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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와 어반자카파 때문에 잠을 못 잤죠”

중앙선데이 2017.09.10 02:00 548호 24면 지면보기
[INTERVIEW]국립무용단 신작 ‘춘상’의 배정혜 안무, 정구호 연출
 
춘향과 몽룡이 최신 가요에 맞춰 파드되를 춘다.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2017-2018 시즌 개막작 ‘춘상’(9월 21~2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다.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춤, 춘향’(2002)을 ‘2017년판 모던클래식 춘향’으로 재건축하는 작업이다. 반세기 동안 한국무용의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고사 직전에 이른 무용극 부활을 위한 본격적인 프로젝트로, 원작 안무가 배정혜와 아트 디렉터 정구호가 의기투합해 젊은 세대도 호응할만한 새로운 무용극에 도전한다.  

 
‘단’ ‘묵향’ ‘향연’ 등으로 이미 국립무용단의 전통 현대화 작업을 모두 성공시킨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정구호가 무용극에선 어떤 감각적인 무대를 선보일까. “일생에서 가장 젊은 도전에 임한다”는 원로 안무가 배정혜가 보여줄 ‘한국적 호흡에 기반한 전혀 새로운 춤사위’도 관전 포인트다.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국립무용단 연습실에서

“무용가들은 저 여자가 돌았나, 이제 갈 때가 됐나 그러겠죠(웃음).”(배정혜)

 
‘한국 무용계 대모’ 배정혜 선생은 욕먹을 각오가 단단히 돼 있었다. 4일 국립무용단이 살짝 공개한 음악과 춤은 파격 그 자체였다. 신나는 축제 음악에 맞춰 뮤지컬 군무 같은 파티가 벌어지고, 남녀 주인공은 볼빨간사춘기의 ‘우주를 줄게’에 맞춰 2인무를 춘다. 재미와 대중성에 방점을 찍은 젊은 감각의 안무가 70대 원로의 작업이라 믿기 힘들다. 정구호 연출은 “안무 거장들 중 가장 현대적 감각을 가진 분”이라며 “선생님이기에 이런 도전이 가능하다”고 추켜세웠다. 정 연출의 박학다식함에 반해 ‘정 박사’라 부른다는 배 선생은 “무용인생 중 가장 힘들었지만 정 박사와의 작업을 놓치기 싫어 감수했다”고 털어놓았다.
 
시작은 ‘춤, 춘향’의 개작이었다. 하지만 ‘춤, 춘향’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고 판단한 정 연출은 춘향과 몽룡을 2017년의 ‘춘’과 ‘몽’으로 타임슬립시켰다. 요새 스무살 청춘들이 겪을 법한 사랑의 감정들이 정 연출이 짠 스토리라인을 따라 뮤지컬 세트 같은 2층 회전무대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클래식 버전은 그대로 두고 2017년 버전을 만들어 훗날 동시에 비교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춘향과 춘상을 하루씩 공연하면서 시대 흐름을 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그렇게 제안한 작업이죠.”(정)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무용극에 회전무대는 이례적이다. 하지만 기존 무용극과 차별화되는 영화적 장면 연출을 위해 이런 세트가 필요했다. “장편소설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무대를 보게 되실 거에요. 영화에서 화면을 2등분하는 기법처럼 듀얼 무대로 동시에 두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구요.”(정) “한국무용으로서는 회전무대가 편하진 않지만 불편도 감수해야죠. 편한 것만 찾으면 옛날 걸 못 벗어나니까요. 예전부터 연극적인 무대에서 무용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마침 제안을 줘서 쾌히 승낙했죠.”(배)
 
듀얼 회전무대라니, ‘묵향’ ‘향연’ 등 전작에서 정 연출이 추구했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미니멀리즘을 포기한 걸까. 하지만 그는 “오히려 가장 미니멀한 무대”라고 단언했다. “구조물과 바닥을 화이트로 통일해서 구조가 있지만 없는 듯 보일 겁니다. 뒤에 조명기구 같은 극장의 숨은 장치들이 다 보이게 오픈할 거구요.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 지점을 보여주려는 건데, 사랑의 감정도 환상과 실제를 왔다갔다 하잖아요. 극장도 지저분함이 실제고 깔끔한 무대는 상상인건데, 그게 동시에 존재하게 하려는 거죠. 의상도 무채색으로 갑니다. 북유럽스러운 미니멀리즘인데, 저와 배 선생님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라는 결과를 내는 게 중요하거든요.”(정)
 
모던한 세트나 안무에 앞서 이 무대를 근본적으로 젊게 만드는 요소는 아이유·어반자카파·정기고 등의 최신 가요들이다. 정 연출이 후보로 제안한 50여 곡 중 배 선생이 선택한 8곡을 영화 ‘올드보이’ ‘건축학개론’의 이지수 음악감독이 춤곡으로 편곡했다.
 
“아이유? 이름도 몰랐어요. 며칠 동안 들으면서 한국춤이 가능한 곡으로 고른 거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 이 시대 음악이나 분위기를 무시하는 것도 도리는 아니라 생각했어요. 평생 내가 직접 움직이며 안무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안돼서 조안무 도움을 받아가며 애를 먹었죠. 바램이 있다면 한국춤을 싫어하는 젊은 관객이 이 작품 통해서 한국춤도 즐길 만하다고 느끼고 좋아해줬으면 해요.”(배)
 
“뮤지컬은 유명 팝을 다 활용하는데 무용은 굳이 배제할 필요가 있나요. 요즘 시대 흐름인데요. 대중가요 중에서도 캐릭터 강한 아티스트들 노래만 고른 거예요. 음악적 깊이와 예술성이 있는 곡들이죠.”(정)
 
익숙한 선율이 흐르니 춤 자체가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결코 가벼운 안무는 아니다. 템포가 빠르고 액티비티가 많아 쉴 틈이 없는 고난도 안무다. “쉬워 보이는 동작이 원래 제일 어려운 겁니다. 어느 예술이나 정점엔 ‘정중동 동중정’이 있거든요. 한국춤이 아닌 것 같아도 그 속에 전통의 엑기스인 호흡이 있어요. 제가 40년전에 발표한 ‘바 기본’이 대중음악으로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하더군요. 그 호흡으로 새로운 동작을 하는 거지 가벼운 마음으로 손짓발짓만 하는 건 아니죠.”(배) “항상 해오던 동작의 변화가 아니라 창작적인 동작 속에서 호흡은 지켜야되니 무용수들이 고역이죠.(웃음) 헤드뱅잉이나 탭댄스도 한국적 호흡과 스탭으로 풀어내시는 게 신기하더군요.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해오셨기에 감각에 전혀 노화가 없으신 것 같아요.”(정)
 
쉬운 스토리에 고난도 안무로 예술성 높여
파티에서의 만남으로 시작해 부모의 반대로 사랑이 위기를 맞고 오해와 엇갈림으로 이별하는 일련의 스토리라인이 ‘춘향’보다 ‘로미오와 줄리엣’ 또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같다니 “어차피 보편적인 러브스토리지만 춘향만의 매력인 해피엔딩을 극대화했다”(배)고 했다. “모든 러브스토리가 심플한 기본 공식 안에 변화를 주는 것처럼 우리도 다양한 춤으로 살을 붙여 가려는 거죠.“(정)
 
파격적인 형식에 비해 내용이 얌전한 이유는 “춤으로 승부하기 위해서”다. “음악부터 파격인데, 이보다 더 충격적이려면 춤이 좀 없어져야 하거든요. 내용까지 파격적이려면 더 많은 장치를 이용해 장면을 구사해야 하니까요. 제 작업의 공통점은 춤은 춤으로 승부한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춤으로 가야 하는 원칙은 그대로죠.”(배)
 
“송범 시절 신무용을 ‘무용극’이라 했다면 우리가 창작하고 있는 건 ‘모던춤극’이라 했으면 좋겠다”는 배 선생은 “정 박사가 한국 모던춤 계통에 세련미를 극대화시키고 국립무용단의 역사를 바꿔놨다. ‘춤(chum)’이란 명칭이 코리언댄스로 인식되게 앞으로 같이 세계화시켜 나가면 좋겠다”고 했다.
 
“그간 정 박사 작품을 보며 내가 나이먹은 게 안타까웠죠. 젊었을 때 저런 분을 만났으면 내 안무를 더 펼쳤을 텐데, 이미 늙어서 희망없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왔어요. 3개월만에 신작을 만드는 게 무리였지만 정 박사와 같이 할 기회를 놓칠까봐 일단 오케이해놓고 그동안 잠을 못잤어요. 엊그제 안무를 완성해 이제야 좀 웃음이 나오네요.(웃음)”(배)
 
“제 작업이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이런 거장들이 서로 러브콜을 주시는 게 제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증명이라 생각해 감사하죠. 전통무용을 너무 좋아해서 ‘명인명무’ 개념으로 거장들의 작품을 새롭게 세팅해서 보여주고 영상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거장들의 삶이 담긴 춤들을 보면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르거든요. 그분들의 춤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어요.”(정)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국립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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