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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를 위로하는 음악의 힘

중앙선데이 2017.09.10 02:00 548호 29면 지면보기
[CULTURE TALK] 핑크 플로이드와 서태지의 공통점
“자, 헤드폰을 착용하세요. 전시는 음악과 함께 시작합니다.” 
입구의 안내원이 사람들에게 젠하이저 헤드폰을 하나씩 나눠준다. 지난달 25일 유럽 출장 중 찾아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V&A) 뮤지엄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데뷔 50주년 특별전 ‘그들의 중요한 유산(Their Mortal Remains)’ 전시장이다. 5월 13일 시작해 10월 1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시작부터 떠들썩했다. 영국 전역은 물론 인근 유럽 국가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중장년 팬들이 몰려들어 주말에는 예약 없이는 입장도 힘들다는 소식. 다행히 찾아간 날이 평일 오후라 1시간 30분쯤 기다린 후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시의 규모는 대단했다. 1967년 첫 앨범 ‘더 파이퍼 앳 더 게이츠(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를 발표한 후 50년간 이어지고 있는 이 위대한 그룹의 역사를 한 번에 보여주는 빅 이벤트였다. 65년 5명의 건축 전공 학생들로 시작된 밴드의 기원에서 시작해 73년 발표 후 741주 동안 빌보드 톱 200에 머물며 4500만장 이상이 팔려나간 앨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Dark Side Of The Moon)’, 79년 나온 혁명적인 앨범 ‘더 월(The Wall)’ 등 하나의 음반을 하나의 테마로 삼아 당시 사회 분위기와 반응을 담은 신문 기사, 뮤직비디오, 설치 작품, 관련인들의 증언을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핑크 플로이드는 가수인 동시에 디자이너였고, 무대건축가·음향 기술자·퍼포먼스 예술가이기도 했다. 유명 디자인 그룹 힙그노시스와 함께 작업한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음반 커버나 공장 지대에 모형 돼지를 띄워 촬영한 77년 ‘애니멀스(Animals)’ 자켓 등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라이브에서는 화려한 조명과 영상, 대형 괴물인형 등을 다양하게 활용해 최고의 쇼를 보여줬다. 이들의 음악에는 자본주의와 인간 소외, 정상과 비정상, 전쟁과 평화 등의 주제가 담겼는데, 이는 70년대 이후의 세계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전시장 분위기에 감동받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어르신들이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이들의 대표곡을 흥얼거리며 전시를 한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노래 한 곡 한 곡을 음미하며 전시장을 한바퀴 도는 데는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마지막 전시장에선 공연 장면을 네 벽면에 가득 비추며 ‘360도 라이브 상영’을 하고 있었다. 100여 명의 관람객들이 바닥에 앉아 진짜 공연장에 온 듯 환호하며 공연을 즐겼다. 혼자 온 동양인 여성 관람객이 신기했는지 옆에 앉은 60대 정도의 남성이 묻는다. “너 핑크 플로이드 아니?” “아주 잘은 모르지만, 음악이 좋다”고 하니 그가 말한다. “나는 벌써 세 번째 이 전시를 보러 왔어. 이들의 음악은 정말 대단했고, 나의 인생 그 자체야.”
 
이 분의 말을 실감한 건 한국에 돌아와 2일 찾아간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의 서태지 데뷔 25주년 공연에서였다. “피아노 한 소절이면 여러분을 과거로 보내드릴 수 있다”는 서태지의 말처럼, 이날 공연은 서태지라는 뮤지션은 물론 ‘서태지 세대’로 살아온 이들의 25년 전을 소환하는 의식이었다. 특히 “서태지와 아들들”이라고 농담하며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함께 ‘환상속의 그대’에서 ‘교실 이데아’까지 당시엔 한없이 도발적이었던 노래를 들려줄 땐, 정신을 잃고 환호하며 그 옛날의 나로 돌아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인생은 즐거운 것이로구나.”
 
세월이 흘러도 아름다운 건, 미술ㆍ문학작품도 마찬가지지만, 다양한 예술장르 중 가장 생동하는 힘을 가진 건 음악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젊은 시절 매혹된 음악은 한 사람의 마음 속에 계속 살아남아 남은 인생의 고달픈 순간들을 달래 준다. 그런 음악이 흘러나올 때 따라 춤추는 건, 쏜살같이 지나가는 오늘에 대한 예의다. ‘복고’면, ‘올드풍’이면 어떤가. 우리는 그렇게 음악에 구원 받으며 살아간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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