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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슬 좋은 부부의 따뜻한 스웨덴 가정식

중앙선데이 2017.09.10 02:00 548호 28면 지면보기
이지민의 “오늘 한 잔 어때요?” <35> 헴라갓
 
남산 3호 터널 시내 쪽 입구 근처에 있는 ‘헴라갓(Hemlagat)’은 정통 스웨덴 가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스웨덴어로 ‘집에서 만든’ 이란 뜻으로, 스웨덴식 펍인 크룩(Krog)을 모티브로 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주막’이다. 과거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 스웨덴에서는 나그네들을 위해 편안한 분위기에서 지역 특선 요리와 함께 한잔 술을 내주는 곳이 곳곳에 있었다.  

 
매장은 한마디로 따뜻하다. 북유럽을 연상시키는 패브릭과 오브제가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깨끗하고 정이 가득한 이 현대식 주막을 운영하는 건 스웨덴 출신의 다니엘 윅스트란드(45) 셰프와 아내 오수진(45) 대표. 매장에 있다 보면 종종 오 대표가 남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허니~.” 그러면 남편의 팔은 어느새 아내의 어깨를 꼬옥 감싼다. 결혼한 지 햇수로 9년 차라는데, 어지간한 신혼부부 저리가라 할 정도다. 부부가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 힘들다는 통상적인 말이 무색했다. 이 아름다운 인연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스웨덴 남부 지방 출신의 다니엘 셰프가 한국인 아내를 만난 곳은 놀랍게도 중국 청두. 서로 다른 업에 종사하며 우연한 만남을 거듭하다 2008년 결혼에 골인했고, 이어 ‘커피 오두막’이라는 뜻의 스웨덴식 카페 ‘카페스투간’(KAFFESTUGAN)을 운영했다. 이 카페는 ‘외국인이 뽑은 청두의 베스트 카페’로 4년 연속 선정될 정도로 큰 화제가 됐다. 그리고 2014년 6월 한국으로 건너와 헴라갓을 오픈했다.  
 
부부의 모토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많은 시간을 둘이 같이 지내면서, 여유롭게 살자”다. 헴라갓은 철저하게 부부를 위한 공간이다. 일터가 어떻게 부부의 공간이 되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다니엘 셰프는 이 얘기를 들으면 웃는다. “집에서 일하는 기분으로 주방에서 일합니다. 항상 아내가 곁에 있으니까요. 일하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문을 닫고 그냥 떠나죠.”  
 
보통의 레스토랑은 크리스마스가 대목인데 헴라갓은 이때 문을 닫는다.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서다. 스웨덴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간접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 우리에겐 아쉬운 소식이지만, 가족과의 만남이 더 중요하다는 부부의 철학이 훈훈하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며 ‘스납스(Snaps)’ 맛집을 언젠가는 쓰겠노라 속으로 다짐했었다. 수년 전 『먼 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이원복 교수님이 독일 출장길에 사온 스납스를 맛본 뒤로, 이 북유럽 전통술에 푹 빠졌다. 냉동실에서 서리가 낄 정도로 차갑게 칠링한 뒤 탁 털어 넣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스납스를 맛볼 수 있는 맛집을 찾다가 발견한 곳이 여기다. 바 뒤쪽에는 부부가 만든 스납스가 가득 준비되어 있다.  
 
독일의 스납스가 과일을 증류한 것이라면, 스웨덴의 스납스는 향이 첨가된 보드카다. 스웨덴에서는 식사와 함께, 특히 명절에는 반드시 스납스를 마신다. 이곳에서는 스웨덴 전통술 아쿠아빗(Akvavit)을 비롯해 다양한 허브가 들어간 스납스를 맛볼 수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술 마실 때 짧게 스납스 송을 부른다고 한다. 흥미로워 했더니 옆에 있던 엠마가 노래를 불러주었다. “잔을 비우네. 홉파데리 파데라란레 노래를 하며 잔을 비우네. 잔을 비우지 않은 사람은 반 잔도 받을 수 없네.”  
 
다니엘 셰프에게 스웨덴식 만찬을 코스로 부탁했다. 음식에 어울리는 술도 추천받았다. 가장 먼저 나온 메뉴는 스카겐 러-라(Skagenröra). 새우·게살·날치알을 딜(미나리과의 풀로 허브의 일종)과 사워 크림에 넣어 버무린다. 이를 셰프가 직접 만든 귀리빵 토스트에 얹어먹는다. 스타터로 좋다. 함께한 맥주는 스웨덴의 크래프트 브루어리 ‘옴니폴로(Omnipollo)’. 병 레이블에 로고를 넣지 않은 디자인이 미니멀하고 예쁘다. 옴니폴로의 ‘비앙카’는 알코올 도수 3.5도로 부담이 없고 산미가 좋으며 망고와 시트러스 향이 물씬 난다. 식전주 또는 에피타이저와 가볍게 즐기기에 딱이다.  
 
다음은 스웨덴 국민 요리라 할 수 있는 청어절임 요리 ‘씰탈릭(Silltallrik)’. 명절용 음식으로, 스납스를 곁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양파·겨자·각종 딜로 만든 4가지 청어요리가 도마에 담겨 나온다. 역시 귀리빵에 올려 먹는다. 스납스는 청어의 비린 맛을 싹 잡아주고, 절임에 활용된 허브와 잘 어우러졌다. 부부 추천 맥주는 덴마크 팍세 지방의 팍세 스타우트(Faxe Stout). 100년 넘는 역사를 가졌는데, 은은한 커피향이 나고 목넘김이 좋다. 청어가 스타우트에 사르르 녹아 들어간다.  
 
메인은 고기 요리 숏불라르(Köttbullar)와 칼롭스(Kalops). 각각 미트볼과 쇠고기 스튜라고 생각하면 쉽다. 숏불라르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가정요리로, 다이넬 셰프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레시피로 만들었다. 돼지고기에 통 겨자를 넣어 요리한다. 으깬 감자·링곤베리(와일드 크랜베리) 잼을 소스와 함께 곁들여 먹는다. 매칭한 술은 옴니폴로의 ‘레옹’. 알코올 도수 6.5도의 벨지안 에일로, 과일향이 물씬 느껴진다. 샴페인 효모를 넣어 청량감과 드라이한 맛이 도드라진다. 고기의 끝 맛을 잘 잡아주었다.  
 
마지막 요리인 칼롭스는 쇠고기찜과 비슷했다. 양념이 과하지 않고 담백한 스타일. 이 요리에는 여러 스납스를 곁들여 보았는데, 각각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어 이채로웠다.  
 
신나게 먹다 보니 일을 마친 다니엘 셰프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엠마가 또 다른 스납스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니, 셰프가 건배를 외친다. “스케올! 스케올!” 노래에 건배 구호까지 더해지니 스납스 한 병이 그만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지민 : ‘대동여주도(酒)’와 ‘언니의 술 냉장고 가이드’ 콘텐트 제작자이자 F&B 전문 홍보회사인 PR5번가를 운영하며 우리 전통주를 알리고 있다. 술과 음식, 사람을 좋아하는 음주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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