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연주한다. 첼리스트들이 일반적으로 엄격하게 연주하는 바흐에서도 마이스키는 마음껏 노래를 한다. 소리는 시종일관 크고, 비브라토(현을 떨어서 소리를 풍성하게 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한다. 라흐마니노프ㆍ차이콥스키 같은 러시아 낭만주의에는 잘 맞을지 몰라도 바흐ㆍ하이든 같은 그 이전 시대 작곡가의 비교적 정갈한 작품에서는 낯선 방식이다.
 

"너무 낭만적으로 연주한다"는 비판듣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원래 모든 음악은 낭만적. 그건 칭찬"
강제수용소, 정신병원 등 어두운 시절 거쳐 "삶의 모든 부분이 감사하다"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독주회

공연을 위해 내한한 마이스키는 자신에 대한 이런 비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한다”고 했다. “호로비츠는 모든 음악이 낭만적이라고 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통해야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나치게 낭만적인 바흐’라는 말은 차라리 칭찬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처럼 마이스키는 음악의 낭만성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특히 바흐에 대해서는 “자식이 20명이나 있었던 바흐의 음악을 낭만적이지 않게 연주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되물으며 “나는 자식이 6명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농담을 하고 웃었다.
 
감정적인 음악은 마이스키의 드라마틱한 삶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18세에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6위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해 명망 있는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배웠다. 하지만 4년 후 구소련의 강제수용소에서 18개월을 보내야 했다. 누이가 이스라엘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신병원에서 수용되는 등 어두운 시절을 보냈다.
 
마이스키는 “아주 어두운 시절에 곧이어 기쁜 시기가 찾아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던 때”라고 기억했다. 1972년 이스라엘로 망명한 후 곧 미국 LA에서 유명 첼리스트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를 사사하며 음악가로서 행복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시기를 겪고 나면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내일 아침에도 눈을 뜨고 일어나서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막내 딸 밀라의 사진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막내 딸 밀라의 사진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의 음악엔 굴곡 끝에 만난 삶의 모든 조건에 대한 환희가 들어있다. 마이스키는 “지적으로, 혹은 직관적으로 음악에 접근할 수 있지만 나는 마음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풀어내는 것을 최종 목표로 여긴다”며 “최근 40여년동안 내 인생에는 지루함이 단 한순간도 없었기 때문에 내 음악에도 감동할 무엇인가를 언제나 포함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청중이 생각하는 소위 ‘전통적인 연주 스타일’을 지키려 애쓰는 대신 마이스키는 삶에 대한 감사를 전달하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따라서 언제나 조금 들뜬 음악이 마이스키 고유의 스타일로 굳어지게 됐다.
 
마이스키는 로스트로포비치와 피아티고르스키라는 두 전설적인 첼리스트에게 배웠다. 하지만 본인은 정식으로 제자를 두고 있지 않다. “1992년 녹화한 연주 영상을 받고 만나게 된 장한나(35)가 유일한 제자”라고 했다. 마이스키는 “대신 세계 곳곳에서 공개레슨을 열어 젊은 연주자에게 최대한 조언을 하려 한다”며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법을 찾은 첼리스트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를 버리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스승 로스트로포비치가 마이스키에게 가르쳤던 점이기도 하다. 마이스키는 “첼로는 수단일 뿐이고 진정한 목표는 음악의 완벽성에 도달하는 것”며 “음악가의 길은 수평선에 점차 다가가는 것과 비슷하다. 가까이 갈수록 자꾸 멀어져서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12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독주회에서 마이스키는 역시 낭만적인 작품들을 골랐다. 슈만ㆍ브람스ㆍ풀랑크다. 그리고 벤자민 브리튼이 스승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한 소나타를 연주한다. 내년에는 앙상블 디토와의 내한도 예정돼 있다.  
 
마이스키와 종종 함께 연주하는 딸 릴리 마이스키(오른쪽, 피아니스트). [중앙포토]

마이스키와 종종 함께 연주하는 딸 릴리 마이스키(오른쪽, 피아니스트). [중앙포토]

마이스키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낼 음반 두 장을 계획하는 중이다. 두 음반 모두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녹음한다. 마이스키에게는 릴리(30ㆍ피아니스트)와 사샤(28ㆍ바이올리니스트)를 비롯해 밀라(2)까지 6명의 아이가 있다. 두번의 결혼으로 얻은 아이들이다. 마이스키는 “30년 전 릴리가 태어났을 때 느린 음악을 모아 음반을 낸 후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음반을 하나씩 녹음했다”며 “제일 어린 두 아이들 것만 아직 없어서 지금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까봐 연주 스케줄도 많이 잡지 않는다”며 연방 아이들의 사진을 아이패드에 띄워 보여줬다. 마이스키는 “막내 아이들을 위한 음반에는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곡들을 녹음할 예정인데 아직은 비밀에 부치고 싶다”고도 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첫째 릴리가 피아니스트로 함께 연주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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